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쉬웠던 영구결번 지정
초등학교 2학년 아이의 참관수업을 위해 학교에 갔다가 교실 뒤에 붙어있는 게시물을 보고 아이의 장래희망이 야구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사실 아이의 행동을 보면서 야구를 좋아한다는 사실은 어느 정도 알 수는 있었다.
야구중계가 있는 날이면 채널을 돌려 방송을 틀었고, 선수들의 응원가를 따라 불렀고, 경기가 끝나면 부리나케 아빠의 핸드폰을 들고 순위를 확인하는 일련의 모습에서 야구를 좋아한다고는 짐작했지만 장래 꿈으로 생각하고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못 한 일이었다.
아이가 야구를 좋아하게 된 것이 어쩌면 아빠의 영향을 받았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끔이라곤 하지만 TV로 야구 중계방송을 틀어놨던 것도 갓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이에게 장난감 야구세트를 선물한 것도 나였으니 말이다.
확실히 근래에 들어 주말 날씨가 약간만 좋으면 동네에 있는 초등학교 운동장에 가서 배팅연습을 하자며 아이가 잡아끄는 일이 잦아졌는데, 몸이 피곤하다는 이유로 자주 응해주지 못했던 일들이 생각나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아직은 어린 나이다 보니 지금 아이가 갖고 있는 꿈이 계속되기보다는 바뀔 가능성이 훨씬 크지만 변화의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아이의 부탁을 들어주지 못할 합당한 이유가 될 수는 없다는 생각에 앞으로라도 아이의 희망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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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프로야구가 시작된 것은 내가 중학교 3학년이던 1982년이었다.
출범당시부터 ‘어린이에게 꿈과 희망을’이라는 슬로건을 제정한 것을 보면 우리나라 프로야구는 창단할 때부터 아이들을 염두에 두었던 것 같다.
40년의 세월의 부침을 반영하듯 원년에 창단한 구단 6개 중 지금 남아있는 구단은 절반도 되지 않고, 당시 개막경기가 열렸던 동대문운동장마저 사라져 버렸다. 그동안 많은 위기도 있었다. 코로나 때는 아예 관중이 없는 경기까지 치러야 할 정도였을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우리나라에서 최고의 인기스포츠로 자리를 잡았고, 작년에는 사상 처음 천만관중을 돌파하는 기념비적인 성공을 누렸지만,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프로야구의 흥행을 낙관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예상과 다르게 우리나라 프로야구는 첫 개막경기부터 관심을 받았는데, 인기몰이의 주역이 되었던 것은 바로 개막전의 야구경기 그 자체였다.
흔히 야구 중계를 하면서 아나운서들이 쓰는 표현 중에
‘각본 없는 드라마입니다.’라는 것이 있는데,
우리나라 프로야구의 드라마틱했던 개막전은 그 표현이 딱 어울렸다.
결국 개막전의 강렬했던 인상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게 만들었다.
…
지금은 역사문화공원으로 더 많이 알려진 옛 동대문 운동장에서 열린 원년 개막전에서 서울 연고의 MBC청룡을 상대한 팀은 파란색 유니폼을 입은 삼성라이온즈였다.
초반은 완전히 삼성의 흐름이었다. 국가대표 집합소로 불렸던 삼성에서도 이만수 선수의 활약이 눈에 띄었는데, 그 결과 그 선수는 안타, 타점, 홈런 등 타격의 모든 분야에서 프로야구 제1호를 기록하는 기염을 토했다.
하지만 MBC청룡도 쉽게 물러나지는 않았다. 계속적으로 끈덕지게 물고 늘어진 결과 동점을 이루었고, 해거름 무렵까지 이어진 경기는 연장 10회에 가서야 결말이 났는데, 승부의 종지부를 찍은 것이 해거름 무렵 나왔던 이종도 선수의 끝내기 만루 홈런이었다는 점 때문에 사람들은 환호했다.
그러고 보면 프로야구 원년의 모든 중요한 순간에는 만루 홈런이 있었다. 개막전뿐 아니라 올스타전이나 한국시리즈의 패권을 결정짓는 순간에는 그랜드슬램이 등장했으니 원년 프로야구는 만루 홈런의 잔치라고 해도 될 것 같다.
