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현서 Dec 03. 2018

063. 적당주의자의 특별한 하루.

특별한 하루에 관한 이야기

  적당하게 사는 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세상만사 모든 일을 적당하게 처리했다. 어떤 업무가 있으면, 그 일이 해결될 정도만큼만 노력과 시간을 투자했다. 절대로 그 이상으로 힘을 들이지 않았다. 업무뿐만 아니라 인간관계도 마찬가지였다. 인간관계가 유지될 정도로만 상대방을 배려하고 그만큼은 사람들을 만났다. 그는 적당주의자였기 때문이다. 분명 10만 투여해도 수행할 수 있는 일에 100, 1000을 투자하는 사람을 그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10을 투자했을 때의 보답과 100을 투자했을 때의 보상이 크게 차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함께 일하는 카페 알바 동료가 일할 때 100의 노력을 투자하고, 자기는 10의 노력을 투자했는 데, 보답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공부, 일, 인간관계, 취미 등등에서 그는 욕을 먹지 않을 정도의 적당한 노력과 시간 투자를 유지했고, 그럼에도 몰두해서 노력하는 사람에 비해 크게 결과가 다르지 않음에 자신의 삶의 방식에 확신을 가지고 살았다. 그게 세상의 정답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30년가량을 살던 그는 우연히 참여한 밴드 동호회에서 한 사람을 만났다. 그녀는 그와는 정반대의 삶을 사는 사람이었다. 모든 일에 자신의 에너지를 남김없이 투여했다. 동호회도 함께 하는 회사 동료의 말을 빌리자면 그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은 사내 업무도 항상 완벽을 기했다. 지나치게 열심히 업무를 수행해서 상사가 부담을 느낄 정도로 열심이었다. 심지어 스스로가 할 일을 만들기도 했다. 상사에게서 하달되는 업무가 없는 시간에 쉬기보다는 다른 기획서를 구상하고, 본인이 했던 일을 끊임없이 재검토했다. 동호회에서의 태도만으로도 그 말에 자연스럽게 신뢰가 갔다. 전문적으로 하는 것이 아닌 취미에 가깝고, 다른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많았기에 연습을 많이 할 수 없었음에도, 보컬을 맡은 그녀만큼은 항상 하기로 한 노래의 가사를 다 외워서 완벽하게 소화하는 건 물론이거니와 기타나 드럼 등 다른 세션이 부족한 지점을 도와줄 정도로 철저하게 준비해왔다. 다른 사람들은 그녀가 연습 때 한 정도도 모임 때 따라가기 벅찼다. 그도 예외는 아니었다.

  동호회 합주실에 가방을 두고 온 그는 짜증을 참고 터덜터덜 합주실로 걸음을 옮겼다. 이른 아침이지만 벌써부터 노래 반주가 연주실 밖까지 희미하게 흘러나왔다. '아침 7시부터 연습하는 사람이 있구나'라는 생각으로 합주실로 들어갔다. 조심스럽게 노크를 하고 문을 열고 들어갔는 데, 동호회에서 보컬을 맡는 그녀가 눈 앞에 서있었다. '죄송하다고 말씀드리고 빨리 가방만 가지고 나와야겠다'라는 생각이 그녀의 얼굴을 보자마자 먼지처럼 흩날려 사라졌다. 너무 놀라서 아무 말도 못 하고 얼음처럼 얼어버린 그를 깨버린 건 그녀의 아무렇지 않은 목소리였다. 안 그래도 오늘 익숙한 가방이 보여서 걱정됐지만, 정확히 누구 것인지 몰라서 연락을 못했다고 미안하다는 말을 덧붙였다. 그는 전혀 놀라지 않은 척 괜찮다고 말하면서 몇 마디 말을 붙였다. 원래부터 매일 연습하는지, 힘들지는 않은지 등 실없는 질문을, 그도 본능적으로 답을 알고 있는 질문을 던졌다. 질문에 답을 원하기보다는 당황한 마음을 숨기기 위한 반사적인 행동이었다.

  열심히 연습하라는 실없는 인사를 끝으로 가방을 메고 밖으로 나왔을 때, 그는 어느 순간보다 가방이 무겁게 느껴졌다. 얼마 들어있지도 않은 가방은 돌덩이를 몇 개 더 넣은 것처럼 어깨를 짓눌렀고, 눈가는 어느 순간 촉촉해지더니 이내 물방울이 눈에서 한 두 방울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는 이 눈물의 의미가 무엇인 지, 왜 눈물이 어느새 홍수처럼 흘러나오는지 도무지 깨달을 수 없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062. 당신 옆 누군가의 이야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