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 잠자리, 벚꽃축제, 야경, 코끼리 등 가족의 추억이 담긴 공간
며칠 전 주말이었다.
아침부터 들뜬 아이의 목소리가 집안에 가득했는데, 모처럼 친구네 가족과 함께 어린이 대공원에 놀러 가기로 약속한 날이었기 때문이었다.
사실 이전에도 우리 가족은 어린이 대공원을 자주 갔었는데, 예쁘게 꾸며져서 볼거리가 많다거나 가족 모두가 동물을 좋아한다는 등 많은 이유도 있었지만, 멀미 때문에 원거리까지 이동하기를 싫어하는 아이가 가기에도 적당한 위치에 있다는 점이 가장 크게 작용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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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같이 가기로 했던 친구는 아이와 1학년 때 같은 반이었다. 하지만 우리 아이도 그 친구도 숫기가 적다 보니 평소 길에서 만나도 쑥스럽게 손을 흔드는 정도의 인사만 하고 지내던 사이였는데, 우연한 기회에 같이 햄버거를 먹으러 갔다가 친해졌다.
더욱이 비슷한 시기에 육아휴직을 했던 엄마들끼리는 공감하는 부분도 많았던 때문인지 서로 간에 나이차가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스스럼없이 연락하는 사이가 되었는데, 보통은 추진력 좋은 아내가 꺼리를 만들어 제안을 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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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부터 화창한 날씨면 유모차에 태워 수시로 나들이를 왔던 곳이라 나름 마음이 편했는지 대공원에 도착하면서부터 아이의 말이 많아졌다.
“이쪽으로 가면 뭐가 있고, 저쪽으로 가면 뭐가 있어”라거나...
‘재규어와 표범의 무늬’가 어떻게 다른지에 관해 아는 이야기나 “저쪽에는 수달이 있다”라는 식으로 자신이 아는 내용을 친구와 그 동생을 보면서 자신 있게 이야기하고 있는 아이의 모습이 약간은 낯설어 보였다.
이런 추억거리들이 하나씩 쌓이면 언젠가는 아이에게도 이곳에서의 기억들이 소중해 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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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 신입생이었던 시절 나는 한 동아리에 가입했다.
젊어서 그랬던 것인지 빨리 친해지고 싶어서 안달이 났던 동기들 몇 명이 주동이 되어 중간고사가 끝난 후 단체로 야유회를 가기로 했는데, 야유회 장소로 결정된 곳이 어린이 대공원이었고, 그곳을 추천한 사람은 다름 아닌 나였다.
잔디에서 게임하며 서먹함을 없앴고, 놀이기구를 타면서 더 가까워진 우리에게 찾아온 밤의 휘황찬란한 불빛과 벚꽃의 향기는 두고두고 이야깃거리가 되었다.
그리고 우리 학번이 시작했던 대공원 벚꽃놀이는 이후 신입생들에게도 전통처럼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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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지고 보면 내가 처음 어린이 대공원이라는 장소와 인연이 시작된 나이는 지금 아이와 비슷한 나이였을 때였던 것 같다.
서울로 이사하고 나서 한동안 바빴던 아버지께서 가족 나들이 장소로 정한 곳이 바로 어린이 대공원이었다. 우리가 서울로 오기 한 해전 어린이날 개장한 어린이 대공원에서 여러 가지 동물을 보는 것도 즐거웠지만 어린 나의 눈에 가장 신기했던 것은 지금의 ‘범퍼카’처럼 동전을 넣으면 전기로 움직이는 사자모양의 자동차였다.
별로 기억하고 싶지 않았던 일도 있는데, 어느 날 사람들이 단체로 한강을 건너는 모습을 TV에서 보던 내가 해군출신이셨던 아버지에게 물었다.
“아버지는 수영할 줄 알아요?”, “수영? 하지”
“아버지도 한강 건널 수 있어요?”, “에이 저 정도야 하지”
“그러면 저 수영 좀 가르쳐 주세요”
이후 아버지는 야외 수영장이 있었던 어린이 대공원으로 나를 데리고 가셨는데, 문제는 이후에 발생했다.
