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출장 중이었다. 그 때 남편은 한 달은 해외에서 근무하고 한 달은 한국에서 근무하고 다시 한 달은 해외로 출장가는 근무 형태였다. 그 시기에 유독 해외에 자주 나갔는데 1년 중 출장 기간이 총 5개월은 넘은 것 같다. 그리고 그 해 나는,, 내내 돌쟁이 아가와 함께 있었다. 아이가 태어나고 5개월 정도 되었을 때부터 남편이 출장을 다녔으니 그 이후 모든 육아는......
버스가 있으나 이용하기 쉽지 않고, 택시가 있긴 있으나 좀처럼 잡기 힘든 동네에 살고 있다보니 아이가 태어나면서 운전을 시작했다. 남편이 있을 땐 그래도 운전 필요성을 잘 못 느꼈는데, 혼자 육아를 하면서 아이와 지내다 보니 불편한 것이 한 둘이 아니었다. 아이 병원부터, 슈퍼 없던 동네에서 마트 장보기도 그렇고. 등센서가 유난했던 아이라서 바운서, 유모차를 타지 않았다. 싫어했다. 그런데 차에 타려면 카시트에 앉혀야 하는데,, 카시트는? 당연히 싫어했다. 그래서 운전 실력이 정말 확 늘었다. 카시트에 태우기만 하면 소리 지르고 악악 우는 아이와 단 둘이 운전을 하다보니 얻게 된 값진 정신승리라고 해둘까. 20분 정도 우는 건 기본이요, 40분을 내리 울기도 하고 울다 지쳐 잠들기도 부지기수다. 미안하지만 초보 운전자에게 울다 지쳐 잠든 아이는 그 때부터라도 운전에 집중할 수 있으니 차라리 고맙다. 다만 울다 지쳐 잠든 아이를 백미러로 힐끗 쳐다보는 초보 엄마는 그렇게 내리 울었다. 엄마도 엄마가 처음이라 참 버거운 순간들이었다.
더운 여름, 볼 일이 있어 아이를 태우고 운전을 하는데 찡얼찡얼 하는 아이를 잠깐 쳐다보고는 깜빡이를 켜고 바로 옆차선으로 들어갔다. 거울 확인보다 핸들이 먼저 움직인 것이다. 그 순간 5톤 트럭이 스쳐 지나갔고 정말 다행으로 부딪힌 것 같진 않았는데 손이 떨렸다. 마음은 더 떨렸다. 쿵쾅쿵쾅. 내려서 보니 작은 기스가 나긴 했는데 여튼 큰 사고가 아니라 정말 다행이었다. 놀란 마음으로 목적지에 가서 좁은 상가 주차장에 주차를 하다가 결국 뒷 범퍼를 세게 긁었다. 아찔했다. 트럭에 스친 여운에 마음이 벌벌 떨렸다.
집에 무사히 돌아온 후 다음날 부터 비가 몹시 내리기 시작했다. 그냥 오는게 아니라 하늘에서 퍼 붓는 수준으로 비가 내렸다. 그 다음 날도 비가 내렸다. 남편이 출장 가 있는 한여름 기간이었는데 주말 내내 비가 왔다. 평일에는 나 혼자 애를 보더라도 주말에는 일가친척 중 한 명의 도움을 받곤 했는데 그 주는 폭우가 내려서 그런지 이상하게 일정이 비었었다. 그래서 평일에 이어 주말에도 나와 아이 단 둘이 보냈다. 그런데 하루 종일 비가 오네? 아니 그 다음 날도 내내 비가 오네?
우리 집 현관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차를 긁고 아이와 내가 들어온 날 이후부터 내내 굳게 닫혀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사람도 내내 없고 문을 열고 나가는 사람도 없었다. 그 문을 바라본 채 집에만 있었다. 현관문을 열고 밖에 나가고 싶어졌다. 그런데 트럭에 한 번 스치고 나니 운전하기는 겁이 났다. 특히 이렇게 장대비 쏟아지는 상황에서 더욱 무서웠다. 장대비가 쏟아지는 데 유모차를 끌고 나갈 수도 없었다. 가까운 상가가 연결되어 있는 집도 아니었고. 아기띠를 하고 우산을 메고라도 나가볼 걸 그랬나?어느 정도의 비면 그렇게 하겠지만 그 정도의 비가 아니었다. 아니 그 무엇보다 그렇게 장대비를 뚫고서라도 갈 곳이 우리에겐 없었다. 돌쟁이 아가와 초보 엄마는 대부분의 가족이 모여 있을 주말에 그 험한 비를 뚫고 갈 곳이, 특별히 없었다.
그래서 갇혀 있었다. 3일을. 비 오는 내내
3일째 되던 저녁 비가 그치는 게 보여서 바로 유모차를 끌고 나갔다. 집에서 탈출했다. 옆 동네 살고 있던 동생을 불러 만났다. 몇 일만에 어른 사람을 만나 처음으로 하는 대화였다. 정말 진심으로 살 것 같았다.
그 후로도 남편의 출장 중에는 갇힌 느낌을 종종 받곤 한다. 그 후로도 비가 많이 오는 시기에는 그 때가 생각나기도 한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험한 비를 뚫고 아기띠를 하고 우산을 쓰고 까페라도 갈 걸 그랬다. 그러면 조금은 숨통이 트였을텐데,,, 그 때의 나도 엄마가 처음인데 어찌 알았겠는가 싶어 안쓰럽다. 내내 닫혀 있던 것은 우리 집 현관문이었고, 갇혀 있던 것은 나였는데, 지금도 묻혀 있는 이 마음은 어떻게 날려줘야 할까. 그 시절 첫 육아의 기억은 이렇게 다 슬픈 것들이 많아 마음이 참애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