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언컨데 우리처럼 기념일을 잘 챙겨온 부부도 잘 없을거야.
각자의 생일은 물론이고 결혼기념일, 연애 1000일, 2000일, 발렌타인데이, 화이트데이, 빼빼로데이 까지. 기념할 만한 날들은 꼭 기억해서 작은 케이크를 나눠 먹고 선물을 주고 받는 일.
그런 작은 이벤트들이 우리의 일상을 더 끈끈하게 만들어 준다고 난 믿고 있어.
특히 우리 결혼하고 나서 첫 번째 내 생일날이 기억에 남아. 내가 회사 일이 너무 바빠서 야근하고 들어왔었던 것 같은데 그 늦은 시간까지 네가 엄청나게 화려한 생일상을 준비해 줬었잖아. 거기에다가 내가 좋아하는 아크비어 매장까지 찾아가서 큰 보틀에 맥주를 한 아름 담아와주기도 했었고. 그 무거운 걸 혼자 낑낑거리면서 들고 왔을 생각을 하니까 너무 귀엽기도 하고 고맙더라고.
그런데 최근엔 이런 생각도 들어. 이렇게 중요한 우리의 기념일들이 시간이 누적되면서 감흥도 줄어드는 게 아닐까. '선물이나 이벤트들도 점점 무뎌져서 당연하게 생각하게 되면 어쩌지?'하는 생각들 말이야.
알아. 알아. 내가 또 너무 과하게 생각했지. 그렇기는 하지만 우리는 앞으로 평생 함께 할 거니까 장기적으로 생각하면 한번 고민해 볼 필요가 있는 문제라고 생각해.
부분강화 효과라는 게 있대. 그게 뭐냐면, 어떤 행동에 대해 보상을 줄 때 일정한 패턴에 맞춰 보상을 주는 것보다 보상이 랜덤하게 발생할 때 행동을 오래 지속하는 현상이거든. 나쁜 예이지만 도박 같은 경우도 언제 이길지 알 수 없으니까 더 빠져들고 계속하게 되잖아.
이 부분강화 효과라는 개념을 우리 기념일에 적용시켜서 생각해 보았어. 예를 들면 '기념일마다 매번 꼬박꼬박 선물을 주는 게 아니라 일정하지 않은 패턴으로 주었을 때 받는 입장에서 더 기쁘지 않을까?'하는 역발상. 이런 과감한 시도가 우리 일상의 활력이 되는 소소한 이벤트를 계속해서 즐겁게 이어나가게 만드는 힘이 되지 않을까 하고 말이야“
...라고 아내의 생일 선물을 준비하지 못한 경위에 대해 설명하는 상상을 해보았다.
역시 아닌 것 같다. 정신 차리고 지금이라도 백화점에 가보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