군대에서 그렇듯이 아버지는 어린 나를 물속으로 던져버렸고, 나는 그날 이후 수영 배우기를 포기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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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어린이 대공원과 관련된 추억에 빠져있던 나를 깨운 것은 아이들의 소리였는데, 갑자기 솟아오른 분수의 물줄기를 본 아이들은 기쁜 나머지 너나없이 분수를 향해 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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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를 보니 중학교 때 대공원에 왔다 겪었던 일이 생각났다.
2학년이 되면서 나는 시답잖은 이유로 문예부로 특별활동부서를 바꾼 나의 앞에 떨어진 첫 번째 난제는 새싹회에서 개최하는 어린이날 기념 백일장에 참가하는 일이었다.
사실 책을 읽는 것은 좋아했지만 글을 쓰는 것은 좋아하지 않았던 나는 백일장 자체를 가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다른 친구들이 학교에서 수업을 받고 있는 시간에 어린이 대공원에 간다는 사실이 즐거워 문예부 선생님을 따라나섰다.
우리가 대공원에 도착했을 때는 여러 학교로부터 온 많은 학생들이 이미 자리를 잡고 있었는데, 어린이날 노래를 작사한 분의 인사말이 끝나자 백일장의 시제가 공개되었는데, 바로 ‘분수’였다.
시를 썼던 별다른 이유라고 할 것도 없다. 글을 쓰는 것 자체를 싫어하는 나로서는 산문은 언감생심이었으니 짧게 쓸 수 있는 시가 제격이었다.
그렇게 시를 쓰고 있던 내 옆에 갑자기 다른 학교 형 - 아직 교복자유화 이전이라 교복에 붙어있는 배지만 보면 어느 학교인지 그리고 몇 학년인지도 알 수 있었다. - 들이 다가왔고, 그중 한 명은 8줄 정도 되는 내 시를 곁눈질로 보더니 한 마디를 툭 던졌다.
“야! 넌 무조건 떨어지겠다.”
처음부터 입선에 대한 기대 같은 것은 없어서 빨리 써서 제출하고 놀아야지라는 생각으로 글을 쓰고 있었지만, 난생처음 보는 사람의 말에 궁금한 나머지 나는 이유를 물었다.
“잠자리가 소재로 들어가면 낙선이야!”라는 지극히 간단한 대답과 함께 자신의 경험담이 돌아왔다. 즉, 그 형은 지금까지 여러 차례 백일장에 참가했는데, 잠자리를 소재로 할 때마다 떨어졌다는 말과 함께 나더러 새로 시를 쓰라고 했다.
하지만 빨리 놀아야 한다는 생각만 머리에 차 있던 나는 그 말을 듣자 도리어 떠 빨리 내가 쓴 원고지를 제출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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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랍게도,
나는 그날 냈던 시 때문에 백일장에서 동상을 받았다.
더욱이 그날은 지금까지 살면서 내가 참가한 유일한 백일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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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나에게 어린이 대공원은 오작교였다.
소개팅으로 알게 된 후 거의 매일 만나면서도 스킨십에서 만큼은‘I’ 성향을 티를 팍팍 내고 있던 나를 아내와 부쩍 가까워지게 만들었던 공간이 이곳이었다.
달콤한 솜사탕을 입에 문채 동물을 구경하는 것도 좋았지만, 놀이기구를 타면서 부쩍 서먹함을 지워갔고, 아름다운 야경을 바라보면서 친밀감을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우리 가족은 약간 날씨가 좋은 날이면 어린이 대공원을 생각한다.
그런데 이번에 아이 친구네 가족과 같이 가게 됐던 이유는 특별한 이유가 있었는데, 한 TV프로그램에서 어린이 대공원에 있는 코끼리의 정서적인 안정을 꾀하기 위해 다른 지역에 넓은 공간이 있는 곳으로 이전할 것이라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우리 가족이 제일 좋아하는 코끼리를 다시 볼 수 없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 서글펐지만, 코끼리의 행복한 미래를 위해서는 잘 된 일이라는 생각에 이별을 고하기 위해 우리 가족은 코끼리 사육사에서 손을 흔들었다.
훌쩍... 코끼리야 잘 가, 행복해야 해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