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단풍과 첫눈 그리고 대설주의보

by 북장

첫눈이 내렸다.

운동을 마치고 나와보니 당황스럽게 눈이 펑펑 쏟아지고 있었다.

눈이 온다고 하긴 했는데 내가 예상했던 첫눈의 모습이 아니다.


단풍이 물들고 있다.

떨어지는 눈을 피해 아파트 현관으로 뛰어들어가다 단풍이 눈에 보였다.

나무들이 아직 가을옷을 입고 있는데 눈이 쏟아진다.


기기묘묘한 풍경이다.

가을과 겨울이 자연스럽게 바통을 주고받지 못했나 보다.

어쩌다 가을과 겨울이 공존하는 계절이 되었을까.





제목 없음.jpg


밤새 안전문자가 계속 울렸다.

'대설주의보', '영하', '도로 결빙'

당혹스러움에 커튼을 열어 밖을 내다본다.

정말 하늘에 구멍이 뚫린 듯 눈이 쏟아지고 있었다.


이게 맞는 걸까.

11월에 첫눈이 내리는 것도 빠른데 첫눈이 대설주의보가 된 적이 있던가.





올해 공주시를 스쳐간 재난들이 불현듯 떠올랐다.


1987년 공주 대홍수 이후 36년 만에 공주시 전체가 폭우로 두려움에 잠겼다.

새벽녘에 울려대는 아파트 방송에 놀라 남편과 뛰어내려 가던 계단에서 느꼈던 두려움, 종아리까지 물이 찰박거리는 지하주차장에서 서둘러야 한다는 다급함, 아파트 경사로를 따라 콸콸 쏟아져내리는 물줄기를 거슬러 집으로 돌아가던 때의 혼란.

산이 무너져 내리고 지하주차장이 침수된 것은 큰 피해도 되지 않을 정도로 엄청난 폭우에 공주는 깊이 침잠했다.


3주 전에는 공주 시민 모두가 집이 흔들린다는 걸 느낄 정도의 지진이 찾아왔었다.

피해는 없었다지만 지진을 느껴본 적 없는 사람들인지라 그 공포는 맘카페를 뒤집고도 남았다.

그런데 규모 3.4의 그 지진 진앙지가 달산리란다.

먼 곳도 아니고 공주시 외곽, 시골집과 밤산이 있어 친정부모님이 자주 가는 그곳이라니.

공주시가 지진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것이 뇌에 박히는 느낌이었다.


첫눈에 폭설주의보, 수많은 안전문자를 보며 우리에게 또 한 번의 재난이 오는 것은 아닌가 불안해졌다.




KakaoTalk_20231118_081754932.jpg


아침에 눈을 떠서 밖을 내다보니 눈이 쌓였다.

대설주의보라더니 생각보다 소박하게 쌓인 눈을 보며 다행이다 싶다.

하얀 눈 사이에 파묻힌 붉은 단풍과 노란 은행잎이 보인다.

계절의 부조화를 떨리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이번 겨울은 아무 일 없이 지나갈 수 있을까.


우리는 종종 공주가 자연재해도 피해 가는 곳이라고 자랑삼아 말했었다.

하지만 올해는 기사로만 접하던 해외의 기상이변이 공주시에 모두 쏟아진 듯했다.

우리를 둘러싼 자연환경이 바뀌고 있다는 것은 느끼고 있었다.

뚜렷하던 사계절이 여름과 겨울로 바뀌는 것 같다며 농담 삼아 말했었고, 비가 쏟아지면 동남아의 스콜 같다며 투덜거렸다.

그저 날씨와 기후가 바뀌는 것만 생각했지 그것이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생각은 뒤로 밀어뒀었다.


사람은 직접적인 내 일이 되지 않으면 더 넓은 범위의 공동체까지 생각이 잘 확장되지 않는 것 같다.

일련의 자연재해, 재난의 경험들이 묻고 있다.

이대로 기후 재난의 상황에 단발성 대응으로 적응만 할 것인가.

아니면 근본적 원인 해결을 위한 저탄소 사회로의 전환을 이끌어 낼 것인가.

기후 위기를 개인으로 맞이할 것인가, 인류 공동체로 맞이할 것인가.


물론 기후위기는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찾아 개인과 인류가 함께 노력해야 할 것이다.

적응과 전환을 모두 고려하여 준비하고 대응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각자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단풍 위에 내려앉은 눈을 바라보며 조용히 생각해본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