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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하 Jul 21. 2023

삼성의 공무원이라고,, 들어보셨나요?

시골이라서 가능했던,


옆 집에 숟가락 몇 개인지, 젓가락 몇 개인지 다 아는 1980년대식의 회사가 아직도 있다. "응답하라 1988" 분위기의 회사. 지금은 안 다녀서 정확히 모르지만 적어도 10년 전에는 확실히 그랬던 곳. 내 옆의 대리님, 과장님네 집숟가락 몇 개인지는 기본으로 안다는 말에 모두들 공감하면서 허허 웃는 곳. 허허 웃기들 때문에 모두 다닐 수 있었다. 사실 까칠하고 젊은 20대 시절에는 그런 과도한 관심이 참견 같고 잔소리 같아서 싫은 적도 있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런 시골이라서 그런 정 많은 사람들이라서 즐겁게 잘 지낼 수 있었다고 옛 동료와 웃으며 이야기를 한다. 더 다행인 것은 모두 그곳이 첫 회사라서 참 좋았다고, 그런 회사는 다시 못 만날 거라고들 말한다. "그게 회사야? 그런 회사가 어딨 어?"




 삼성에 입사하려면 SSAT라는 자체 입사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학점, 영어점수 모두 무관했다. 아무리 학점, 영어점수가 높아도 상관이 없었다. 들리던 소문에 의하면 SSAT 점수 높은 계열사 두 곳이 있었는데, 한 곳은 E 계열사이고 다른 한 곳이 내가 지원한 C 계열사였다. 면접을 보기 위해 이른 새벽 강남에서 회사 버스를 타고 깜빡 졸다 보니 회사에 도착해 면접을 봤고, 끝난 후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긴장감이 풀리면서 잠이 들었다. 그래서 회사가 시골 중에서도 깡시골에 위치한 줄을 몰랐다. 그렇게 시골인 줄 알았으면, 선택이 바뀌었을까 싶을 정도로 고민되던 시골이었다. 10월 말에 합격을 하고 본사 연수를 받고 3월이 되어서야 짐을 꾸려 처음 회사에 가보니, 이렇게나 서울에서 멀고 (무려 충청남도) 시골이라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누가 날 속인 걸까? 몰랐던 내가 어리석은 걸까?


 고속도로 톨게이트 주변은 꽤 시내 같고 사람 사는 곳 같아 나름, 괜찮았다. 문제는 도심을 지나 시골길을 하염없이 버스로 가다 보면 산, 밭이 한참을 나온다. 그리고 전혀 생뚱맞은 곳에 갑자기 공장 건물들이 쫙 나온다. 그곳이 인생 첫 회사였다. 삼성의 공무원이라고 유명했던 곳.


 8시에 출근해서 정말로 5시 퇴근하던 곳이었다 첫 회사는. 정확히 말하면 회사 버스 시간 때문에 5시 반 퇴근하던 곳. 5시 반 버스를 타기 위해 4시 반부터 업무를 정리하던 꿀 같던 곳, 정말 그런 곳이 있었다. 대기업 월급을 받으면서 공무원에 준하는 근무시간. 6시 넘어서까지 있으면 "왜 안 가? 사고 쳤어?"라는 질문을 수없이 받는 분위기. 왜 일찍 퇴근 안 하냐고 할 수 있을 때 하라고 정신교육받던 곳. 업무에 따라 조금의 차이는 있지만 그런 곳이었다. 다만, 문제가 생기면 아예 퇴근이란 것을 할 수 없었다. 한 밤중에도 회사 라인에서 문제가 생겨 전화가 오면 즉시 출근해서 처리해야 하는 곳. 그 한 밤 중에 문제라는 것이 1년에 몇 번일 수 있고 한 달에 몇 번 일수도 있고 수시로 교대 근무를 해야 할 수도 있는 그런 곳. 문제 해결될 때까지 시간 구애 없이 근무하며 해결해야 하는 강력한 책임이 따르는 곳이었다. 그중에서도 물건을 만들고 관리하는 제조 부서에서 근무했던 나는 라인 안 멈추게 하는 일이 가장 큰 업무였다.


