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만한 놈은 때려잡기 쉽다!
독후감을 쓰려면 막막하다.
미니 독후감은 만만하다.
‘미니’라는 말이 금세 할 수 있고, 잘하지 않아도 되는 느낌이다.
독서 공책을 폈다. 핸드폰에 찍어둔 문장도 훑어본다.
떠오르는 질문을 세 개 쓴다.
그 질문을 보며 생각나는 대로 짧게 쓴다.
나의 질문 1 당신은 자기 자신 그 이상이 되어 본 경험이 있나요?
나의 질문 2 운명을 사랑한다는 건 어떤 걸까?
나의 질문 3 우연은 정말 우연일까?
운명을 사랑한다는 건 어떤 걸까?
책을 읽고 이런 질문이 생겼다.
운명이란 건 분명 있다. 가족이란 인연, 사랑에 빠진 경험, 자식을 낳고, 부모님을 보내며 더 느꼈다.
그럼 운명을 받아들이고 견디는 것이 삶일까? 그건 맥 빠지고 신나지 않는다.
아모르파티! 이건 니체가 한 말이고, 김연자 노래다.
가수 김연자는 신나게 노래한다.
"눈이 부시면서도 슬펐던 행복이여~
다가올 사랑은 두렵지 않아~
가슴이 뛰는 대로 가면 돼"
그럼 그냥 오늘 가슴 뛰는 대로 사랑하고 놀라는 얘기야? 잘못하면 중년 불륜 조장?
검색해 봤다.
아모르파티-
"운명을 사랑하라"는 뜻의 라틴어이며, 운명애(運命愛)라고도 칭한다. 영문은 Love of Fate 또는 Love of One's Fate.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가 자신의 근본 사유라고 인정한 영원회귀 사상의 마지막 '결론'이 아모르파티다.
'자기 자신'이 된다는 것
인간은 어떻게 자기 자신이 되는가?
스스로의 대답과 그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과 앞으로 올 모든 것을 필연으로 여기고 사랑하는 것이 바로 아모르 파티란다.
어? 이건 헤세가 《데미안》에서 했던 이야기인데?
헤세가 말해주었다.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이 나를 얽매 와도, 자신의 내면에 귀 기울이고 집중해야 한다. 우리들 마음속에 모든 것을 알고 모든 것을 원하고 모든 것을 우리 자신들보다 더 잘 해내는 누군가가 있다고. 그저 자기 자신이면 되는 거라고.
꽃, 향기, 바람, 자연의 모든 것들은 무엇이 되어서가 아니라 그저 자기 스스로 존재하면 아름다운 거였다.
내가 가장 많이 잊고 때론 덮고 살아온 나.
나의 운명은 여기서 시작된다.
나 자신이기로 선언하는 것.
그 결연한 의지가 내 운명을 사랑하는 시작이다.
50 넘어 헤세를 우연히 만났다.
'모든 것은 '우연히' 발견되지만, '우연히' 시작되는 법은 없다.' - 《데미안》. 헤르만 헤세
아마 지금 내가 데미안을 읽은 것도 이 독서 클럽에 온 것도 나에게 귀를 기울이기로 한 그 결심도 내 운명을 사랑하는 길이다.
책과의 만남 또한 분명 우연만은 아니다.
나의 선택이고 내가 나이기로 한 선언이다.
못나고 잘남은 중요하지 않다.
이제 헤세도 니체도 내게 같은 말을 한다.
"그냥 너로 살기로 해! 다 필요 없고 선언하면 되는 거야!"
그래서 난 지금 선언부터 하고, 책 읽기 왕초보 이야기를 쓰고 있다. 그게 지금의 나니까. 그 선언이 삶을 바꾸고 있다. 놀랍게도 즐겁다.
역시 만만한 건 때려잡기 쉽다. 어려운 거 말고 만만하게 쓰는 독후감에서 대박을 건진 기분.
만만하게 쉽게 한 걸음 걷다 보면 뒤통수를 딱 맞는다.
그래 그거구나.
그걸 통찰!이라고 하나보다.
역시 북클럽은 개이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