결국 프로야구의 인기몰이를 하는데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은 경기력이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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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아이와 같이 야구경기를 본다.
원래 내가 좋아하는 팀을 같이 응원하게 된 것도 좋았고, 선수들의 응원가를 따라 부르거나 광고를 할 때면 선수들의 흉내를 내며 재롱부리는 모습을 보는 것도 즐거웠다.
가끔 아이에게 경기의 흐름이나 대처하는 방법에 대해서 일장연설을 할 때도 있는데, 야구 자체에 흥미가 있어서인지 또랑또랑하게 눈을 빛내면서 듣고 있는 모습을 보면 어깨가 올라간다.
“저기서 타자는 무조건 기다려야 해!”,
“여기선 투수는 맞더라도 승부를 해야 돼”
어느 날 아이가 불쑥 질문을 던졌다.
“아빠, 왜 OOOO 팀이 좋아?”
아마도 서울연고팀을 응원하는 친한 친구들과 다른 팀을 아빠가 좋아하는 이유가 궁금했던 것 같다.
“응 아빠가 정말 좋아하는 선수가 있었던 팀이어서 좋아해”
라고 망설이지 않고 대답하면서 나는 팀의 우승을 위해 야구인생을 불살랐던 한 선수를 생각했다.
…
그 선수가 뛰는 경기는 가슴을 뛰게 만들었고, 감동을 선사했다.
선수의 투혼을 영원히 기억하고 싶었던 팬들의 성원 덕분이었는지 최고의 투수에게 수여되는 한국판 사이영상에는 그 선수의 이름으로 불려졌다.
아마추어일 때부터 엄청났던 그 선수는 세계야구선수권대회에서 보여줬던 강렬한 구위 때문에 일찍부터 메이저리그의 부름을 받을 정도로 실력이나 기록도 엄청났지만 야구외적으로도 성실하고 다른 사람을 위해서 노력하는 사람이었던 것 같다.
당시 야구계에서 최고의 자리에 있었기에 혼자만 생각했다면 호사를 누렸을 테지만 2군 선수들의 열악한 형편을 알게 된 후 처우개선을 위해 노력을 하다가 고향구단의 눈 밖에 났고, 결국 방출된 후 은퇴를 선택했다.
실력이나 인간성 어떤 면에서 보더라도 본받을만한 그 선수를 괘씸하게 여겼던 구단은 그 선수가 죽을 때까지도 홀대했을 뿐 아니라 선수의 등번호를 영구결번으로 지정하는 일마저 주저했던 것 같다.
그나마 그 선수에 대한 추억을 잊지 못했던 고향 팬들의 노력으로 늦게나마 영구결번으로 지정된 것은 참 다행스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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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배번이 영구결번으로 지정되는 것은 프로야구 선수에게는 최고의 영예로운 일이다.
더욱이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선사하겠다는 출범당시의 취지를 생각하면 영구결번으로 지정받은 사람은 실력이든 인성이든 뛰어나서 다른 사람의 본이 되어야 하는 것이 당연해 보인다.
흑백차별에 대한 저항정신을 기리기 위해 미국 메이저리그 전 구단에서는 최초의 흑인선수였던 재키 로빈슨 42번을 결번으로 지정했던 것은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우리나라 프로야구의 최초 영구결번은 성적이나 업적과 무관하게 부여되어 버렸다. 더욱이 성적이나 실력을 비관하여 투신한 선수에게 부여했다는 사실은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선사하겠다는 취지에는 전혀 부합하지 않는다는 점을 생각하면 더욱 아쉬움을 감출 수 없게 된다.
어쩌면 최초의 영구결번에 대한 이런 당혹스러운 결정을 내린 것이 프로야구 최초로 창단되어 처음으로 우승했던 팀이고 보면 영구결번마저 1호여야 한다는 조급증의 결과였을지 모른다는 어처구니없는 생각이 들자 더더욱 마음이 착잡해진다.
지금이라도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겠다는 출범당시의 각오를 지키기 위해서 분명하게 잘못된 부분은 바로잡는 모습이 보였으면 좋겠다.
아이가 함께 응원하면서부터 내가 좋아하는 구단의 순위가 올라가면서 욕심이 난다.
다시 한번 내가 좋아한 선수가 활약했을 때처럼 감동적인 우승의 순간을 볼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