처음 부서 배치를 받을 때는 사람이 참 모순적이더라. 모든 신입사원이 부서배치받고 처음에 벙 찌는 이유지. 원하지 않는 곳에 배치되었을 때. 회사라는 곳은 그런 곳이다. 언제나 "내가 여기서 왜 이런 일을?"이라는 의문으로 시작하지만 곧 시간이 흐르고 적응을 하면서 "그래, 돈 벌면 됐지."라고 수긍으로 안주하는 삶의 반복적인 곳.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나는 무섭게 적응해 냈다. 무서운 게 뭐냐면 공대를 나와서 그런가, 원래 또래 남자들 사이에서 부끄럽고 이런 건 전혀 없기도 했지만, 이렇게 많은 남자 선배부터 으른까지 모시고도 그렇게 잘 지낼 수가 없었다. 하물며 분위기 메이커였고, 할 말은 다 했다. 제조부서의 특성상 교대조 현장 근무자들과도 함께 일해야 하는데, 그것마저도 좋았다. 아는 사람이 많아지고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어서 좋았다. 문제가 생겨 한밤중에 교대조 근무자들이 연락하면 즉각 그 시각에 출근을 하게 되는데 그렇게 부대끼고 나면 또 한 층 친해져 있었다.  그렇게 밤낮을 세고 같이 일을 하다 보면 어찌 사람이 일 이야기만 하겠는가. 으르신들 험담도 하고, 개개인의 이야기도 하고 결혼생활 이야기도 하고 그렇게 몇 년을 함께 지내면 결국 그 집에 숟가락 몇 개인지, 젓가락 몇 개인지 다 알게 되는 것이다.


회사 전체 인원 자체가 적고 퇴사자도 적어서 정말, 웬만한 사람은 거의 다 아는 이런 시골 같은 회사였다. 그것도 대기업이다. 무려 미국과 삼성의 합작회사. 제조회사인데 영업이익이 61%였던 곳. (2012 매출 4.4조 영업이익 2.7조) 그 당시 장사가 잘 돼서 분위기가 좋고 야근이 없는 것도 사실이었지만, 장사 안 되는 지금도 분위기도 여전히 좋다고 한다. 공정이 더 안정되었으니 특별한 문제없으면 야근 없는 삶도 비슷하게 유된다고 한다. 이쯤이면 특유의 기업 문화와 시골이라는 지리적 이유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외부 사람도 적고 외부 문화도 적으니 회사 내부로 똘똘 뭉치는 격이다. 그 안에서 서로 만나 결혼하는 비율도 상당히 높고, 그러면 또 숟가락, 젓가락 개수는 더욱 알기 쉬워진다, 한 다리 건너 가족도 많은 그런 곳.


 그곳에서 나는 첫 사회생활을 무척 재미있게 했다. 입사 다음 해 동기들 중에서 근무시간 Top3 오를 정도로 새벽 근무가 많았지만,  함께 으쌰으쌰 해 줄 선배들이 많아서 열심히 다닌 것 같다. 생각해 보면 어느 곳에서나 일이 힘든 것은 어느 정도 견딜만한 거다. 결국은 사람이다. 일이 아무리 쉬워도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거지 같으면 그곳이 시궁창이고 아무리 일이 힘들어도 동료나 상사가 괜찮으면 그래도, 버틸 수 있는 격이다. 나는 다행히 후자였다. 함께 한 사람들이 좋아서 잘 지낼 수 있었고 그래서 항상 감사했다. 금도 많이 보고 싶다. 첫 회사의 옛 동료라 하면 왜 더 애틋한 부분이 있지 않은가..


 적어도 영업이익 넘사벽 회사를 그룹에서 매각하기 전까지는 아주 안정되게 잘 지내고 있었다. 매각 소식이 사실화되면서 큰 회오리가 회사 내에 몰아쳤다. 그리고 서로 함께했던 동료들과 뿔뿔이 흩어졌다. 잘들 지내고 계신가요..


잘들 지내고 계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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