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드러기 블루스

우리가 보지 않는 순간에도 별은 빛을 발하고 있다.

by 별사탕아빠

저녁 무렵 초등학생 아이의 몸 여기저기로 두드러기들이 널따랗게 일어나기 시작했다.


고등학생 때 식중독 때문에 시작됐던 두드러기로 인해 근 일 년 동안 지독하게 고생했던 나는 덜컥 겁이 나 늦은 시간이었음에도 서둘러 아이를 병원으로 데려갔다.


정확한 원인을 구체적으로 진단할 수는 없지만 알레르기로 보인다며 주사처방을 내린 의사의 처지 덕분인지 아이의 두드러기 증세는 빠른 속도로 잡혔다.


한시름 놓기는 했지만 또다시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을까 걱정하는 우리 가족에게 의사는 구체적인 이유를 알기 위한 알레르기 검사를 권유했고, 아이를 위해서도 필요하다는 생각에 우리는 의사의 권유를 따랐다.



며칠이 지난 후 받아 든 검사결과를 확인한 나는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는데, 그 이유는 알레르기를 유발한 음식이 그날 고작 새끼손톱 크기 정도로 먹었던 복숭아라는 사실 때문이었다.


사정을 알게 되자 기가 막히기도 했지만 아이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이 더 컸는데, 복숭아를 먹고 싶지 않다는 아이의 의견을 외면하게 꼬셔서 먹도록 만든 사람이 바로 나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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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아이에게 알레르기가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 것은 아이가 갓난아이 시절부터였던 것 같다.


토마토를 먹고 얼굴이 약간 불긋불긋해진 적도 있고, 벌레에 물리면 유독 부풀어 오르는 피부나 꽃가루가 심하게 날리면 눈을 비벼대는 모습에 알레르기가 아닐까 걱정을 하면서도 크게 문제 된 적은 없었기에 자라면서 좋아질 것이라는 식의 안일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아이의 알레르기가 심각하다고 생각하게 된 것은 호두 때문이었다.


대보름을 앞둔 주말, 토요일이면 늘 그래왔듯 부모님과 식사를 하기 위하여 우리 가족이 본가(本家)에 갔을 때,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대보름을 위한 음식과 부럼을 위해 나물과 견과류를 손질하고 계셨다.


땅콩을 까거나 호두를 깨고 있는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모습이 신기해 보였는지 아이는 자신도 해보겠다고 나섰는데, 호두를 만졌던 손을 아이가 입술에 대자 순식간에 아이의 입술이 붓기 시작했고, 겁이 난 아이는 울어대기 시작했다.


심상치 않은 사태에 아내와 함께 아이를 데리고 응급실로 향했었는데, 그 이후로 호두에 대해 경각심을 가지게 됐다.



나는 검사결과를 보면서 놀람과 동시에 경이롭다는 생각을 했는데, 아이에게 알레르기를 유발하는 음식들을 보니 대체로 처음부터 아이가 먹기를 거부했던 것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평소 음식을 가려먹는 아이의 버릇을 고치려고 했던 부모의 행동들이 아이를 해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자 미안함과 동시에 앞으로 어떻게 할지 걱정이 되었다.


어쩌면 사람은 자신의 몸에 맞지 않는 것을 본능적으로 아는 능력을 가졌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자 앞으로는 아이가 싫다는 음식을 먹이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다양한 음식을 먹어야 골고루 영양을 섭취할 텐데라는 식의 걱정에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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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몸에 생기는 만성적인 두드러기의 가공스러운 위력을 누구보다도 잘 안다.


고등학교에 입학한 첫 봄방학 기간에 고등어를 잘못 먹고 식중독에 걸려 장장 일 년동안을 만성 두드러기라는 후유증으로 고생하고 지냈기 때문이다.


당시 내게 생겼던 두드러기는 일단 어디 한 군데라도 생기면 금세 온몸으로 퍼져나갔고 두드러기로 인해 부풀어 오른 부분은 너무 가려워서 참을 수 없을 정도였다.


위치도 가리지 않는 두드러기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발생했는데, 크기도 커서 두드러기 하나가 손바닥만 하게 커지는 경우도 있었다. 게다가 너무나 가려워서 맨 정신으로 버티기는 힘들 정도였는데, 수업시간에 발생하는 일이 잦았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일단 두드러기가 발생하면 가려워서 긁고 싶다는 생각이 들고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수업내용이나 선생님의 지적조차 귀에 들어올 리 없어서 참으려 애를 쓰다가 결국 책상에 머리를 대고 잠을 청하는 것이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처음엔 ‘감히 어떤 놈이 내 신성한 수업시간에?’라는 생각을 가졌던 선생님들도 나의 이마에 혹처럼 넓게 퍼진 두드러기를 보면 이내 애처로운 눈빛이 되면서 두 손을 들었으니 그 일 년 동안의 수업시간은 나에게는 잠잔 기억밖에 없다.



