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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졸중 후 사람이 이상해졌어요

섬망 속에 살다

뇌출혈 이후 중환자실에서부터 일반병실에서도, 재활치료실에서도, 병원에서의 나는 그야말로 머리에 꽃 달린 이상한 애였다. 발병 후 지금까지 아니 어쩌면 내 인생 통틀어서 제일 재미있고 신났던 시기이기도 했다. 남의 눈치 안보고 내가 느끼는 대로, 보이는 대로 나만의 세상을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옆에서 지켜보는 가족들은 답답한 마음에 가슴을 쳐야했겠지만 나는 마냥 행복했다. 나사 몇 개 빠져 있던 그 시절이..



섬망 때문에 일어난 일들도 있었지만, 섬망으로 생긴 나만의 세상을 벗어나고 싶지 않아서 일부러 모자란 행동을 한 적도 있었다. 이런 생각으로 그랬다기보다는 무슨 말과 행동을 하고 있는지 알고는 있지만 스스로 그게 이상하거나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현실에 있지만 나는 내 세상에 살고 있었다. 그 당시에는 왜 내게 말도, 그런 행동도 못하게만 하냐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내 세상을 없애는 순간 현실을 직시하게 되니까 그로 인한 정신적 고통을 피하기 위해 나의 심리적 방어로 섬망이 나타난 것 같다.


(섬망 : 신체 질환이나, 약물, 술 등으로 인해 뇌의 전반적인 기능장애가 발생하는 증후군이다. 주의력 저하와 의식 수준, 인지 기능 저하를 특징으로 하며, 그 외 환시와 같은 지각의 장애, 비정상적인 정신운동 활성, 수면 주기의 문제가 동반되기도 한다._네이버지식백과)



병원바닥 인테리어

치료실 입구임을 알려주는 표시인데 휠체어를 타고 가다 멀리서부터 보이는 이 동그라미들이 갑자기 완두콩껍질에서 나오더니 일어나서 반갑게 인사를 하며 움직이는 것이었다. 그 완두콩 친구들이 잊히지 않기도 하고 다시 보고 싶어서 핸드폰에 그림도 그려 놨었다. 바닥에서 이렇게 생긴 친구들이 웃으며 나를 바라보고 있으니 나도 그들이 늘 반가울 수밖에 없었다.

내 눈에 보였던 환시

그래서 늘 저 곳을 지날 때는 “완두콩이야~~~~~!!”하고 손을 흔들며 신나게 소리를 질렀고, 지나가던 사람들이 어리둥절해 하던 모습들이 떠오른다.
저런 완두콩들이 복도에서 3D로 보여서 저 곳을 갈 때마다 너무 반갑고 즐거웠다. 아마도, 아이에게 읽어주던 동화책 어딘가에 있던 그림일 것 같고, 치료실에 대한 좋은 기억이 저런 환시를 만든 것이 아닐까 싶다. 완두콩 친구들과 인사를 하고 지나가면 보이는 또 다른 노란 동그라미에 대해 “초록은 완두콩이고 쟤네는 뭐~게~”하고 휠체어를 밀어주던 엄마에게 퀴즈를 내기도 했다. 엄마가 “뭔데??” 하시면 “이건 병아리콩이야~~~~~~~~~~~~~”하고 신나서 알려드렸다. 그래서 나는 치료실에 갈 때마다 완두콩 친구들과 병아리콩 친구들에게 인사를 하느라 바빴다. 그 때 봤던 모습의 콩들을 다시 볼 수 있을까..?




치료실의 인싸 & 진상



다행히 나는 성격의 변화가 크지 않았다. 오히려 밝고 천진난만 해져서 옆 사람들이 어이가 없어 웃기도 하고 큰 걱정을 하지 않았던 것 같다. 나는 완두콩들뿐만 아니라 복도, 치료실 할 것 없이 사람만 있다하면 한 명 한 명에게 세상 환한 웃음으로 "안녕하세요~~~"라며 큰 소리로 외쳤고, 치료실 내 환자, 간병사 상관없이 말을 걸고 치료 중에도 옆에서 치료 중인 할머니에게 "할머니 너무 예쁘셔~~~ 어디서 오셨대유?" 라며 처음 보는 어르신께 말을 걸기도 했다. 나름 치료실의 ‘인싸’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난폭 해지던 순간은 설명 없이 억지로 재활 기구들에 태웠을 때이다. 처음엔 전혀 서 있지 못했기에 경사침대라고 하는 것에 강제로 묶여(?) 서있는 것이 첫번째 치료였다. 물론 사전에 설명이 없진 않았겠지만 당시에는 내가 묶여있는 것이 용납이 안 되었는지 내려달라고 소리를 지르거나, 나의 안전을 위해 몸통을 감싸고 있는 찍찍이 벨트를 갑자기 풀어버리거나 해서 위험한 순간들이 많았다. 조금 더 지나 경사침대보다 더 능동적으로 서있어야 하는 기립기를 쓸 수 있게 되었을 때는 역시나 강제로 벨트를 채워 세워놓는 것에 거부감이 있었는지 빼달라고 소리를 지르기 일쑤였고, 어떻게든 나의 관심을 유도하기 위해 엄마가 가끔 주셨던 젤리를 내놓으라며 치료실에서 소리 지르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상황에 대해 전혀 판단하지 못하고 사리분별을 못하던 나나였다.이 현상들은 뇌가 안정될수록 점차 좋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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