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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풍 Aug 09. 2022

오이지-소금 시간 관심이면 끝

오이지 


소금 시간 관심이면 끝

할머니가 계실 땐 옆집에서 여름이면 오이지를 담아서 먹기 적당할 때 주셨지. 썰어서 하루 물에 담갔다 먹어라 하시면서.

이상하게 할머니 계실 때 혼자 담아봐도 매번 실패였어. 주로 더 짜게 해야 한다는 결론이었고. 


할머니 떠나시고 할머니 친구분이 담아서 보내주셨는데 할머니 맛이 나더라고. 그래서 따라 배우게 되었지. 

오이에 소금만 넣는 방법이지. 아주 간단해. 

정성껏 매일 들여다보고 눌러주고 위에 있던 것을 아래로 아래 있던 것을 위로 바꿔줘야 해. 

매일 아침 뚜껑을 열어 보면 오이가 쪼그라들고 물이 나와서 점점 잠기는 게 참 재밌더라. 

뚜껑을 딱 열 때 오이 향이 참 향기로워. 결국 오이가 다 물에 참기고 하얀 곰팡이들이 둥둥 뜨면 성공.

참 기분이 좋더라고. 근데 실패할 때는 검정 곰팡이가 피더라. 

이제는 팔꿈치랑 손목이 안 좋아지니 전용 미니 탈수기를 사려고. 살림이 늘면 지저분하고 일이 많아져 싫지만 그래도 내 몸보다 중한 게 있겠냐. 


참 신기해. 소금 넣은 야들하고 이쁜 오이들을 매일 뒤집어만 주면 맛있게 된다는 게. 

오이가 끝나갈 무렵 오이지용으로 나오는 오이보다 오이 첫물 때 야들야들한데 이리저리 휘어서 싸게 한 봉지 묶어놓은 그것들로 담으면 더 맛있더라고. 

이런 건 재래시장에 가면 꼭 있어. 재래시장 아니어도 지역 로컬푸드 매장들이 요즘 많이 생기는데 근처에서 갓 농사지은 야채들이 무척 좋아. 

마치 할아버지 할머니가 농사지은 밭에서 막 따다 주신 것처럼.


사왔는데 담기 싫거나 힘들 땐

 오이를 그냥 까서 매일 먹어도 맛있어. 

오이들을 잘 관찰해 보면 맛있겠다 싶은 게 있어. 

어리고 야들한 느낌이랄까. 


사람도 그래. 

처음 봤을 때 화려한 사람보다 가만히 들여다볼수록 순수하고 맘이 따뜻하고 배려심이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시간이 갈수록 진가를 발휘하는 거 같다. 

첫눈에 띄고 화려한 것에 너무 이끌리지 않으려면 늘 시간이란 게 필요한 거 같다. 오이지를 숙성시켜주는 시간보다 훨씬 더 긴 시간 말이야. 오이지 하나도 재료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데 사람은 오죽할까. 사람은 잘 바뀌지 않으니 선택을 잘해야 하고 인연을 잘 맺어야겠지. 


좋은 인연을 만날 장소에 너를 두고 좋은 사람을 늘 가까이하려고 어떻게든 노력해야 해. 오이지도 실패하면 돌이킬 수 없는데 좋지 않은 사람과의 인연은 맺지 않는 게 상책이겠지. 

음식의 재료처럼 신중하게 고르고 또 골라 맺어야 한다. 

너희들 삶의 인연들을.


*사흘 정도 옮겨주면 고루 물이 생기고 결국 오이에서 물이 나와서 다 잠긴다.

납작한 돌을 비닐에 싸서 꼭 눌러야 해. 오이가 물속에 다 잠기도록. 위로 올라오면 무르고 상하니까 누름돌로 눌러주는 것이 제일 중요. 일주일 후부터 먹어도 되더라. 누름돌은 할머니가 쓰던 것을 두고 쓰는데, 없으면 그릇을 뒤집어서 뚜껑으로 누르거나, 누름 뚜껑이 있는 김치통도 있더라. 강가에 놀러 가면 납작하고 묵직한 돌 하나 구해서 누름돌로 쓰면 좋지. 할머니가 그러셨거든.

참, 고추씨를 넣으니 매콤한 맛이 나고 입맛이 돌더라고. 없음 안 넣어도 되고. 

엄마의 할머니는 순수한 소금으로만 하셨는데 엄마는 고추씨도 넣고 식초도 조금 넣고 물엿도 좀 넣고 소주도 살짝 넣으니 좋더라. 

이렇게 저렇게 해보면서 맛 차이도 느껴보고 내 입에 맞는 것도 찾아보는 게 요리하는 재미인 거 같다. 우리 사는 것도 그렇잖아. 처음엔 남들 따라 배우지만, 그대로 계속 따라 하면 재미없지. 내 생각을 더하고 내 방식을 만들어가는 게 재미가 아니겠니?


*여름 아침에 이 오이지무침에 김자반 하나면 끝이지. 

도서관 갈 때 도시락 가져가고 싶으면 밥에 오이지 가져가면 좋겠다. 김치보다 냄새가 나지 않고 속이 편안하거든. 

대학 때 그렇게 싸 오는 선배 언니가 있었는데 조금 얻어먹었는데 너무 맛있더라. 오이지가 없으면 대충 단무지로도 무쳐서 비슷한 느낌으로 먹어도 되고. 가끔 식당에 나오는데 맛있지는 않아도 그냥 편한 반찬 느낌이지.

이건 꽉 짜서 오들도들 씹는 맛이 일품인데 꽉 짜기가 여간 어려워.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도우셨고, 엄마는 아빠가 도왔는데 아무래도 손목에 무리가 많이 가더라. 

애당초 음식 전용 미니 탈수기를 마련하는 것도 좋은 거 같아. 조만간 엄마도 사려고 해. 요즘 손목이 자꾸 안 좋아져서 말이야. 만두에 넣을 두부나 김치도 짤 때 쓸 수 있으니.


오이지 담기

1. 오이 한 봉지 구입(20개 이상)

2. 깨끗이 씻기

3. 김치통 깊은 거 준비

4. 오이 한 줄 넣고 소금 두 주먹 고루 뿌리고 또 오이 한 줄에 소금 두 주먹 식으로 소금에 절여두어. 소금 뿌릴 때 고추씨도 한 줌씩 뿌리고.

5. 다음날 김치통 하나 더 준비해서 옮겨(위에 있던 것이 아래로 가도록)

6. 옮기기 사흘 정도 반복(다른 통으로 옮겨야 위아래가 바뀌며 고루 절여져)

7. 처음부터 통에 김장 비닐을 넣어서 오이지를 담으면 옮겨 담는 수고를 덜 수도 있더라


물 오이지

1. 썰어서 물에 담가 냉장고에 3시간 이상 두기

2. 먹을 때 물을 추가해서 간 맞추고 매실 효소나 설탕 식초를 취향대로 첨가

3. 시원하게 먹는 게 포인트



오이지무침

1. 썰어서 물에 담가 냉장고에 3시간 이상 둔 것을 최대한 꽉 짤 것(전용 미니 탈수기 있음)

2. 꽉 짠 오이지에 고춧가루, 들기름, 진간장 약간, 설탕 약간, 깨 넣고 살살 버무리면 끝

용수철 이용한 오이지 짜는 도구로 꼭 자서 무친 오이지 무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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