이번엔 내가 받았으니 다음엔 네가 받아라
갑작스런 한파 때문인지, 최근 독감 환자가 5년 사이에 가장 많은 수준까지 급증했습니다.
코로나 확진자도 증가세로 돌아서면서 독감과 코로나가 동시에 유행하는 상황도 우려되고 있는데요.
다음 주에 수능 시험 앞두고 있는 수험생들도 각별히 건강에 신경을 써야겠습니다.
정혜인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 MBC 뉴스, 2023.11.7. -
동네 소아과가 난리다.
접수도 치열하고 대기 환자도 엄청 많다는데, 그녀가 열이 난다.
추운데 밖을 계속 걸어 다녀서 그런가 콧소리도 그렁그렁하다.
담임선생님께 열이 나서 못 간다고 연락을 드리고 접수 시간 5분 전으로 알람을 맞춘다.
아이를 화장실로 데려가 코를 풀게 하고 양치와 세수를 시켰다.
언제든지 튀어나갈 수 있게 외출복까지 준비해 놓고 똑딱을 켰다.
8시 30분, 땡.
다행히 11번째로 접수를 성공했다.
이 정도 순서면 내 몸도 씻고 가꿀 정도의 여유는 있다.
안방 욕실에 들어가 씻고 있으니 침대 위에서 뒹굴거리던 아이가 소리친다.
"엄마! 우리 순서 9번째야!"
"엄마! 우리 7번째인데? 5번째부터는 병원 안에서 대기해 달라고 쓰여있어."
누군가 취소를 한 것인지, 가족이 우르르 진찰을 받고 나온 것인지 순서가 너무 빨리 다가오고 있었다.
강 건너의 병원을 다니는지라 순서를 맞추려면 몸단장이고 뭐고 서둘러야 한다.
대충 트레이닝복을 골라 입고 아이 손을 잡고 병원으로 향했다.
하필 꼭 급할 때 주차자리도 없더라.
주차할 곳이 안 보여 뱅뱅 돌게 생긴지라 아이한테 먼저 병원으로 올라가라 일렀다.
혼자 가기 무섭다는 아이에게 미안하게 협박까지 들먹였다.
"우리 순서 놓치면 병원에서 세 시간 대기해야 해."
겨우 먼 곳에 주차를 하고 가보니 순서가 2번째가 되어 있었다.
그 사이 아이는 대견하게 접수대에 말도 잘해놨고, 열이랑 몸무게를 재고 앉아있었다.
진료를 보니 다행히 열은 해열제를 먹지 않았음에도 떨어져 있었고 콧물도 맑은 콧물만 흐르는 정도였다.
"요즘 바이러스 1위가 아데노이고 2위가 독감이에요. 아이는 독감 검사도 코로나 검사도 필요는 없는데, 아까도 독감 환자들 왔다 갔으니까 병원에서 마스크 잘 쓰고 계세요."
아이는 쌩쌩해졌다.
코가 살짝 그렁그렁하지만, 열도 가끔씩 미열이 났다가 사라졌지만 컨디션은 매우 괜찮았다.
그래놓고 이틀을 땡땡이치고 집에서 뒹굴거린 녀석이다.
그 이틀의 뒹굴거림이 문제였나 보다.
내 옆에 붙어 식사를 하고, 내 옆에 붙어 잠을 자고, 수없이 뽀뽀와 안기를 요구하더니.
결국 그녀의 바이러스가 나에게 왔다.
내가 열이 난다.
목이 부어 침을 삼키기 어렵고 콧물이 그렁그렁하다.
온몸이 두들겨 맞은 것처럼 아프고 추운데 머리도 띵하다.
참 신기한 게 우리 집의 바이러스 핑퐁은 나와 그녀 사이에서만 이루어진다.
남편에게는 왜 바이러스가 가지 않는 것일까.
또 신기한 게 그녀의 바이러스는 내게만 강력하게 진화해서 온다.
아이는 가볍게 아프고 지나가는데 왜 나만 골골 앓아눕게 되는 것일까.
어느 집이나 공동생활을 하다 보면 바이러스는 옮겨 다닌다.
그 모습이 꼭 바이러스를 서로 주고받는 핑퐁 같다.
딸아이의 바이러스.
이번에는 내가 받았는데, 다음에는 남편 네가 받았으면 좋겠다.
매번 나만 받고 아플 순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