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작별 인사를 위한 Friday beer

by 이백구십칠

우리는 종종 너무 서둘러 판단을 내리듯이 우리는 관심을 기울이는 데도 너무 성급하다.

어떤 대상이나 생각에 너무 빨리 혹하고, 그 대가를 치른다. 순식간에 지나가는 아름다움이나 친절한 행동은 보지 못하는 것이다.


-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에릭 와이너, 어크로스.2021>




퇴사를 앞둔 어느 날 밤. 문득 고민이 시작되었다.

어떻게 마지막 인사를 하지?

대부분의 경우, 한 분 한 분 자리로 찾아뵙고 사정을 설명드리거나 따로 시간을 잡아 식사나 차를 마시며 석별의 정을 나눈다. 그동안 고마웠던 일, 함께 해서 즐거웠던 일, 혹은 의견 충돌로 다퉜던 일을 복기하며 한바탕 웃고 서로의 안녕을 빈다. 그리고 헤어진다. 복잡할 것 없다.

다만 변수가 있다. 지금의 대한민국에는 역병이 널리 퍼져있고 이 글을 쓰는 2022년의 3월은 역병의 최절정기이다.


다시 한번. 완벽한 작별 인사를 고민해 본다.

장애물이 많다. 대부분의 동료들이 재택근무를 하고 있다. 얼굴을 보고 표정과 목소리를 통해 애석한 감정을 전하는 전통적인 플랜은 탈락이다.

전화나 카톡을 하는 것은 어떨까. 오래 합을 맞춰온 몇몇 팀원들에게는 개별적으로 연락을 주고받았지만 그보다 더 많은 다른 동료들에게는 이 방법 또한 애매하다. 물리적 시간이 부족할 뿐 아니라 그동안 쌓아온 관계의 농도에 따라서는 상대방에겐 불편한 시간일 수 있다.

일단 메일을 보내기로 했다. 대화보다 텍스트로 표현하는 것이 편한 나를 위한 이기적인 선택일지도 모르겠다. 그동안 표현하지 못했던 고마움의 마음과 앞으로도 조직에서 승승장구하기를 바라는 기원을 꾹꾹 눌러 담는다.

이것만으로는 너무 정 없다고 느껴진다. 그래서 재택근무로 비워진 각자의 자리에 조그마한 선물과 짧은 편지를 남기고자 한다.


무엇을 남기고 올 것인가.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퇴사 선물로는 초콜릿이나 마카롱 등 간단한 다과인 경우가 많은 듯하다. 하지만 이 또한 곤란하다. 그들이 언제 사무실에 돌아올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상하거나 녹기라도 한다면 선물을 받은 사람도 불편해질 것이다.

고민 끝에 Friday, Saturday, Sunday가 새겨져있는 귀여운 캔 맥주들을 골랐다. 각각 IPA, 라거, 페일에일 맥주이다. 퇴사 선물로 맥주라니. 좀 이상한가 싶기도 하지만, 뭐 특이하고 예쁘니까. 책상에 오래 두어도 이질적이지 않고 상하지도 않을 것이다.


모두가 자리를 비운 늦은 오후의 사무실. 각자의 자리에 맥주와 짧은 편지를 남겨둔다. 산타클로스라도 된 기분이다. 나중에 사무실로 돌아와 선물을 본 사람들은 뭐라고 말할까?

“귀여워” 라고 말할까? “무슨 맥주를 선물한담?” 이라고 말할까? 아니면 “난 IPA 싫어하는데” 라고 말할까?


그 사이 메일을 읽은 분들이 답장을 보내주시거나 개인 메신저로 연락을 주시기 시작한다. 모두 아쉬움과 응원의 글로 가득 차 있다. 지극히 사무적이고 건조한 나의 인사에 비해 온기가 느껴지는 메세지들을 보다가 금세 눈두덩이가 뜨거워져 깜짝 놀란다.


울타리에서 한 발짝 벗어나서야 울타리 안이 얼마나 포근했는지 알게 된다.

그리고 그동안 울타리 안에서는 차마 하지 못했던 낯부끄러운 진심의 말들을 주고받으며 깨닫게 된다. 나는 너무 무심하고 상대방은 생각보다 더 따뜻하다. 조금 더 살갑게 굴 걸, 조금 더 진심을 내보일걸. 이별의 순간엔 늘 후회가 반복된다. 역시 나라는 녀석은 관계에 있어서 만큼은 구제불능이다. 완벽한 작별 인사 같은 건 애초에 실패였다.


사무실을 나오며 다시 생각한다. 왜 맥주였을까. 오래 책상 위에 놔두어도 상할 걱정이 없다는 현실적 이유가 먼저 떠오른다. 아무래도 광고 회사니까 좀 특이한 선물을 하고 싶다는 철없는 이유도 떠오른다.

하지만 또 다른 한 편으로는 이렇게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몸과 마음이 지치는 금요일, 포근한 토요일, 혹은 회사 가기 싫은 일요일에 시원하게 한잔하며 나라는 사람를 한 번쯤 떠올려주기를.



이전 17화시기심의 바보와 Cheers be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