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떠난 이용자를 찾아 나선 부캐들 #신문과방송
이 글은 한국언론진흥재단이 발행하는 '신문과 방송' 2020년 10월호(no.598)호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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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혼성그룹 싹쓰리(SSAK3)는 Mnet의 음악방송 ‘엠카운트다운’에서 공식데뷔 6일 만에 1위를 차지했다. MBC의 예능 프로그램 ‘놀면 뭐하니’을 통해 시작된 프로젝트 그룹이 타 방송사에서 먼저 1위를 차지한 것이다. EBS의 캐릭터 펭수는 이미 지난 해부터 꾸준히 MBC 예능 ‘마이 리틀 텔레비전’, SBS 드라마 ‘스토브리그’, JTBC 예능 ‘아는 형님’, KBS의 음악방송 ‘유희열의 스케치북’ 등 다양한 타 방송사의 프로그램에 출연해오고 있다. 이는 방송 프로그램 간의 상호 교류에 그치지 않는다. ‘둘째 이모 김다비’는 애초에 뮤직비디오와 유튜브 채널 ‘비보TV’를 시작점으로 삼아 KBS의 ‘아침마당’, MBC ‘음악중심’ 등에 출연하며 플랫폼을 넘나들고 있고, 웹콘텐츠 ‘문명특급’을 운영하는 ‘재재’가 tvN의 ‘유퀴즈 온더 블록’에 출연하는 등 활동의 범위를 넓히고 있다.
왜 점점 더 채널과 플랫폼의 경계를 넘는, 특히 ‘부캐’를 통해 ‘선을 넘는’ 콘텐츠가 늘어나고 있을까? 채널과 플랫폼을 넘나드는 ‘부캐’의 활동은 이미 많은 이들에게 익숙해졌지만,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러한 활동은 일종의 ‘선을 넘는’ 일로 여겨졌다. 특정 연예인의 타 방송사 출연에 대해 ‘겹치기 출연’이란 비난이 제기되는 것도 여전한 현실이다. 기존에 금기에 가까웠던 ‘선을 넘는’ 일들이 일상화되는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선, 지금의 영상 콘텐츠 산업의 어떠한 속성이 이러한 흐름을 가속화하는 동력으로 작동하고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이 글에선 점점 더 많은 프로그램들이 콘텐츠 내부에서 새로운 캐릭터를 구축하고, 이렇게 구축된 ‘부캐’의 활동 범위를 확장하게 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콘텐츠IP 중심으로 재편되는 산업의 변화에 주목하여 논의해보고자 한다.
콘텐츠IP를 중심으로 모이는 팬덤
먼저, 이용자를 모으는 기본 단위로서 ‘콘텐츠IP’와 ‘팬덤’의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과거에 특정한 미디어, 특히 ‘채널’과 ‘프로그램’을 단위로 모여 있던 수용자(audience)는 다양한 디지털 미디어-플랫폼을 넘나드는 이용자(user)로 진화하고 있다. 문제는 특히 방송이란 미디어의 주된 수익모델이 이용자의 ‘주목’을 시간 단위로 광고주에게 판매하는 방식이란 점이다. 미디어가 주목의 단위가 되었던 시기에는 이러한 광고 중심의 비즈니스로 충분한 수익을 거둘 수 있었다. 그러나 미디어가 디지털-온라인 기술의 발전 속에서 융합되면서, 개별 미디어 입장에서 충성스러운 이용자 집단이 점차 줄어들고 있다. 방송 프로그램의 편성 시간대에 맞춰서 시청을 하는 ‘관습’을 유지하는 세대가 점차 줄어드는 상황인 것이다. 결국, 창작자는 변화된 미디어 생태계 속에서 이용자를 찾아다녀야 한다.
그렇다면 그 이용자들은 어디로 갔을까. 현상적으로 보면, 사람들은 여전히 '미디어' 앞에 있다. 그러나 그 미디어란, 디지털-온라인-스크린으로 통합된 환경에서 콘텐츠를 단위로 이용 시간을 배분하게 되는 미디어다. 디지털 스크린이란 통합적인 미디어의 관점에선, 여전히 사람들은 미디어 앞에 서 있지만, 과거의 개별 미디어 단위의 사업자 입장에선, 사람들은 어딘가에 머무르기 보다, 순식간에 이리저리 몰려 다니는 존재로 보인다. 이러한 이용자를 모으는 중심은 바로 '팬덤'을 모으는 '콘텐츠IP'이다. 특정한 콘텐츠IP의 팬덤은 그것이 아이돌이든, 캐릭터든, 그 IP가 나오는 콘텐츠와 미디어를 향해 집중하는 ‘화력’을 보여준다.
