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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졸중환자의 꿈

뇌졸중환자의 마음재활(8) 나의 꿈


지금은 다른 세상에 계신 나의 초등학교 시절 은사님께서는 고작 10살밖에 안된 우리에게 늘 이 말씀을 하셨다.

꿈은 풍선과 같아서 내가 놓아버리면 어디로든 날아가다 터져 없어져버리지만 바람이 빠지든, 가라앉든 풍선의 끈을 놓치지만 않으면 내 것이 되는 것이다 라고.


놓아버린 첫 번째 풍선(꿈)


20년이 훌쩍 지난 아직까지도 그 말씀이 생생하고, 그 때부터 꿈의 중요성이 뇌리에 박혔다. 귀감이 되는 그 은사님과 교육자로써 훌륭한 삶을 살아오신 아빠의 영향인지 어린 시절부터 나의 장래희망은 항상 ‘선생님’ 이었다. 고학년이 되고, 중고등 교육과정을 거치면서 수학이라는 과목을 제일 좋아했던 나는 당연하게 수학선생님이 되겠다는 꿈을 가지게 되었다. 수학 선생님이 되겠다는 꿈만 있었을 뿐, 열정과 노력은 없었다. 수학 선생님이 되기 위해 필요한 성적이나 대학진로 등의 조건은 갖추지도 못하면서 수학선생님이 될 거라는 얘기만 했다. 어릴 때부터 내 꿈은 수학 선생님이니까 당연히 이루어질 줄 알았다. 현실은 꿈과 점점 멀어지고 있는데도 말이다. 그렇게 수학선생님이 되겠다는 내 꿈은 대학진학을 하면서 점점 이루기 힘든 먼 곳으로 날아가고 있었고, 멀어지는 꿈을 보면서 ‘저 꿈은 내 것이 아니니까’.‘그래, 썩 맘에 들지 않았던 꿈이었지’라며 끈을 놓아버렸다. 그렇게 첫 번째 꿈이 날아가 버렸다.


내가 제일 잘나가


내 일평생의 꿈이었던 선생님의 꿈을 깔끔하게 포기하고, 24살에 그리 어렵지 않게 취업을 했다. 그 어렵다는 1금융권 시중은행에. 엘리트코스는 아니었지만 어떻게 은행에 발을 담게 되었고 열심히 일했다. 도대체 왜 수학선생님이 되려고 했을까 싶을 정도로 어린나이에 연봉도 꽤 됐고, 상도 수차례 받고, 직장 내에서 인정을 받으며 커리어를 쌓아가고 있었다. 그렇게 제일 잘나가던 시절의 나는 건방짐을 장착하고 더 높은 곳으로 화려한 비상을 꿈꿨다. 꿈을 향한 여정에 있던 결혼과 출산은 잠시 숨 돌리고 가는 거라고, 더 높은 비상을 위한 정비시간을 가지게 된 것 뿐이라고 생각했던 내게 육아휴직 중에 뇌출혈이 발생했다. 뇌출혈로 마비가 왔고, 그 때 내 나이 서른, 아가는 고작 6개월이었다. 그렇게 내 꿈을 향한 여정은 또 무산되었다. 24살의 괜찮게 나가던 예쁜 언니는 장애가 있는 그냥 삼십대 아줌마로 전락했다.


평범함이 곧 꿈


신체장애로 인해 먹고, 입고, 움직이는 인간의 기본 활동들이 불가능해지면서 나는 평범하게만 만들어달라고, 그냥 제발 좀 평범한 삶을 살게 해달라는 꿈을 꾼다. 넘어지는 것이나 지면상태, 신발 종류 신경 안 쓰고 그냥 멀쩡히 걷게만 해달라고. 살면서 한 번도 ‘걷는다’라는 것을 꿈으로 가져 본 적이 없는 내가 단순히 ‘걷는 것’이 꿈이 되었다. 뛰는 건 바라지도 않으니 신경 안 쓰고 자유롭게 걷기만 해도 좋으련만. 매년 새해가 되기 전에 나는 새해에는 제발 기적이 일어나게 해달라고 빌었다. 평범함을 꿈꾸던 나는 자다가 꾸었던 한 꿈으로 인해 특별한 삶을 꿈꾸게 되었다.


자다가 꾼 충격의 꿈


이번 꿈 이야기는 미래의 꿈이 아니라 자다가 꾼 꿈 이야기다. 이 꿈을 꾸고 나는 내 미래의 꿈을 다시 꾸게 되었고 재활의지를 강하게 다지게 된다.

꿈 속 어느 날이었다. 6개월이던 아이가 무려 10살이 되어 꿈에 나왔다. 나는 40살 쯤 되었나보다..(꿈속이라도 나이 드는 건 싫어....) 일일교사로 초등학생인 아들의 학교에 가게 되었다. 나는 컬러수트에 세련된 구두를 신고, 고급 진 가방을 들고 멋지게 차에서 내렸다. 운동장에서 놀던 아들과 친구들이 멀리서 나를 보며 달려오더니 아들의 친구가 말했다.
“어? OO아. 너네 엄마 장애인이네?”라고..
“너네 엄마 멋지다~”라고 말하길 기대했건만...


그 때가 꿈인걸 알면서 꿈을 꾸던 수면상태였는데, 이 장면을 꿈에서 본 순간, 눈물콧물 범벅이 되어 잠에서 깼다. 아무리 꿈이라지만 나에게 너무 가혹한 상황이었고, 잠에서 깨고 나서도 한동안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여전히 그 충격적인 꿈을 잊지 못한다,



특별한 삶을 꿈꾸다


꿈에서조차 혹독한 '세상 적응기'를 거친 나는 이제 평범함은 더 이상 꿈이 아니게 되었다. 몸이나 움직임이 평범하지 않은 만큼 특별한 삶을 살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젊은 나이에 뇌졸중을 겪는다는 것은 얼마나 끔찍한지, 이 일을 막을 수는 없었던 건지, 왜 진작 알아차리지 못했는지 등 뇌에 소홀했을 때 당하게 되는 일들을 공유하고 알리고 싶어졌다. 좋은 차, 좋은 옷, 좋은 집, 멋진 몸, 멋진 스타일 등이 모두 중요하지만 삶에서 진짜 중요한 것은 건강. 그것도 자신의 뇌를 잘 케어 하는 것이라고. 뇌 건강이 진짜 건강이라고 내 경험을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다. 이런 꿈을 꾸기까지, 그리고 여기까지 회복하는데 너무나 멀리 돌아왔다.



완전보다 완벽


나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내가 완벽해야 된다고 생각했다. 신체적이나 정신적으로 완벽하게 회복하는 것. 그래야 내가 꿈꾸는 일들을 이룰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으로 나는 이렇게 메모장에 적었다.

2019년9월17일

완전한 회복보다 완벽한 회복을 해야 돼
이왕 특별해진 거 나는 특별한 삶을 살거야

내 꿈이 구체적이어진 이유?
방황하기 싫어서..남들보다 출발이 늦었기에 내가 만든 길로 잘~가고 싶어서
더 이상 옆으로 새기 싫어.....
충분히 멀리 돌아왔어


그렇게 나는 계속해서 꿈을 꾼다. 내가 바라는 세상과 삶을 위해서. 뇌의 중요성이 대중화되길 바라며. 그리고 더 이상 완벽한 회복을 꿈꾸지 않는다. 지금 이정도의 회복으로도 난 충분히 가치 있는 사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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