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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백구십칠 Nov 15. 2020

헬스장 생태계와 호손 효과

 

 가는 팔다리에 배만 나온 전형적인 시샤모 몸매의 소유자이지만 4년째 꾸준히 헬스클럽을 다니고 있다.

처음 운동을 시작한 것은 '이상형은 슈퍼 팔뚝에 태평양 어깨!’이라고 단호하게 말하는 아내 때문이었지만, 지금도 체중 유지와 생명연장을 위해 꾸준히 다니고 있는 중이다.


운동을 시작하고 일정 기간이 지나 익숙해지자 시야가 확장되면서 헬스장이라는 특별한 생태계의 모습이 서서히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여느 생태계가 그러하듯 헬스장이라는 생태계 안에서도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만들어낸 그곳만의 특유의 법칙들이 존재한다.

그래서 오늘은 개인적으로 느낀 헬스장에서의 기묘한 법칙에 대해 몇 가지 적어보려고 한다.


첫 번째 법칙, 근육이 클수록 기합소리도 크다.

헬스장 생태계 최약체인 나의 경우에는 정말 숨이 넘어갈 것 같지 않은 이상 되도록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편인데, 가끔씩 누군가의 우렁찬 기합소리에 깜짝깜짝 놀라곤 한다.


"흡하!" "헛짜!" "야잇!"
동물의 울음소리 같기도 한 기합소리에 놀라 고개를 홱 돌려보면 어김없이 근육질의 헬스보이들이 근력운동을 하고 있다.

기합을 크게 넣는 것이 근육을 키우는 노하우에 포함되는 것인지, 근육이 커야만 소리를 마음껏 낼 수 있는 암묵적 룰이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으나 기합과 근육의 크기가 비례하는 모습은 꽤 흥미로운 현상이다.


두 번째 법칙, 러닝머신 모니터에 틀어져 있는 방송 프로그램은 꽤 높은 확률로 먹방 프로그램이다.

러닝머신 기기에는 대게 모니터가 달려 있어서 지루한 걷기나 달리기를 하면서 TV를 볼 수 있게 해 두었다.

내가 다니고 있는 헬스장에는 러닝머신이 20개 정도 있는데, 모니터에 틀어져 있는 방송 프로그램 유형을 나눠본다면 골프나 야구 같은 스포츠 방송이 3, 뉴스나 일반 예능프로그램이 4, 먹방 프로그램이 3 정도이다.


분명 다이어트를 위해 러닝머신을 뛰고 있을 텐데 왜 먹방 프로그램을 보는지 일견 고개를 갸웃하게 되지만, 보는 것으로 대리만족감을 느끼거나 상상 속에서 나마 먹는 행위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그럴 수 있지'하고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맛있는 것을 먹기 위해 운동한다’라는 모토를 가지고 있는 나의 경우에도 먹방 프로그램을 보며 '조만간 저거 꼭 먹어야지. 그러려면 오늘 500칼로리는 태워야 해'하며 전투력 상승의 기폭제로 활용하기도 한다.



마지막 세 번째 법칙은 ‘누군가의 시선이 느껴지면 더 열심히 하게 된다’는 것이다. 나는 이것을 '헬스장의 호손 효과'라고 부른다.


호손 효과는 미국의 한 공장에서 행해진 실험을 통해 발견된 효과이다.

호손 웍스라는 공장에서 어떻게 하면 생산성을 높일 수 있을지 알아보기 위해 직원들을 대상으로 실험을 진행하였다. 그런데 공장 직원들은 연구원들이 자신들이 일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여 평소보다 더 열심히 일하였다.

결과적으로 누군가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생산성이 높아진 것이다.


헬스장의 호손 효과. 예를 들면 이렇다.

러닝머신 위를 동네 마실 나가듯 슬슬 걷고 있을 때 누군가 옆 러닝머신에서 뛰기 시작하면 나도 모르게 슬쩍 속도를 높이게 된다. 옆사람과 비슷한 속도로 뛰고 있다면 아무리 숨이 차도 먼저 속도를 내리고 싶지 않다. 먼저 속도를 낮추게 되면 왠지 모를 패배감에 휩싸인다.


또 다른 경우는 이렇다. 헬스장 벽면은 대게 거울로 둘러싸여 있다. 운동은 자세가 중요하기 때문에 본인의 자세를 체크하며 가다듬기 위함일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 주변에 없다면 아무래도 속도는 느슨해지고 자세도 몸이 편한 대로 흐트러지기 마련이다.


그런데 그때 거울을 통해 누군가의 시선이 느껴진다면 다시 기합이 바짝 들어가고 언제 그랬냐는 듯 자세를 고쳐 잡게 된다. 마치 호손 웍스의 근로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이렇게 기묘한 헬스장 생태계에서 최근까지 풀리지 않았던 미스터리가 하나 있었다. 바로 꾸준히 운동의 했음에도 불구하고 ‘나의 몸뚱이는 왜 여전히 이럴까?’라는 것이다.

이 글을 쓰다가 문득 떠오른 답은, 운동에 집중은 안 하고 이런 망상에 빠져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새로운 헬스장 생태계의 법칙이다. 유레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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