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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현서 Sep 05. 2018

053. 개강의 공기

2년 만에 학교의 공기를 맡다.

  군 휴학을 끝내고 오늘 복학했다. 군 복무 중 휴가 때 수 차례 찾았던 학교지만 그때와 지금은 완전히 느낌이 다르다. 왜 일까. 같은 공간인데 내가 느끼는 학교의 공기는 완전히 다를까? 학생들은 여전히 공부하고, 담배 피우고, 여유롭게 chill-out 하고, 혹은 자신만의 무언가를 열심히 수행한다. 내가 학교에 갔을 때와 달라진 건 흘러간 시간 말고는 딱히 없다. 그때는 5월이었지만 지금은 9월일 뿐이다. 하지만 5월의 학교보다 지금이 더 분주하고, 활기차다. 사람들은 더 많아지고, 더 많이 움직인다. 삼삼오오 모여있는 그룹은 훨씬 자주 눈에 띄고, 깔깔거리면서 웃는 모습도 더 자주 보인다. 그런데 활기찬 기운이 가끔은 문득 기계적으로 느껴진다. 5월에는 느끼지 못했던 부자연스러움이다. 우연히 만난 중학교 동창과 나눈 대화는 1분이 채 안됐지만 솔직히 꽤나 어색했다.

   학교는 여전히 그 자리에 서있다. 새로운 건물이 올라가고 낡은 건물을 부수지만 '학교'라는 본질은 여전히 세월을 견디면서 묵묵히 그 자리에 있다. 학생들은 해마다 새로 입학하고 졸업해도 학교는 여전하다. 그렇다면 학교의 본질을 규정하는 건 뭘까? 바로 그 시시각각 변하는 학교의 분위기가 아닐까. 시시각각 변하는 학교의 분위기가 계속 쌓이고 쌓여서 묵묵히 견디는 힘이 된 것 아닐까. 학교의 본질이란 내가 느낀 5월의 분위기와 9월의 분위기, 그리고 또 다른 다양한 분위기가 적층 돼서 형성된 지층이다. 활발함과 약간의 어색함, 그리고 다른 수많은 감정이 켜켜이 쌓인 학교의 본질을 나는 어느새 너무 쉽게 판단한 거 아닐까 싶다. 내가 느낀 9월의 활발함과 약간의 어색함은 학교의 두꺼운 나이테 중 극히 일부이다. 시시각각 변하는 것도 당연하다.

  학교의 두꺼운 지층, 우직하게 서있는 그 힘을 마주하니 괜히 나 자신이 너무 초라해진다. 고려대학교라는 거대한 역사 앞에 조현서의 역사는 한 없이 짧고 초라하다. 보잘것없는 나지만 나 역시 지층과 나이테를 구성하는 일부이다. 나도 역사의 일부다. 내가 곧 학교의 역사다. 여전히 나는 초라하지만 미묘한 성취감으로 이 글을 마무리할 수 있음에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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