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환자실에서 면회 시간에 남편이 뇌출혈이라고 얘기해준 것이 기억난다. 그러나 그 때는 두통과의 싸움 중이라 응~ 하고 흘러 넘겼었다. 일반병실로 오고 조금씩 대화가 가능해지면서 파열된 기형혈관을 어떻게 제거할지 치료법에 대해 의료진과 의논해야 했다. 물론 내가 직접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한 것은 아니지만. 코일색전술을 할지 말지 결정하는 과정에서 남편은 나에게 꽤 상세하게 상황을 설명해주었다. 남편이 말해준 말들에 대해 당시에 이해는 못했지만 나를 존중해주는 느낌을 받았고, 귀 담아 들으려고 했던 기억이 난다. 남편은 내게 최대한 담담하고 차분하게 말했었다. “뇌출혈이래~, 재활치료 받으면 좋아질 거고, 좋아지더라도 몸에 장애는 남을 거래.”라고 했다. TV나 영화에서 이런 얘기를 들은 환자는 “네???? 제가요???”하며 현실을 부정하다가 살려달라고 애원했다가 의사에게 어떻게 좀 해보라고 소리 지르거나 하지 않던가. 나를 비롯한 진짜 환자들이 그런 장면을 보면 “저거 멀쩡하네, 안 아픈가본데? 뇌손상 아닌가봐~”라며 시시한 반응을 한다. 나는 발병 이전에 뇌출혈이라고 하면 사람이 죽는 병이라고만 알고 있었기 때문에 사실 이렇다 할 특별한 감정이 생기지 않았다. 죽은 건 아니었으니까. ‘아~ 그렇구나’ 정도였다. 뇌졸중에 대해 전혀 아는 게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뇌출혈이라기에 그런 줄 알았고, 마비라고 하길래 못 움직이나 보다 싶었다. 머리 수술하면 괜찮아지겠지 하고 기다렸다. 나를 비롯한 우리 가족들 모두 그렇게 기대하고 있었다. 어차피 앉아도 앉을 수 없으니 위험해서 치료실 갈 때 빼고는 누워있어야 했고, 치료실에 갈 때마저도 휠체어를 탈 때도, 흘러내리는 몸을 받치기 위해 왼팔에는 암슬링을 하고 옆구리에 베개를 끼고, 왼쪽 어깨와 목 사이에 또 베개를 끼고 그렇게 해야만 앉아있는 모습을 만들 수 있었다. 뇌의 기능을 어떻게든 살리고 극대화해야하는 뇌손상환자들에게 사실을 말해주는 것이 맞지만, 너무나 단정적으로 ‘못 움직입니다’라고 대놓고 말해주는 것은 발병 초기에 기대할 수 있는 신경가소성의 가능성을 완전히 도외시하는 것이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뇌졸중에 대해 잘 모르는 환자들에게 사실을 말해주되, 신경가소성의 원리를 설명해주며, 어느 범위에서, 어느 정도의 안전을 보장한 상태에서 이런 걸 하면 좋습니다, 주의사항이나 권고사항들을 알려주면 안 되는 것일까.. 병원에 있으면서 어느 주치의에게도 이런 안내를 받은 적이 없다. 너무 많은걸 바랬던 것일까. ‘못 움직인다’라고 주치의가 대놓고 단정 지어 얘기하는 순간, 서커스단의 코끼리가 된다. 그 서커스단의 코끼리는 어릴때부터 발이 묶여서 도망갈 수 없는 것을 익히고, 겨우 말뚝에 묶였을 뿐인데 그것을 빼내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으며 온순하게 서커스단에 머무르기 때문이다. 그것이 뇌졸중 환자의 고유 수용성 감각이나 기능적인 부분에 큰 영향을 미친다. 초기가 얼마나 중요한데, 그런 무책임한 발언을 아무렇지 않게 한단 말인가. 지금은 코로나로 인해 환자들의 감금 생활이 더 할 것이다. 움직이기 못하기 때문에 어차피 병원 밖으로 나갈 생각은 하지 않게 된다. 하지만 자의냐 타의냐에 따라 내가 안 나가는 것과 못 나가는 것은 느낌이 완전히 다르니까. 병원에, 특히 병실에서만 지내다보면 발병 이전의 나의 생활들이 그렇게 기억이 나기 마련이다. 나는 어떤 사람들과 어울렸고, 어딜 즐겨 다녔고, 무슨 취미생활을 했고 등. 못하는 것들만 족족 그렇게 생각이 나면서 현재의 자신을 싫어하게 된다. 자존감 하락의 시작인 것이다. 스스로 무능한 사람으로 여기면서 모든 것에 의욕이 사라지고 신세를 한탄하게 된다. 사회적인 지위가 높거나 활동이 많을수록 더 심하게 나타난다. 안 그래도 스스로가 비참한데 보호자들은 꼭 한 소리를 한다. 왜 이렇게 잠만 자냐, 의지가 없냐, 정신 차려라, 사람이 이상하게 변했다. 등등 힘내라는 응원의 한마디는 못해줄 망정 변해버린 모습에 구박을 일삼는다. 그런 구박마저도 분간 못하는 뇌손상환자들이다. 잔소리를 통한 상대의 에너지를 느낄 수 있을 뿐. 안 그래도 낮아진 자존감을 더 짓밟고 뭉개버리는 꼴이다. 갑자기 간병을 하게 된 보호자들도 나름대로 고충이 있겠지만 뇌졸중 후의 뇌손상 환자들은 미칠 지경이다. 그렇다고 좋은 말만 해달라는 것은 아니다. 상황을 조금만 이해해주고 할 수 있다는, 괜찮다는 용기를 주기를 바랄 뿐이다. 이건 내가 블로그에 적었던 글로, 발병 6개월 후에 들었던 생각이 담겼다.
