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은 상상력에 의해서 생겨나고, 길러지고, 강도를 증가 시키는 법인데 언제 어디서든 손쉽게 잡을 수 있다면 로망이 생겨날 리 없다.
- 「살아남는다는 것에 대하여」 <무라카미 류, 홍익출판사.2016>
코로나19 백신을 맞게 되었다.
접종 예약을 하고 나니 드디어 백신을 맞게 되었다는 안도감, 감사함과 함께 약간의 두려움이 몰려왔다. 접종 후 오한이 나서 잠을 못 잤다는 이야기, 열 때문에 타이레놀로 버티며 일을 했다는 이야기, 저승사자와 하이파이브를 했다는 이야기까지 접종 후 부작용에 대한 확인되지 않은 이야기들로 인해 접종 전부터 지레 겁을 먹게 된 것이다. 각 증상에 따른 대응 매뉴얼과 충분한 타이레놀을 준비한 후 백신 접종을 하였다.
하지만 막상 접종을 하고 나니 걱정과는 달리 이렇다 할 부작용은 없었고 오히려 평소보다 더 잘 먹고 잘 자게 되었다.
'오후에는 아플지도 모르니까 더 든든히 먹어둬야 해'
하며 평소에는 잘 먹지도 않는 아침밥까지 야무지게 챙겨 먹었고, 저녁을 배불리 먹고 난 뒤에는 포만감에 취한 채 내리 12시간 꿀잠을 자버린 것이다.
어려움은 예상하지 못한 곳에 있었다. 백신 접종 전후 며칠간은 (당연히) 금주를 권장한다는 것이다. 퇴근 후 맥주 한 잔을 사랑하는 나로서는 애석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며칠 맥주를 마시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당장 큰일이 나는 것은 아니지만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은 것이 인간의 기본 심리 아니던가. 시간이 지날수록 맥주 한잔이 더 간절해졌고 급기야 상상 속 맥주 이상형 월드컵을 치르기에 이르렀다.
'금주기간 지나면 뭐 먼저 마실까?
제일 좋아하는 아크의 비하이를 마시러 갈까? 아니면 가볍게 다른 에일류 중에서 골라볼까? 일단 비하이 승리. 음..시나몬 뿌린 코젤도 좋을 것 같은데. 흑맥주는 아무래도 기네스가 나으려나? 아..아슬아슬하게 기네스 승. 멋진 승부였다. 그럼 4강은...'
하지만 금주기간이 끝나자마자 마신 첫 잔은 허무하게도 동네 호프집의 500CC 였다. 센스 있으신 주인장이 미리 꽝꽝 얼려둔 맥주잔에 맥주를 가득 따라 건네주셨다. 더 이상 숨을 참기 어려울 때까지 꿀꺽꿀꺽 목으로 넘기자 머리가 찌릿찌릿해졌다. 비하이도 수제 에일맥주도 코젤도 기네스도 좋았겠지만 호프집 500CC 맥주는 아주 적절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했다.
개그맨 유민상 님의 명언과도 일맥상통하는 결말이다. 그는 말했다.
'가장 좋아하는 햄버거 브랜드는 가까운 곳'이라고.
금주기간 후 첫 맥주는 역시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맥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