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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차 우리는 계절

by 북장

어느새 코로나로 인해 텀블러를 들고 다닌 지 4년이 되었다.

매일 아이의 등교 준비물로 텀블러에 하루동안 마실 물을 넣어 가방에 챙겨줬다.

나는 출근하면 소독기에서 텀블러를 꺼내 물을 채워 넣고 교실로 챙겨가는 게 하루 일과의 시작이었다.


평소에는 정수기에서 뜬 찬물을 텀블러에 담아 다닌다.

딸도, 남편도, 나도 찬물파이다.

미지근한 것보다 차가운 것을 선호하는 우리는 얼죽아처럼 얼어 죽어도 찬물만 마시는 게 평생 가능할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선호와 다르게 몸이 거부하면 그 끝은 결국 포기더라.




몸의 변화는 내게 먼저 찾아왔다.

얼음을 가득 넣은 아메리카노를 원샷하며 차가운 게 최고라고 외치던 내게.


더위가 맹렬할 때는 차가운 음료와 음식이 그나마 목구멍으로 넘어간다.

그런데 찬 바람이 조금이라도 불면 목구멍이 문을 닫아버리나 보다.

꿀떡꿀떡 넘어가지 않아서 아주 조금씩 홀짝거리게 된다.

그럼 자연스럽게 찾게 되는 게 있다.


보리차 티백.


어렸을 때 엄마는 주전자에 보리차를 넣고 팔팔 끓인 후 한 김 식혀 유리병에 담아두셨다.

그때 보았던 보리차처럼 끓일 수는 없다.

우리 집에서는 주전자도 유리병도 찾을 수 없고 키우고 싶은 생각도 없다.

편해야 계속 유지할 수 있는 나에게 많은 재료와 도구가 필요한 행동은 아웃이다.




아침에 눈을 뜨면 전기포트에 물을 끓이고 보리차 티백을 꺼내놓는다.

세 가족의 텀블러들을 모두 정렬해 놓고 차례로 뜨거운 물에 티백을 얹어놓으면 그날의 준비물이 완성된다.


찬물파 가족의 변화는 나부터 시작되었지만 다른 가족들은 하루를 준비하는 엄마의 손길로 인해 천천히 변하는 중이다.

남편은 뜨끈한 국물 마시듯 으허 소리와 함께 보리차를 마신다.

딸은 '아 뜨거워'소리를 꼭 한 번씩 내뱉어서 반을 버리고 찬물을 섞어준다.

나는 따뜻한 보리차를 홀짝거리며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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