병실에 움직이지도 못한 채 누워있는 나, 자신의 커리어는 포기한 채 좁은 간이침대에서 병실 생활을 하는 남편, 부모님을 비슷한 시기에 한 번에 하늘로 떠나보낸 엄마, 가족과 학생들, 교육자의 삶 등 지켜내야 할 것이 너무나 많은 아빠, 나로 인해 정신없는 이런 가족들의 모습을 보며 나는 살아있기를 후회하고 또 후회했다.
하지만 내가 누워서 기저귀를 차고 침대생활을 하게 됐을 때, 그 누구도 나와 함께 울어주지 않았다.. 모두가 나에게 힘내라고, 어쩔 수 없으니 이겨내라고,, 강해지라고 해주었다. 나는 절대 약해서 마음이 여려서 슬픈 게 아닌데 나를 더 강해지라고, 뇌졸중 생존자로써 살아남은 값을 하길 바랬다. 그런 의도가 아니었더라도 적어도 당사자인 내가 느끼기엔 그랬다..물론 그런 메세지들이 지금까지 버틸 수 있는 힘이자 원동력이 되었지만, 여전히 감정의 흔들림을 겪고 있다. 눈물보다는 상대의 눈을 보고 안아 주세요~
8개월 전 이런 '감정의 격동기'는 나비가 되어 지금 '감정의 폭풍기'를 겪게 해주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모두가 나를 공감해주기보다 강해질 수 있는 힘을 준다.. 뇌졸중 후유증으로 인해 감정조절이 안 되는 거라고 나 스스로에게도, 주변사람들에게도, 핑계 아닌 핑계를 대고 있지만 사실은 누구보다 힘든 나를 강해지도록 기운을 주고 일으켜 세워 주기보다는 나의 어려움을 이해해주길 바라는 투정이다. 그냠 "힘들지~ 어떤모습이든 곁에 있을게","널 믿어, 기다릴게" 하고 따뜻하게 안아주길 바란 것인데.. 꼭 뇌졸중 환자가 아니더라도 삶의 어려움과 여러가지 힘든 상황에 놓인 사람들에게 이겨내라고, 강해지기를 독려하기보다는 그 상황을 이해해주고 인정해주는 것이 그들이 바라는 것이 아닐까 싶다. "진짜 재수가 없었네..""충분히 지금도 괜찮아~" ""이만한 게 어디야~다시 해보자 널 믿어"
이런 이해와 인정 후에 격려나 응원이 따라오는 것이 너의 힘듦을 알고 이해하고 싶다고 느껴지는 진실 되고 힘이 되는 메세지인 것 같다.결국, 해결책보다도, 응원보다도, '공감'이 가장 필요한 것일지 모른다.
힘내라고 말해주지 않아도 힘내고 있으니까.. 아무 말 없이 그냥 따뜻하게 안아주세요. 』 이런 글을 썼을 때만 해도 발병 6개월 후라 인지가 어느 정도 좋아진 상태였지만 , 그만큼 불만도 많았다. 그 때에도 발병 초기의 힘듦을 잊지 않겠다는 마음에 생각들을 핸드폰에 적었다. 뇌졸중이 발생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보호자도 심장이 벌렁거리겠지만, 당사자는 그야말로 청천벽력이며, 이로써 삶이 끝났다고 선고받는 기분이다. 당장 소리를 지르고 원망하며 울부짖을 것 같지만, 겉으로 표출이 되지 않는다. 스스로도 사태파악이 안되기 때문에. 내면에서 그 울분이 쏟아지는 만큼 속은 더 고통스럽고 견디기 힘들다. 그러니 함께 해보자고 옆에서 응원해주고, 많이 안아주고, 사랑으로 대해주시길 바라는 마음에 감히 적어본다. 의지를 가져라 정신차려라 강해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