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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백구십칠 Feb 12. 2023

더 퍼스트 슬램덩크와 피터팬 증후군

 설 연휴의 마지막 날이자 역대급 한파가 서울을 덮친 날, <더 퍼스트 슬램덩크>를 보러 극장을 찾았다. 연휴 내내 방바닥과 물아일체가 되어 지내온 탓에 단 하루 만이라도 외부 활동을 해야겠다는 절박함이 절반, 어린 시절 몇 번이나 완독했던 만화책의 첫 극장판을 보고 싶다는 흥미가 절반. 이 두 가지가 모여 한파를 뚫고 극장까지 가게 된 강력한 동인이 되어주었다.


영화는 만화책 시리즈 상에서 마지막 대결인 '산왕전'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만화책과 동일한 경기 내용이 이어지지만 그 중간중간에 만화책에서는 없었던 등장인물들의 새로운 서사가 등장하는 구조였다.

사실 산왕전은 주요 대사를 줄줄 외울 정도로 이미 수도 없이 봤었던 경기였기 때문에 영화의 구성만 놓고 보면 티켓값을 전부 지불해야 할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게다가 중간중간 등장하는 등장인물들의 사연도 강력한 K-신파에 길들여진 나로서는 다소 심심한 스토리로 느껴지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주먹을 꼭 쥔 채, 두 시간 동안 스크린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리고 영화를 다 보고 난 후 집으로 돌아가는 길엔 마치 어린아이가 된 것처럼 두근거리는 마음을 안고 걸어갔다.

생경한 감정을 느끼며 깨달은 것은 슬램덩크라는 만화가 재미 이상의 심리적 동요를 일으키는 힘이 있다는 것이다. 어린 시절 슬램덩크는 점심 급식을 포기하고 종이 치자마자 농구장으로 뛰어가게 해주었고, 내 키로는 절대 닿을 리 없는 골대에 무작정 점프를 하게 해주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아저씨가 되어버린 지금도 어린아이처럼 다시 가슴을 뛰게 만들어 주고 있다. 마치 피터팬이라도 된 것처럼 말이다.


피터팬 증후군이라는 심리학 용어가 있다. 성인이 되었음에도 현실의 어려움에서 도피하기 위해 스스로를 어른임을 인정하지 않은 채 어린 아이처럼 타인에게 의존하고 싶어 하는 심리를 말한다.

어른이 되었음에도 스스로 어른임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여러모로 곤란한 상황이 펼쳐질 것이다. 밥벌이에도 문제가 생길 것이고, 함께 지내는 사람들과의 커뮤니케이션에도 문제가 생길 것이 분명하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늘 '나잇값을 해야 한다'라거나 '어른스럽게 굴어야 한다'라는 자기검열에 시달린다.

하지만 슬램덩크와 같은 매력적인 컨텐츠는 엄격하게 자기검열하며 살아가는 어른들을 잠시 피터팬 증후군에 빠지게 만들어 주는 힘이 있다. 오래도록 피터팬 증후군에 빠져있다면 현실적인 문제가 크겠지만 아주 잠시만이라면 뭐..괜찮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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