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태어나고부터 남편의 출장은시작되었다. 한 달 해외에 나가고 한 달 한국에 돌아오고 다시 한 달 해외로 나가는 일정의 연속이었다. 처음에는 몰랐다. 그 생활이 그렇게 고되고 외로울 줄은.. 아이가 5개월 쯤 남편의 첫 해외출장이 시작되었다. 아이와 나 둘만 남았다.
솔직히 아기가 태어났을 때 나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은 남편보다는 엄마다. 남편은 나와 같은 초보지만 엄마는 이미 아기를 키워 본 경험자다. 그리고 자식을 낳아 몸이 아픈 딸에게 밥도 해 주고, 정리도 해 주고 살림도 해 주신다. 무엇보다 엄마가 곁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심적 안정이 크다. 아이가 5개월 쯤 우리 엄마는 누워 계셨다. 내 출산 몸조리를 해 주신 뒤 허리를 아파하셨고, 병원에 가서 큰 수술을 받으셨다. 나의 아이가 처음으로 뒤집기를 할 때 쯤, 엄마도 비슷한 상태로 계셨다. 심적 안정제가 사라졌음은 물론, 엄마가 나 때문에 아프신 것 같아 많은 날들이 잿빛처럼 다가왔다.
처음 엄마가 되서 처음 아이를 키우는데 남편도 없고 엄마도 없다. 갑자기 드넓은 세상에서 나와 아이만 고립된 느낌이다. 아이는 하루 종일 울고 먹고 자고 울고 먹고 잔다. 내가 아무리 말을 걸어도 대답을 하지 않고 조금만 곁에 없어도 운다. 하루 종일 단 10분도 아이에게 떨어지지 못한 채로 며칠을 보내고 나면 몸의 피로도와 긴장도는 이루 말할 수 없이 높아진다. 육아는 단 30분만 홀로 휴식을 취해도 질이 많이 올라가는데 그럴 수가 없는 현실의 연속이었다. 문제는 심리적 피로도가 훨씬 높았다는 점이다. 호르몬의 변화와 함께 산후우울증이 더 심해지는 증상들이 보인다. 말을 하고 싶다, 어른의 말, 대화라고 하는 그것. 누구랑 말을 해야할까. 남편은 출장 중이라 연락이 바로 바로 되지 않고, 엄마는 홀로 아이를 키우는 딸을 보며 도움이 못 된다며 미안해하고 자주 우신다. 애써 씩씩한 척 하던 나도 전화를 끊고 나면 덩달아 눈물이 난다. 그래서 전화를 안 한다. 문자만 보낸다. 회사 때문에 살고 있는 동네는 회사 지인 말고는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는데, 아는 사람은 모두 회사에 있으니 이를 어쩐담...
현명하고 따뜻하신 시부모님은 당시 나에게 큰 힘이 되어 주셨다. 남편이 없는 주말 중 가끔은 시댁에 가서 보살핌을 받았다. 우리 집에 시부모님이 오시면 내가 할 일이 많아진다고 기꺼이 나와 아이를 데리러 항상 오셨다. 시댁 가는 길은 오랜만의 이 적적한 동네를 벗어나는 해방구이자 작은 여행같은 느낌이었다. 아이를 함께 돌봐주시려고 나를 부른 것인데, 생각해보면 처음으로 애 키우는 며느리가 안쓰러워 나를 돌보고 키워주신 것 같다. 어머님이 해 주시는 밥이 어찌나 뜨끈뜨끈 맛있던지.. 아이가 우는지 자는지 놀고 있는지 신경 안 쓰고 밥 한 끼 먹는게 어찌나 편하던지.. 홀로 모든 짐을 꾸려 들고 메고 다니지 않고 함께 아이를 데리고 외출 하는 것만으로도 콧바람 쐴 수 있는 시간들이었다.오랜만에 어른의 대화를 할 수 있는 북적북적한 시간 속에 나도 긴장이 풀리고, 아이도 신나한다. 아이는 엄마와 둘만 종일 붙어 있다가 다른 외부 환경에 노출되면 관심 있어하고 즐거워하는 게 느껴진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기인 것 같은데 모든 것을 같이 느낄 수 있는 일심동체 같기도 하다.
봄을 보내고, 여름을 보내고, 가을을 보내고 그 속에서 누워만 있던 아이는 걸어다닐 정도로 자랐다. 나도 분명 자랐다. 희생받는 모성에 대한 불만과 남편에 대한 불만이 많이 자랐다. 아이가 태어나면 힘든 과정의 연속이지만 그래도, 1년만 지나면 눈을 맞추고 서로만의 대화로 느낌을 전달할 수 있어 훨씬 편해진다. 조금은 수월해질 수 있다고 누군가 알려주었으면 조금 더 희망적이었을까? 홀로 겪는 육아의 세계가 암흑 같아서, 언제 끝날지 모르겠어서, 영원히 계속되는 줄만 알아서 커 가는 아이를 제대로 보지 못하고 불평만 했다. 세상 모든 엄마가 그러듯 아이 하나를 처음 키우는 그 시기가 제일 힘든 법이니깐. 그럴 수 있다는 것을 몰라서 하염없이 힘들어했다. 아이의 아가 시절 사진을 다시 보면 먹먹해지는 순간들이 지금도 많다. 아이의 밝은 미소와 행동이 이제야 보인다. 당시에는 사진을 찍으면서도 몰랐다. 끝없이 힘들고 힘들기만 했다. 한 생명을 돌보는 것이 나에게 떨어진 무거운 책임같기만 해서 누리질 못하고 짊어지기만 했다. 그래서 참 미안하다, 아이에게도 그 시절의 나에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