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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백구십칠 Dec 20. 2020

아재개그에 빠져버린 건 아마 카멜레온 효과 때문 일거야

 “당산은 나의 동반자~ 영원한 나의 동반자♪”

 

흠칫 놀라 옆을 바라보니 아내가 이렇게 흥얼거리고 있었다. 지하철이 당산역에 도착하자 그에 맞춰 노래를 부른 것이다. '당신'을 '당산'으로 바꿔 부른 말장난. 다른 말로 아재개그였다.


연애시절 나는 아내에게 종종 이런 류의 아재개그를 시도했었다. 그럴 때마다 그녀는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날 지그시 바라보곤 했었다.

'아이고. 나이가 몇인데 벌써 이런 개그를..'

이라고 눈빛으로 한숨을 쉬었던 그녀.

그랬던 그녀가 결혼 4년 만에 아재개그에 빠져 버린 것이다.


일단 침착하게 그녀를 다독여 보았다.

“이런 말장난은 나랑 있을 때는 해도 괜찮은데 회사 가서는 하면 안 돼. 알겠지?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할 거야”

“이상한 사람? 나 치아 멀쩡한데? 푸항항항”

아. 그녀는 생각했던 것보다 더 아재개그의 매력에 푹 빠져 버렸나 보다.


그녀가 이렇게 아재개그에 빠져버린 것은 아마도 ‘카멜레온 효과’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카멜레온 효과는 주변 환경에 맞춰 피부색을 바꾸는 카멜레온처럼 상대방의 표정이나 행동을 무의식 중에 따라 하게 되는 현상을 말한다.

부부로서 오랜 시간 함께 지내다 보면 서로의 말버릇이나 행동 패턴을 점점 따라 하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돌이켜보면 나 또한 그녀에게 배워 닮게 된 것들이 참 많다.

계획만 세우는 대신 일단 실행하고 부딪혀보는 것, 어려운 일이 있을 때 혼자 끙끙거리기보다 주변에 물어보고 도움을 구하는 것, 좋으면 좋다고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 새로운 경험에 아낌없이 투자하는 것.

그녀는 나에게 이렇게 건강한 모습을 닮아가게 해 주었는데, 내가 그녀에게 준 것은 고작 아재개그 뿐이라니..

미안하고 웃기고 복잡한 감정에 휩싸인다.


아이가 부모의 행동을 보고 배우듯, 부부도 평생 서로를 배우고 닮아가는 존재이기에 이제 아재개그 같은 것은 좀 자제하고 모범적인 남편의 모습을 보이기로 다짐해본다람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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