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각한 귀차니즘 유전자를 타고난 나는 SNS에 무언가를 올리는 일은 하지 않지만 보는 데는 열심히인 편이다. 그저 가만히 누워서 스크롤을 내리면 내 취향에 딱 들어맞는 사진이나 영상 컨텐츠들이 끊임없이 쏟아져 나온다. 컨텐츠들을 탐독하다 보면 시간은 어느새 훌쩍 흐르는데 취향 맞춤 컨텐츠들은 지치지도 않고 계속 고개를 들이민다. 언젠가부터 침대에 누워 스크롤을 내리며 이런저런 컨텐츠들을 보다가 잠드는 일이 하루를 마무리하는 루틴처럼 자리 잡았다.
그런 하루하루를 보낼수록 SNS는 더 똑똑해진다. 인스타그램은 내가 좋아하는 신발에 대한 정보를 넘어 특정 브랜드, 특정 모델 라인의 정보를 콕 집어 띄워준다. 좋아하는 예능 짤과 함께 최근에 많이 검색한 육아 관련 컨텐츠들도 적절히 섞어 놓는다.
유튜브도 귀신같다. 내가 좋아하는 장르의 영화 소개 컨텐츠, 최근에 관심 있게 봤던 브랜드의 영상물, 내가 지지하는 정치적 입장을 대변하는 뉴스까지 알아서 띄워준다. 그런 영상들 중 가장 눈에 띄는 영상을 하나 클릭해 보다 보면 곧바로 다음 영상을 추천해 준다. 그런데 그 추천 영상이 기가 막히게 관심 있는 주제라서 클릭을 안 하고는 못 지나간다. 잠시 시간 때운다는 생각으로 클릭했던 영상인데 그렇게 파도 타듯 영상들을 이어보다 보면 어느새 영화 한 편, 책 한 챕터를 읽었어도 충분했을 시간이 소각되어 있다.
'원하는 것들만 쏙쏙 뽑아서 보여주다니 이것 참 편리한 세상이구나,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에 꼭 맞는 효율적인 시스템이야' 하고 맘 편히 생각해 보지만 엄마 몰래 불량식품을 먹은 아이처럼 마음 한구석이 찝찝하다.
나는 그런 컨텐츠들을 보며 내 안에 무언가 인풋을 쌓아가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스스로의 시야를 좁고 긴 터널 안에 가두고 있는 것일까. 타의에 의해 강제된 터널시야 현상 같다고 생각했다.
운전을 하다가 터널에 진입하게 되면 주변은 온통 어둡게 변하고 멀리 조그만 출구 빛만이 눈에 들어온다. 터널 시야 현상은 이처럼 한 가지 일에만 지나치게 몰두하느라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놓치게 되는 현상을 말한다.
우리는 때로 중요한 일을 앞두고 그것에만 몰입해 주변의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 경지를 경험할 때가 있다. 이런 경험은 나쁘지 않고 생각한다. 오직 목표로 한 일과 관련된 정보들만 집중력 있게 흡수하여 빠른 시간 내에 최고의 아웃풋을 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SNS의 알고리즘으로 큐레이팅 된 컨텐츠 세상은 이야기가 다르다. 새로운 정보보다는 이미 알고 있던 정보를, 다양한 의견보다는 내 입맛에 부합하는 편한 의견만 보여준다.
관심 없는 영역의 컨텐츠를 보는 것은 무의미해 보인다. 나의 사상과 반대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굉장한 고역이다. 하지만 가끔 생각한다. 내가 정의라고 생각했던 것이 진짜 정의일까. 내가 최고라고 생각했던 무언가가 진짜 그 분야의 끝단일까.
물리학자 정재승 교수는 그의 책 「열두 발자국」 (어크로스.2018)에서 이렇게 이야기했다.
"트위터 팔로잉을 들여다봤을 때 내가 어떤 사람인지 단번에 알 수 있다는 건, 나는 듣고 싶은 얘기만 듣는 사람이랑 뜻입니다. 트위터 타임라인은 여러분이 디자인한 세상, 조작한 세상이거든요"
스크롤을 내리기보다 맥락 없이 검색을 해본다. 알고리즘이 추천해 준 영상보다 다른 사람들의 추천 영상을 클릭해 본다. 좁고 어두운 컨텐츠의 터널을 벗어나 덜컹거리지만 처음 가보는 비포장도로로 달려본다. 아는 길만 능숙하게 잘 가는 사람보다 생각의 지도가 넓은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