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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졸중 후유증을 이겨내려면

힘 생기면 다 된다?

병원에서부터 퇴원 후 바깥 생활을 하고나서도 지겹도록 듣는 말이 있다. 특히 나이 지긋하신 어르신들로부터. 주변에 중풍 온 친구 하나쯤 있다는 50대 이상의 분들로부터. (엄연히 다르지만 한의학에서는 뇌졸중을 중풍으로 칭한다)


힘이 생기면 돼, 힘만 생기면 다 돼


나는 이 말이 진저리가 난다. 어쩌다 만난 사람들도 나만 보면 꼭 그런다. ‘힘이 생겨야 돼요’‘힘만 생기면 다 돌아올 수 있어’ 라고. 도대체 그 힘이 뭘까.. 늘 의문이었다. 초사이언 에너지 뭐 그런 초인적인 힘? 나는 나이가 젊어서 그런지 근력이 많이 떨어지지는 않았다. 물론 발병 이전에 비하면 많이 약해지긴 했지만 보통의 중장년층보다는 셀 것이다. 근력이래야 봤자 악력이나 밀고 버티는 등의 다리 힘?이지만. 그것도 오른쪽의 힘이겠지만. 아니, 진짜 답답하고 이해가 안 되는 건 근육이 있다고 움직이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내가 마비로 인해 근긴장도도 많이 떨어져있고 못 움직이긴 하지만 근육이 없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어떻게 힘을 쓰고 관절의 상태가 어떤지 등 뇌로부터 근육까지, 다시 뇌로, 움직임을 위한 신경전달이 안돼서 못 움직이는 것이란 말이다. 다시 말해, 몸을 움직이기 위해 힘이 물론 필요하지만 힘‘만’이 움직임을 만드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내가 유난히 ‘힘이 있으면 된다’는 말을 싫어하기도 하지만 이 말은 뇌졸중 재활을 하는 환자들에게 매우 실례가 되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상대를 전혀 배려하지 않는 말이다. 환자 나름대로 회복을 위해 애쓰고 있을 것이다. 그 방법이 대단히 효과가 있든 아니든, 환자 개개인마다 자신만의 방법으로 헤쳐 나가고 있을 텐데 거기다 대고 하는 ‘힘만 생기면 된다’는 무책임한 말은 ‘당신이 힘을 쓰는 운동을 하지 않아서, 운동을 열심히 하지 않아서’라는 뜻이 담겨있는 것처럼 들린다. 운동을 제대로 하지 않아서 장애가 남은 것은 아니지 않는가. 그래서 열심히 애쓰고 있는 나는 그 말을 들으면 나의 노력을 무시하는 것 같아 유난히 역정을 내나 보다.



기능적 움직임을 학습해야


힘은 중요하다. 움직임을 위해서 근력이 중요하기도 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움직임에 대한 패턴을 학습해야 자연스러운 동작을 할 수 있는 것이고, 다양한 움직임이 나오도록 근육의 기능을 다양하게 학습해야 한다. 근력보다 중요한건 기능적으로 움직이는 것이다. 힘과 기능이 적절하게 학습되어야 한다. 우리가 팔에서 알통이라고 하는 상완 이두근으로 예를 들어보겠다. 상완 이두근은 팔꿈치의 관점에서는 팔을 몸 쪽으로 굽히는 기능이 있고, 어깨 관점에서는 팔을 바깥으로 돌리는 (손바닥이 위를 향하게 팔을 뒤집는) 기능이 있다. 팔의 주요근육이기도 하고 환자들이 가장 흔하게 운동하는 부위기도 하다. 아령을 들고 팔을 굽히면서 말이다. 팔의 힘을 기르기 위함이라지만 목적이 불분명한 움직임은 기능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아령 들고 팔 구부리기를 열심히 해서 사람들이 말하는 그 힘이 좋아졌다고 가정해보자. 팔을 굽히는 동작을 반복함으로써 팔을 구부리는 기능을 하는 이두근의 신경전달이 원활해져서 구부리는 동작을 자연스럽게 잘하게 될 수는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두근의 다른 기능인 어깨의 보조근으로써 외회전을 하는 기능까지도 좋아진다고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근육의 힘과 쓰임, 긴장도 등은 모두 뇌에 의해서 결정된다는 것을 이해해야 할 필요가 있다. 뇌신경연결이 움직임의 핵심이며, 기능적으로 움직일 수 있어야 자연스러운 움직임과 완벽한 회복을 위한 방법이다.


아는만큼 보인다


메타인지라고 할 수 있는, 자신의 병과 후유증, 움직임 또는 마음까지도 스스로를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이 완전한 회복을 위해 중요하다고 앞서 이야기한 바 있다. 자신을 믿는 것도. 그럼 자신의 상태를 어떻게 잘 파악할 수 있는가. 그것은 담당치료사와 주치의와의 깊은 대화를 통해 계속해서 의견을 나누고 상담해야 한다. 그리고 원활한 대화를 하려면 환자 스스로가 또는 보호자가 재활에 대해, 기본적인 근육이나 쓰임에 대해 어느 정도 알아야 한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스스로 공부하고 연구하고 의논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막무가내로, 수동적인 태도로 다시 주어진 두 번째 삶을 허비하는 이들에게 하는 말이다. 내가 신체에 대한 견문을 넓혀보겠다고 각종 자료를 뒤져보게 된 것은 아니다. 단지 내 몸에 있는 안 좋은 자세나 움직임을 개선해보고 싶어서였다. 고유수용감각에 큰 문제가 있고, 상상의 힘으로 가소성을 발현해보고자 했던 마음에 ‘여기를 이렇게 움직이는 거야’하고 뇌에게 제대로 알려주며 상상하기 위해 이것저것 찾아보다보니 저절로 공부가 되었다. 이렇게 책을 쓸만큼.. 그 시작이 빽니였다. 빽니는 꼭 뇌졸중 환자가 아니더라도 여성들에게서 흔히 보이는 양상인데 대퇴사두근, 햄스트링, 골반 등의 관계에 대한 글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그 글을 이해해내고자 근육을 찾아보게 되고, 운동법을 찾아보게 되고, 내가 할 수 있는 동작인지 아닌지, 할 수 없다면 대체할 수 있는 운동이 무엇인지 고민하다보니 내 몸이 더 잘 보였고, 잘 느껴졌고 좋은 쪽으로 개선되고 있었다. 아는 만큼 담당 치료사들과 신체적 고민이나 재활 방향을 깊이 있게 의논할 수 있고 치료에도 적용할 수 있다. 대단한 공부를 하라는 것이 아니다. 적어도 치료시간에 무엇을 위해 내 몸이 만져지고 있는지, 이런 동작에는 어떤 느낌이 드는지, 치료시간에 집중하고 치료하는 것을 완전히 흡수할 수 있도록 적극적인 자세를 취하라는 것이다. 나의 의지가 반영되지 않는 수동적인 치료와 움직임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모든 치료에 환자 자신의 의식이 반영되어야만 한다. 그래야 치료에 의미가 있고, 빠른 회복을 기대할 수 있다. 제발, 치료시간에 마네킹처럼, 인형처럼 가만히 있지 않으셨으면 좋겠다. 죽을 뻔한 고비를 넘기고 다시 사는 두 번째 삶은 의미 있게 사시길..



두 번째지만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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