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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백구십칠 Jan 17. 2021

뮌하우젠 증후군에 걸린 불효자식과 어머니

 

 엄마가 퇴직했다. 정확히는 정년퇴직.

환갑을 맞이하심과 동시에 그동안 몸 담으셨던 직장에서 은퇴를 하게 되신 것이다.


내가 중학생일 무렵. 그러니까 전학 간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고 괴롭힘 비슷한 것을 당했고, 워크맨을 가지고 싶어 했고, 지나치게 철이 없었던 그 무렵. 전업주부였던 엄마는 아마도 계획에 없었을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처음엔 마늘 까기, 인형 눈알 붙이기 등 잡다한 일들을 전전하던 엄마는 어느 날부터인가 멀리 버스를 타고 나가야 있는 요리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엄마가 요리학원에 다니면 맛있는 요리를 먹을 수 있게 되는 건가?'

철없는 생각을 떠올리기도 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대신 엄마는 얼마 후부터 근처 초등학교에 조리사로 근무하기 시작하셨다.

영양사가 짜준 식단에 맞춰 전교생이 먹을 점심식사를 만드는 일이었다.


그렇게 20년 가까이. 철없는 아들이 사춘기를 겪고, 반항을 하고, 바득바득 우겨 사립대학교에 가고, 겨우겨우 취업을 해 어엿한 직장인으로 자리를 잡고, 한 여자를 만나 결혼을 하는 동안 조리사라는 이름으로 묵묵히 일하신 어머니.


"이제 학교도 안 나가고 하루 종일 심심해서 어떡해?"라는 물음에 "나 할 일 많아. 뒷마당에 텃밭도 가꿔야 하고 큰 아들도 키워야 하고" 라며 웃으신다.

물론 큰 아들은 아버지를 말한다.


아내가 처음 집에 인사를 하러 온 날. 어색한 분위기를 깨고자 오래된 앨범을 함께 본 일이 있다.

"진짜 못생겼었네."

"이 정도면 훈남이지." 하며 어린 시절의 나를 더듬는 사이 문득 '그 시절의 나는 참 예쁜 옷을 많이 입었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얼핏 보기에도 시장 좌판에서 막 고른 것은 아닌 듯한 형형색색의 옷들. 그런 예쁜 옷을 입고 활짝 입고 웃고 있는 어린아이는 남들보다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내왔다고 믿어왔던 내 머릿속 어린아이와는 많이 달랐다.

누군가와 자신의 어린 시절을 이야기하게 될 때 나는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내왔다고, 마음껏 누리지 못했어서 지금이 행복하다고, 힘들었지만 잘 이겨내 온 것 같다고 이야기해왔던 것이다.


'뮌하우젠 증후군'이라는 것이 있다.

사람들의 관심을 얻기 위해 자신의 이야기를 왜곡해서 이야기하는 것으로, 과거 폰 뮌하우젠이라는 독일의 군인이 거짓 무용담을 지어내 사람들을 속인 사건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어쩌면 나는 그동안 타인의 관심을 끌기 위해, 나 자신을 좀 더 대견한 사람으로 보이게 하기 위해 과거를 왜곡해 왔는지 모르겠다. 어머니는 고된 시간을 보내오셨지만 자식들에게는 그늘이 지지 않도록 온 몸으로 버텨오셨을 테니 사진 속의 나는 저렇게 웃을 수 있었을 것이다.


이제는 누군가와 어린 시절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된다면 담담하게 이야기하려 한다. 나름 행복한 시절이었다고. 많은 것을 희생하신, 희생이라는 말도 부족한 우리 어머니 덕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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