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때 열어보기를 따뜻함을 채우기를
너희들은 언제 엄마 밥이 생각날까?
엄마는 딱 떠오르는 순간이 있어.
엄마가 첫아이를 임신해 있었던 새댁이라 불리던 서른 두 살의 어느 날, 아빠가 느닷없이 암에 걸렸다며 채 열흘도 되지 않아 수술실에 들어갔던 그날.
다시는 눈 뜬 아빠를 볼 수 없을까, 뱃 속의 아이가 아빠를 만나보지도 못할까 봐 별의별 생각으로 혼자 울고만 있을 때.
시간이 너무 안 가서 하루 이틀은 지나가고 시간이 멈춘 것만 같던 그때.
그때, 외할아버지 외할머니가 보자기에 밥을 싸서 나타나셨어. 뜨거운 눈물이 한없이 흐르는 데 밥을 어떻게 먹나 했는데, 보자기를 열어 외할머니가 숟가락을 쥐여주셨지. 엄마는 할머니가 층층 찬합에 넣어오신 갓 지어서 아직 따뜻한 흰 밥, 소고기 미역국에 불고기를 마치 며칠이나 굶은 사람처럼 먹고 또 먹었어. 아무것도 먹을 수 없을 것만 같았는데 너무 맛있었어. 4인분은 될 법한 크기의 찬합이었는데 그걸 먹고 또 먹었어. 그랬더니 어느새 시간도 가고 수술은 끝나고 의식이 희미하게 돌아온 아빠와 다시 만날 수 있었지.
엄마 집밥이 생각나는 날은 아니었는데, 두고두고 그날 엄마 밥이 너무 맛있었고 잊을 수가 없었어.
엄마 밥이 생각나는 날이 없으면 좋겠는데, 분명 힘든 어느 날일 거야.
느닷없이 생각지도 못한 운명이란 단어가 와닿는 날이거나, 한없이 뱃속이 허한 어느 날일지도 몰라. 몸이 너무 아파서 하루가 영원같이 느껴지는 날일지도 몰라.
엄마도 친할머니도 외할머니도 집밥을 계량해서 만든 적은 없었어. 그저 엄마한테 듣고, 요리책을 보기도 하며 건강에 좋으려면 어떻게 만들까, 가족들이 맛있게 먹으려면 어떻게 할까, 있는 재료를 어떻게 맛있게 먹일까, 누가 이걸 좋아하더라, 요리조리 궁리하고 고르고 정성을 넣었을 뿐.
그래서일까? 뱃속이 따뜻해지고 나도 모르게 위로가 되는 거 같아. 엄마도 외할머니의 그때 집밥을 잊지 못니까.
뱃속의 아기도 불쌍하고 나도 불쌍하고 아빠도 불쌍하고 처량했던 그 순간에 나를 따뜻하게 채워줬던 엄마의 마음. 그래서 다시 살아갈 힘이 뱃 속에 채워지는 건가?
살다가 어느 날, 엄마 밥이 생각날 때, 그때 이 책을 열어 보렴. 특별한 비법은 없단다.
그저 엄마가 너희들의 삶을 응원하고 있다는 거.
힘든 그 시간은 버티면 지나간다는 거.
그 시간이 너희들을 언젠가 편안하게 해줄 수도 있다는 거.
알 수 없는 인생은 너희들에게 또 다른 생각지도 못한 순간을 선물한다는 거.
무엇보다도 너희들의 삶은 너무나도 소중하다는 거.
그걸 떠올려봤으면 해.
엄마의 그저 감으로 해줬던 음식들을 기억하며,
스스로 너희들의 음식을 만들어갔으면 해.
엄마의 음식보다 더 따뜻하고 맛있고 소중한.
그래서 너의 뱃속을 따뜻하게 해서 스스로 살아갈 힘을 내고,
소중한 너의 삶을 사랑하는 네 주변의 사람들과 나누면서 말이야.
어느 날, 엄마처럼 너희들도 돌아볼지 모르지.
따뜻한 밥을 지어 먹으며 나의 삶도 따뜻하게 되어 있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