그런 내 사정을 알았는지 몰랐는지 담임 선생님은 나를 볼 때마다 몰아붙였는데, 그 때문에 더 힘들었다.


도수 높은 돋보기를 낀 완고한 선생님에 대해서 '우리나라 최고 명문대학의 법학부를 졸업했는데, 10년 동안 사법고시에 도전했지만 실패를 했다'는 소문이 아이들 사이에 돌았는데, 사실인지는 알 수 없었다.


문제는 완고했던 담임 선생님은 내 이마에 보이는 두드러기 따위에는 아랑곳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수업시간이 끝나면 거의 매일 나는 교무실에 가야 했는데, 그때마다 연합고사에서 좋은 성적을 받았으면서 입학한 이후 왜 계속 성적이 떨어지냐는 꾸지람을 들어야 했다.


선생님의 잔소리보다 더 나를 힘들게 만들었던 것은 공부를 소홀리했다는 이유를 들어 A3용지 한가득 빽빽하게 글을 쓰는 '빽빽이'라는 숙제를 별도로 부과했다는 것이다. 가뜩이나 몸이 안 좋은 데다 손도 떨려 글씨가 느린 나에게 빽빽이를 채우는 것은 너무도 힘들었는데, 그것도 모자라 시험을 보고 성적이 떨어지면 솥뚜껑만 한 손으로 공부를 열심히 하라며 뒷목을 때렸는데, 사정을 몰라주는 선생님의 행동에 서럽다는 생각까지도 들었다.



두드러기로 인해 겪은 육체적 고통도 작지는 않았지만, 고생하는 아들을 보며 어머니와 아버지가 자책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더더욱 나를 힘들게 했다. 당시 어머니는 어려워진 살림에 조금이라도 손을 보태기 위해 동대문에 가게를 얻은 아버지와 함께 장사를 하셨는데, 그 때문에 내가 그런 일을 당했다고 믿으시는 것처럼 보였다.


그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머니는 나의 치료를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하셨다. 주변에서 조금만 용하다는 병원에 대한 소리만 들리면 아무리 멀어도 찾아갔다. 하지만 결과가 그다지 신통치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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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히 그 시절은 나에게는 암흑기였다.


일 년 동안 수업조차 제대로 듣지 못해서 뚝 떨어진 성적은 이후 대학입시까지 영향을 미쳤다. 중학교때와는 달리 가뜩이나 외어야 할 단어가 많았던 수업을 일 년이나 건너뛴 때문인지 문장을 읽은 것도 힘들어진 영어시간이면 선생님의 눈을 피하기 위해 급급할 정도였다.


우등생이었던 아들의 성적표에서 '양'이라는 상상 못 할 영어점수를 보고 놀랐을 텐데도 별다른 말씀을 하지 않고 도장을 찍어 주시던 어머니와 아버지의 마음이 얼마나 속상했을지는 지금도 가늠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최근 내가 암흑기라고 생각했던 그 시절이 어쩌면 인생에서 가장 필요한 시간이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 것은 나이가 든 이후였다.


다람쥐 쳇바퀴 같은 시간을 보내다가 무려 일 년 정도의 기간을 먹고 자기만을 반복하는 생활습관 덕에 그때까지 닫혀있던 성장판을 자극해 키와 체중 등을 외형적 성장에 영향을 미쳤고, 그 덕에 늘어난 체력덕에 운동능력까지 늘어난 것이 두드러기의 극복의 결과물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가 모르고 지났을 뿐 어둡기만 한 것 같았던 그때의 시간이 가을에 떨어진 씨앗들이 봄에 싹을 틔우기 위해 추운 겨울 동안 어둡고 깜깜한 흙속에 파묻혀 때를 기다리는 자연현상처럼 내 인생에 영양분을 채운 시간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이런 생각을 하는 동안 문득 당시 이마를 가득 채운 두드러기에도 나를 다그치기 만했던 야속했던 선생님에 해단 부정적인 이미지가 누그러지며, 내가 잘못 생각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선생님은 지독한 근시여서 이마에 있던 두드러기를 보지도 못한 것은 아닐까?’



그나저나 아이의 알레르기는 좋아지기는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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