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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하 Oct 13. 2023

TEPS 대신 Talking

외나무다리에서 만난 외쿡 동료들

 미국과 국내 대기업의 합작 회사였던 첫 회사는 미국의 분위기를 상당히 반영하여 칼퇴가 무척이나 합당한 비현실적인 곳이었다. 그것 말고는 전혀 외국계 회사인지 느낄 수가 없었다. 공장 자체가 꽤나 안정적이어서 큰 변화 없이 부드럽게 유지가 되었다. 두 번째 회사의 끝없는 개발, 혁신에 비하면 처음 근무지는 아주 조용한 흐름이었는데, 당시 첫 회사였던 나는 그런 사실을 알리 만무했다. 제조 부서지만 개발 부서와 끼여 허구한 날 교대 근무와 비상근무를 밥 먹듯 하는 게 힘들다고 토로할 뿐이었다. 




 회사에서 여러 부서가 협업하여 아주 큰 개발을 진행하게 된 적이 있는데 제조 책임 엔지니어가 내가 되었다. 물론 내 뒤로 도와주는 선배님들과 무수히 많은 협업 부서가 있었으나 어찌 되었건 책임자가 되었다. 더욱이 큰 프로젝트라서 생전 교류가 없던 미국 엔지니어, 일본 엔지니어, 대만 엔지니어까지 모두 한국으로 와서 함께 진행하게 되었다. 미국 엔지니어가 올 때만 해도 "그래, 미국 회사이기도 하니깐 당연히 올 수 있지." 싶었다. 일본 엔지니어가 총괄 리더라고 올 때는 "아,,, 그래? 일본이 기술이 좋으니 배워야겠다." 싶었다. 그러다 프로젝트가 진행이 잘 안 돼서 유일하게 먼저 경험이 있는 대만 엔지니어가 올 때 되니깐 "마음대로 해라."의 심정이 되었다. 


 일도 일이지만 문제는 의사소통이었다. 당시만 해도 영어에 약간 울렁증과 내적 두려움이 있던 시기였다. TEPS 성적 때문에 대학원 졸업 인증을 못 받고 수료로 끝마친 상태였기 때문에 다시는 영어와 마주치고 싶지 않은 게 솔직한 심정이었다. 그런데 미국 엔지니어에 이어 일본, 대만까지 줄줄이 사무실로 들어오니, 원수까지는 아니지만 아무튼 외나무다리에 서 있는 기분이었다. 기술 부서에서 웬만한 회의와 업무를 도맡아 진행하지만, 현장에서 세부 사항들은 내가 직접 전하는 일들도 많은 상황이었으니, 피할 수 없는 현실에 까짓것 부딪히기로 했다. 영어 그까짓 거 뭐 대수라고



 다행히 낯가림과 두려움이 없는 성향 탓에 일을 떠나 외국 엔지니어들과 일단 친해졌다. 호구 조사를 기본으로 바디랭귀지와 영어를 섞어가며 친해지다 보니,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두려움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프로젝트가 장기화돼서 8개월 넘게 여러 외국 엔지니어들과 함께 일을 진행했는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반복되는 업무 속에 개발과 논의도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었다. 이럴 때 다시 한번 TEPS 시험을 봐야 하나 싶을 정도로 함께 생활하면서 많이 적응했던 것 같다. 



  외나무다리라고 생각했던 그곳이 아주 크고 튼튼한 배였던 것 같기도 하다. 철썩철썩 치는 파도가 있는 넓은 망망대해 외나무다리 위에 서 있다고 느껴져서 두려웠었다. 그런데 겪어내 보니 적잖이 파도와 함께 넘실거릴 줄 아는 큰 배에서 넓은 망망대해를 향해 나아갔던 것 같다. 그 이후로 외국인을 업무적으로 마주쳐도 "예전에 외국 엔지니어들이랑 친하게 일 많이 했는데"라고 두려움 없이 떠오르는 거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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