이때의 고민은 여전히 미디어 비즈니스의 수익 모델은 이용자의 주목을 시간 단위로 환산하는 '광고'를 중심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방송이란 미디어에 속한 창작자들은 이러한 전통적인 수익모델의 조건 속에서 새롭게 형성되는 이용자의 ‘주목’을 모을 수 있는 방식을 모색해야 한다. 이를 위해 선택 가능한 전략의 하나가, 바로 팬덤을 모을 수 있는 콘텐츠IP를 프로그램 내부에 확보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개별 프로그램 내부에 ‘부캐’라는 콘텐츠IP의 단위를 구성하여, 채널과 플랫폼의 ‘선을 넘는’ 협업을 통해 이용자와 팬덤을 모으는 방식을 선택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단순한 프로그램에 대한 주목만을 기대하는 것이라면, 굳이 채널의 경계를 넘어설 필요는 없다. 모든 채널에서 볼 수 있는 대상을 보기 위해 자신의 플랫폼으로 사람들이 돌아온다는 보장은 없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편성표'를 기준으로 사고하는 사람에게, '선을 넘는' 행위는 위험을 감수하는 일에 가깝다. 실시간 편성을 바탕으로 광고를 판매하는 사업자 입장에선, 타 방송사나 플랫폼으로 '주목'과 '시간'을 내어 주는 일은 자신의 수익을 상대에게 넘겨주는 행위로 간주된다. 특정 개별 미디어가 해당 시간의 주목을 점유하고 있던 상황에서는 동종 미디어 내부의 시간 경쟁이 중요하기 때문에 '선을 넘을' 이유도, 유인도 없는 것이다.
그러나 주목과 시간 경쟁이 개별 미디어를 넘어서는 순간 이러한 기준은 깨지게 된다. 늘 안정적으로 TV 앞에 앉아 있는 '관습'을 유지하는 사람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주목 경쟁의 범위가 전체 미디어 콘텐츠로 확장되는 상황이라면, 어떻게든 자신의 플랫폼과 콘텐츠로 그 주목을 다시 가져오기 위한 전략이 필요하다. 사람들을 '찾아가는' 전략은 개별 콘텐츠 창작자 입장에서 쉬운 일이 아니다. 단순히 콘텐츠 노출 플랫폼을 확장하는 것 자체로는 한계가 있다. 이때 제일 필요한 것은 콘텐츠의 '팬덤'을 모아서, 일상적인 미디어 소비 이상의 '집중적 소비'와 연계 활동을 유발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선 편성 단위의 콘텐츠를 세부 요소로 쪼개고, 그 중에 팬덤을 모을 수 있는 요소를 구분하여, 이들을 다양한 플랫폼과 콘텐츠에 노출시키는 전략이 필요하다. 이러한 산업적 필요가 '부캐'라는 디지털 기반의 멀티 페르소나 형성이란 문화적 저변과 결합하면서,1 지금의 '선을 넘는' '부캐'의 활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게 되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선을 넘는' 콘텐츠IP 전략으로서 '부캐'의 활용
이때 흥미로운 부분은, 이용자를 찾아다니는 방식으로서 다른 콘텐츠에 특정한 콘텐츠IP가 '노출'되는 전략이 활용된다는 것이다. 이는 기존의 미디어 산업과 이익의 구조가 어떻게 달라지고 있는가를 잘 보여준다. 미디어로 돈을 버는 입장에선, 내 미디어에 사람들이 주목해야 '광고'를 통해 그 주목을 수익화할 수 있다. 그러나 주목에 더하여 팬심을 모아 지속가능한 비즈니스를 이어가야 하는 상황에서는, 이러한 팬덤의 주목이 편성 단위가 아닌 콘텐츠 단위로 몰리는 것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결국 창작자는 콘텐츠IP를 활용하는 전략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콘텐츠 IP 전략의 차원에서 볼 때, 프로그램 단위의 콘텐츠를 프로그램과의 연계를 유지하면서 프로그램으로부터 분리할 수 있는 전략이 필요하다. '부캐'는 이러한 ‘분리’의 전략의 핵심을 담당한다. ‘부캐’는 해당 프로그램의 일부이면서, 그 프로그램으로부터 분리될 수 있는 별도의 콘텐츠IP로 존재한다. 프로그램 단위로 떼어져 나온 '부캐'는 팬덤을 모으기 위해 무조건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노출된다.
다양한 프로그램에 노출되는 것은 단순한 양적 주목을 넓히는 작업을 넘어선다. 서로 다른 창작자는 해당 '부캐'를 다른 관점에서 활용하고자 하고, 이러한 시도는 결과적으로 '부캐'의 새로운 차원을 발굴하는 효과를 가져온다. 결과적으로 개별프로그램에 머물렀을 때 한정적으로 형성되던 '세계관'이 다른 프로그램으로의 확장을 통해 넓어지는 계기가 만들어진다. 그 부캐의 '세계관'이 형성 과정임을 생각하면, 그 세계관을 인정받고 넓힐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즉 '선을 넘어'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진출하는 것은 양적으로 해당 IP의 이용자 접점을 넓히는 계기이자, 질적으로 해당 IP의 세계관이 확장되는 과정인 것이다. 이에 대해 콘텐츠 세계관 기획자 김동은은 세계관에 대해 창작자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팬덤으로 부터 '승인' 받는 것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세계관은 공급자가 구성한 '설정집'의 나열이 아니라, 다양한 환경 속에 노출되며 '발견'된 요소들이 이용자의 '승인'의 과정을 거쳐 누적되어 형성된다. '선을 넘는' 부캐의 활동은 이러한 발견과 승인의 과정을 가능하게 한다. 이렇게 형성된 '세계관'은 해당 부캐, 즉 IP의 팬덤을 공고하게 하고, 그 지속성을 높일 수 있게 한다.
