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직을 하고 6개월을 회사에 다니면 육아 휴직 했던 기간에 받지 못했던 월급의 나머지 30%를 한꺼번에 받을 수 있다. 그래서 흔히 육아 휴직 후 복직한 워킹맘들에게는 6개월까지만 다녀보자라는 목표가 생긴다. 그렇게 버티며 6개월을 보내고 나면, 사람은 적응의 동물인지라 그 생활에 익숙해진다. 아이도 6개월 사이 한 뼘 더 자랐고, 남편과 나도 회사와 육아라는 줄다리기 속에서 어느 정도 균형을 잡아가며 일상에 적응해 갔다. 6개월 후 남은 육아 휴직 월급을 받고 나면 돈도 좋지만, 무엇보다 다시 사회에 적응했다는 사실이 무척 기분 좋았다. 무엇보다 내가 할 일이 있고 그 속에서 인정받고 있다는 자존감이 높아져 삶의 만족도가 조금씩 올라가고 있었다.
그 시기가 지날 때쯤, 혹시나 해서 해 본 임신테스터기의 두 줄이 보였다. 첫 번째 확인했던 몇 년 전에는 뛸 듯이 기뻤는데, 두 번째 확인되던 그 순간은 앞이 깜깜해졌다. 정전이 된 것처럼 머릿속이 멍해졌다. '이제, 나 어떻게 하지?' 전혀 계획이 없던 둘째였다. 생각조차 없어서 강하게 부인하던 나였다. "애 둘이면 회사 그만둬야 한다." 공공연하게 퍼져있는 사실이 명백한 진리라는 것을 복직하면서 아주 조금이나마 실감했다. 흔히들 혈육 황혼 육아라고 하는 도움을 받을 수 없어서 어린이집과 돌봄 도우미 분의 도움으로 어렵게 유지하고 있는 회사 생활이었다. 그래서 더더욱 둘째는 내 인생에 없다고 자부해 왔다. 회사를 떠나서도 육아 우울증과 스트레스가 컸기에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테스터기의 임신선은 분명 두 줄이었다. 잘못 본 게 아니었다. 어떻게 해야 하지 휴
남편에게 말을 했고 일주일 뒤 남편은 또 출장을 떠났다. 옘병. 모든 게 깜깜했지만 관성의 법칙으로 회사를 다녔고 퇴근 후 아이를 돌보며 뱃속 생명을 키웠다. 동료들이 한 여름에 왜 이리 감기가 오래가냐고 한 두 명씩 물어온다. 감기와 비슷한 입덧으로 콧물과 기침이 심하다. 무더운 한 여름에 맥을 못 추고 있다.
결국 첫째와 비슷한 시기에 아이를 낳고 함께 복직한 동료들을 불러 조심스레 말을 했다. "나, 둘째 임신했어." 10초의 정적 동안 멈추어진 눈동자와 입 모양이 한없이 적막하게 느껴진다. "미안, 축하해." 적막 속에 늦은 축하를 받는 둘째의 존재다. 그리고 이어지는 답 없는 질문, 가장 많이 받았던 질문, 나조차 해답이 없는 질문을 받는다. "어떻게 하려고?" 많은 것이 함축되어 있는 질문이다. 어떻게 낳아서 또 어떻게 키울 거니? 그 힘든 과정을 다시 겪을 거니? 회사는 어떻게 다닐 거니? 애 둘을 키우며 어떻게 회사를 다닐 거니? 애 봐줄 사람은 있니? 등등을 모두 함축한 말. "너 어떻게 하려고?" 나도 모르겠다. 나 자신에게조차 수도 없이 물었던 질문 속에 웃음기 없는 진심 어린 걱정이 오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