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하늘 어디엔가 우리의 고향인 엄마별이 있을지도
겨울이라고 하더라도 이례적인 폭설과 함께 추운 날씨가 며칠 동안 계속되었다.
저녁식사를 준비하려고 준비를 하려던 아내는 잠시 갸웃거리더니 장모님과 통화를 마치자 속상한 표정으로 혼잣말을 했다.
“이럴 것 같았어”
…
장모님이 며칠 전 폭설이 내릴 때 눈길에 미끄러져 병원신세를 졌다고 나에게 말하는 아내는 스스로를 책망하고 있는 것 같았는데, 평소 오지랖이 넓은 장모님이 연락이 없으면 아픈 경우가 많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음에도 진작 연락하지 않았던 스스로를 탓하는 듯이 보였다.
사실 아내가 빨리 알았다고 해도 별반 차이가 없었을 것임에도 전전긍긍하고 있던 아내의 짐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고 싶었던 나는 당장 처가에 가서 같이 식사를 하면서 상태를 눈으로 확인하자는 제안을 했고, 혼자가 되신 후 끼니를 잘 챙겨 드시지 않고 거르기 일쑤인 장모님의 성격을 잘 아는 아내는 반색했다.
처가에 가는 길에 정육점에 들러 고기와 사골국물까지 사서 아내는 저녁을 차렸다. 평소에 고기를 좋아하지 않는 장모님조차도 영양보충을 해야 뼈가 빨리 붙을 수 있다는 말에 밥을 사골국물에 말아 고기와 함께 드셨는데, 다행히 장모님의 상태는 생각보다 나쁘지 않은 데다 병문안을 핑계로 오랜만에 식사를 해드릴 수 있어서인지 아내의 마음은 어느 정도 풀린 것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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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를 마치고 집을 향해 나설 때는 11시를 넘어서고 있었는데,
한동안 눈이 내린 데다 추운 날씨 때문에 생긴 하강기류가 계속된 영향인지 밤하늘은 너무나도 맑고 상쾌했고, 시야마저 탁 트여 보는 것만으로 기분이 좋아졌다.
옆에 있던 아이는 반달이 크게 떴다면 즐거워하다가 갑자기 내 손을 잡아당기며 말했다.
“아빠, 별이 다섯 개나 보여!”
아이의 말에 하늘을 올려다보자 평소보다 많은 별빛이 눈에 들어왔다.
근시인 내 눈에 보이는 것만 얼추 세 봐도 예닐곱이 넘을 정도였으니, 아이에게는 많은 별이 보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아이의 눈에 보이는 별의 수는 점점 늘어났다.
“와 서른다섯, 서른여섯..”
“근데 아빠, 카시오페이아 알아?”
“헤라클레스는 말이야”
별의 수를 세던 아이가 갑자기 나에게 별자리나 신화에 대한 얘기를 시작했다.
.
.
“근데~말이야!, 아빠 어렸을 때 은하수를 본 적도 있다~.”
왜 그랬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의 입에서는 철부지 같은 자랑이 흘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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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나는 예전에 은하수를 본 적이 있다.
내가 초등학생이던 어느 가을 서울에 있는 우리 집 마당에서 올려다본 하늘에는 은하수가 뿌옇게 펼쳐져 흐르고 있었다.
인공조명이 워낙 많은 요즘이야 두메산간에서도 보기 힘들었던 은하수를 서울하늘에서 보게 된 것은 등화관제의 덕분이었다.
등화관제는 민방위 훈련의 일종이었는데, 전쟁 중 밤에 시행되는 적의 공습을 대비하기 위하여 집안의 모든 불을 끄거나 혹은 아주 두꺼운 커튼을 사용해서 집밖으로 나가는 빛을 완전히 막아야 했다.
등화관제가 시작되면 하늘은 별만 가득한 말 그대로의 별천지가 된다.
게다가 컴컴한 어둠 속에서는 귀뚜라미나 여러 풀벌레소리가 더욱 크게 들리게 되는데, 별이 반짝이는 진동주기와 “찌르르, 찌르르”하는 벌레의 울음소리가 맞아떨어지면 풀벌레소리는 별이 내는 소리처럼 들렸다.
그래서 어린 시절 나는 등화관제 훈련이 시작되면 항상 마당에 나와서 별이 내는 소리를 듣기를 좋아했는데, 전쟁을 대비한 훈련의 영향으로 아름답게 반짝이는 별을 볼 기회가 늘었다는 사실이 참 아이러니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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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서 생각에 빠져 있던 나는 다시 아이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뜬금없이 아이에게 질문을 던졌다.
“은하수가 영어로 뭔지 알아?”
아마도 헤라클레스에 관한 아이의 이야기를 듣다가 헤라의 젖이 흩뿌려졌다는 은하수 이름에 얽힌 그리스신화 연상이 되어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사실 은하수에 관한 많은 이야기들 중에서 그리스인들의 발상이 가장 인간적이기도 한 데다 실제로 내가 본 은하수의 모습도 우유를 뿌려놓은 것처럼 뿌옇게 보였다는 점에서 더욱 잘 어울리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우리는 모두 별의 자손이라는 코스모스 저자의 말이 생각나면서, 어쩌면 인간이 별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은 과학적 호기심보다는 자신도 모르는 출생의 비밀에 대한 알 수 없는 끌림이거나 떠나온 고향에 대한 막연한 그리움 때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