그럼 이러한 부캐 기반의 콘텐츠 IP가 수익화 전략과는 어떻게 연결될까? 가장 즉각적인 전략은 본방의 광고 판매와 디지털 PPL 프로모션을 통한 수익화를 위해, 콘텐츠IP 단위인 ‘부캐’의 주목도를 높이고 팬덤을 구축하는 전략을 취하는 것이다. 이는 과거의 방송 포맷과 전략의 계보를 따르는 것이기도 하다. 기존의 방송은 게스트 활용의 전통이 일종의 포맷으로 자리잡아 있는 상황이다. 인기있는 게스트가 나올 때 방송 주목도가 올라간다. 부캐 전략을 통해 팬덤을 모으면 그 팬덤의 주목도를 바탕으로 본방의 경쟁력을 높이는 방식인 것이다.
이때 ‘콘텐츠IP’로서 부캐가 과도하게 소모되는 것을 막고, ‘본방’의 매력을 높이기 위한 전략도 함께 활용된다는 점에도 주목할만 하다. 대표적인 것이 ‘파라텍스트(para-texte)’ 전략이다. 선을 넘은 ‘부캐’의 활동은 본방에서 일종의 ‘관찰’ 예능의 포맷으로 활용되어 방송된다. 방송의 이면을 보여줌으로써 일상과 비일상의 경계를 흐리는 ‘파라텍스트’ 전략은 최근 팬덤 구축에서 일상적으로 활용되는 방식이다. 프레임 바깥의 활동을 전면에 내세우고, 본방에서 이를 ‘관찰’함으로써 부캐의 생명력을 높인다. 이때 방송의 본방 프로그램은 초기 캐릭터의 성격 구축을 위한 전략적 목적으로 활용되고, 이후 외부 활동의 관찰적 포착으로 이어지는 방식을 지속적으로 병행하게 된다. 이러한 방송 포맷이 기존 아이돌 그룹들의 팬덤구축을 위한 ‘파라텍스트 전략’과도 유사성을 갖는다.
IP가 중심이 되는 방송 콘텐츠의 재편을 바라보며
이상의 논의는, 전통적인 방송 비즈니스의 위기가 지속될수록, 부캐를 활용하는 ‘선을 넘는’ 콘텐츠IP 전략이 지속될 수 있는 구조적 변화가 나타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경향은, 단순한 유행을 넘어선 산업 구조의 근본적 변화란 점에서 앞으로도 점점 더 확산될 가능성이 있다. 이는 결국, 방송의 성격의 변화에 대한 고민을 낳게 한다. 특히 수용자를 모을 수 있는 전략으로서 콘텐츠IP의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음에도, 비즈니스 모델 측면에서 실시간 방송의 광고 수익이 여전히 중요한 구조가 지속되는 한, 이러한 ‘선을 넘는’ 시도는 점점 더 확산될 것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는 프로그램 내부의 구성 요소로서의 콘텐츠IP의 단위들의 활용이 확대될 수 있는 구조적 압력이 존재한다는 점을 의미한다.
이런 점에서, 최근 새롭게 시작된 부캐 콘텐츠인 ‘환불원정대’에서 지미유의 직업이 제작자이자 매니저인 건 의미심장하다. 이미 펭수가 담당 PD를 "매니저"라고 부른 것은 징후적이다. 이제 방송콘텐츠의 제작자는, 방송 내부의 다양한 콘텐츠IP를 팬덤의 단위로 관리하는 ‘매니저’로서의 역할이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매니저’로서의 크리에이터의 역할이 중요해질수록, 선을 넘는 콘텐츠 제작의 경향은 더 확대될 것이다. 그 결과가 어떻게 되든, 결과적으로 콘텐츠 팬덤의 단위로서 IP의 활용이란 전략은 점점 더 고도화될 것이다.
디지털 기반의 미디어 융복합이 확산되면서, 방송 프로그램의 내부에서도 ‘부캐’라는 콘텐츠 IP 단위의 팬덤 기반 비즈니스의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콘텐츠IP와 팬덤의 산업적 중요성은, 새로운 디지털 시대의 중요한 산업적 기반으로서 학술적으로 보다 진지하게 검토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분명한 것은, 앞으로도 콘텐츠IP 비즈니스의 중요성이 계속되는 한, ‘선을 넘는’ 부캐들의 활약은 한동안 지속될 수 있다는 것이다. 콘텐츠IP 중심의 산업 구조 변화에 대한 논의는 아직 시작에 불과하다. 단순히 기존의 관행을 깨는 현상으로서가 아니라, 보다 근본적인 콘텐츠 산업의 구조적 변화란 측면에서 ‘선을 넘는’ 사례들에 대해 앞으로도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