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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백구십칠 Jan 15. 2023

자기불구화와 고무수저 아빠

 언젠가부터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현실 반영 실전 이론처럼 회자되는 이야기가 있는데 그것은 이른바 ‘수저론’이다.

부모의 재력에 따라 태어날 때부터 쥐게 되는 수저가 다르다는 이야기이다. 흙수저, 동수저, 은수저, 금수저, 다이아몬드 수저까지 백화점 멤버십처럼 등급도 다양하다. 최근엔 이 이야기도 꽤 자가발전해서 흙수저와 금수저를 나누는 구체적 기준까지 밈처럼 돌고 있다.


특별히 쌓아놓은 재산이랄 것도 없고, 근 미래에 대박 칠 사업 아이디어도 없는 평범하디 평범한 아빠인 관계로 이러한 이야기에 더 과민반응하는 걸까? 나중에 나의 아이가 커서 "나는 동수저 정도인가? 아냐 흙수저인 것 같아" 이런 이야기를 하는 상상을 하니 정신이 아찔해진다.


부모의 재력으로 인해 경쟁의 출발선이 달라진다는 것은 칼날처럼 서슬 퍼렇고 거울처럼 뚜렷한 사실일지도 모른다. 본격적으로 사회에 진출하기 전 새로운 것을 경험해 볼 기회, 실패해도 다시 도전할 수 있는 여력이라는 면에서 분명 차이가 생길 것이다. 그러니 ‘수저론 따위는 다 헛소리야‘라고 일갈해 버리기도 조금 곤란하다.


다만 우려되는 것은 자기 불구화이다. 자기 불구화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실패에 미리 대비하여 실패가 자기 탓이 아닌 다른 요인으로 인한 것이라고 심리적 방어선을 깔아두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축구 경기를 앞둔 선수가 미리 패했을 때의 상황을 생각하여 ’패배한다면 훈련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아서 진 거야‘라고 변명거리를 머릿속에 떠올리는 것이다. 자기 불구화는 자존감을 지키는 방어벽이 되기도 하지만 잘못하면 일의 성패가 결정되기도 전에 한계를 정해버리는 장벽이 되기도 한다.

우리 아이가 금수저를 들고 태어나지 못했다는 생각으로 스스로의 한계를 미리 그어버리지 않길 바란다. 그저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하고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인 후 툭툭 털고 일어나 다시 도전하는 그런 아이가 되기를 바란다.


최근 이유식을 시작한 아이가 호기심이 생겼는지 입을 벌리는 대신 자꾸 손을 내민다. 그런 아이에게 작은 고무 수저를 쥐여주자 스스로 떠먹기라도 할 것처럼 수저를 들고 버둥거린다. 아이가 좀 더 자라면 아마도 이 고무 수저로 자기 주도 식사를 하게 될 것이다.

안전 설계가 되어있는 고무 수저라 스스로 막 퍼먹어도 다칠 걱정은 없다. 떨어뜨려도 깨끗이 씻어 다시 쥐여주면 그만이다. 아이 스스로 식사하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며 흘린 것들을 닦아주는 가까운 미래의 식사시간을 상상해 보았다. 값어치는 없지만 아이 스스로 성장하는 데 도움을 주는 수저. 금수저는 못 쥐여주지만 고무 수저 같은 아빠가 되어 주어야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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