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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하 Oct 12. 2023

워킹맘이라 쓰고, 극기 훈련이라고 읽는다

일하는 엄마의 적응기

 세상 모든 워킹맘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은 "내가 무슨 부귀영화룰 누리자고 이렇게 회사를 다니는지 모르겠다."가 아닐까? 세상 모든 워킹맘이 받기 두려운 전화는 오전에 갑자기 걸려오는 어린이집, 유치원 선생님의 전화 "어머님, 아이가 열이 나서요..." 세상 모든 워킹맘이 가장 많이 하는 고민은 "회사를 다녀야 할지 그만둬야 할지 모르겠어. 언제까지 다닐 수 있을까?" 나는 아닐 줄 알았던 이야기다. 나와 상관없는 줄 알았던 이야기. 그러나 그 치열한 현실을 온몸으로 맞아 회사 화장실 안에서 울음을 삼키고, 퇴근길 버스에서 한숨을 감출 수 없어 눈물이 핑 돌던 워킹맘의 이야기를 시작해볼까 한다.


 워킹맘, 일하는 엄마.

 워킹대디라는 말조차 없다는 것이 당연한 논리이자 이 시대의 냉혹한 현실.


춥기만 했던 겨울


 첫째를 낳고 복직을 했다. 금요일에 복직 인사를 하고 왔는데 아이는 엄마가 출근한 것을 알기라도 하는 양 일요일부터 아프기 시작했다. 월요일은 열이 나서 남편이 휴가를 내고, 버티다 버티다 결국 수요일 내가 휴가를 냈다. 복직을 금요일에 했는데 수요일에 휴가를 냈다. 복직 시스템 처리조차 아직 안 된 과정에서, 근태도 입력이 안 되는 상황에서 여기저기 상황을 설명해 가며 휴가를 냈다. 더 치사한 현실은 1년 넘게 근무를 안 해서 연차가 없다고 했다. 그게 사내규정이라나 뭐라나. 결국 급하게 생리휴가를 꺼내 사용했다. 아, 시작부터 곡소리 나는 상황들의 연출이다.


 퇴근은 정말 또 다른 출근이다. 복직했다고 회식, 모임, 만남 이런 거 하나도 없다. 무조건 집으로 달려와서 아이를 보고 놀아주고 재우면 그다음 집안일이 기다린다. 아이 먹을 음식까지 해 놓고 시계를 보면 이제 곧 잘 시간이다. 이런 다람쥐 쳇바퀴 돌아가는 루틴조차 감사한 일이다. 아이가 아프기라도 하면 더 일찍 퇴근하기 위해 난리, 없는 휴가 뭐라도 있나 찾아보느라 혈안이 된다. 집에서 멀리 회사를 다니는 남편에게 평일 도움을 받을 수 없어 평일은 퇴근 후 혼자 육아를 했다. 주말은 남편과 번갈아가며 아이를 보고 쉬기도 했다. 처음 겪는 워킹맘의 생활에 온몸이 긴장하는 게 여실히 느껴졌다. 그래도 아이와 함께 보내는 주말 시간이 있어 그나마 평일에 함께 못 지내는 마음 한편의 미안함을 채울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회사 퇴근 후 육아 퇴근 후 아이 반찬 만들기

 

 그런데, 복직을 하고 한 달 반 정도 지났을 때 남편이 또 출장을 갔다. 그전까지 휴직을 하면서 홀로 아이를 키우는 일 자체도 만만치 않게 힘들었는데, 이제는 회사를 다니면서도 혼자 애를 봐야 했다. 하늘이 자꾸 나를 시험하는 기분이다. 아직 회사 생활에 적응도 못 했는데 주말도 오롯이 혼자 애를 보려니,,, 아이와 함께하는 소중한 시간이 지치고 피곤한 시간으로 변해갔다. 주변 가족의 도움을 받아도 여전히 나의 몫이 크니 몸과 마음이 쉴 시간이 없었다.


 

 내 이름을 다시 찾고, 일에 적응해 가며, 역시 금방 적응할 줄 알았다는 농담 섞인 칭찬 속에 어깨가 으쓱하지만, 키즈노트의 알람이 울리는 순간 어느새 상황은 바뀐다. 웃고 있는 사진 속 아이라면 다행이지만, 혹여나 콧물을 주렁주렁 매달고 있는 모습이나 아파 지친 기색이 역력한 사진들을 보면 새어 나오는 한숨음 감출 수가 없다. 아픈 아이를 두고 온 죄책감이 다시 일어나는 순간이다. 갑자기 아이가 아프다는 연락이라도 오면 "죄송한데, 오늘 급하게 퇴근해야 할 것 같아요." 퇴근 시간쯤 떨어지는 업무에는 "죄송한데 곧 아이 데리러 가야 해서 오늘은 못할 것 같아요." 이번 주 회식은 어떠냐는 질문에는 "죄송한데 못 갈 것 같아요." 무슨 애 하나 키우는데 세상 죄송한 일은 다 나에게만 생기는 것인지,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자고" 이렇게 사나 싶다.


 Nevertheless,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사를 다니는 건 그 속에 살아있는 내가 있으니깐.

워킹대디는 없어도 워킹맘은 있으니깐,

그렇게 버티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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