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어린 시절 나이키는 모든 사내 녀석들의 로망이었다.
같은 반 친구가 자랑스럽게 신고 온 나이키 운동화를 힐끔힐끔 쳐다보며 부러워했던 경험을 가진 남자들이 아마도 꽤 많을 거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어린아이의 운동능력에 비추어 기능적으로는 크게 다를 바 없는 운동화 중 하나이지만 나이키 로고가 커다랗게 박힌 운동화는 대체불가한 핫 아이템이었다. 그 운동화 하나가 가지고 싶어서 부모님에게 떼를 써보기도 하고 떼쓰기 작전에 실패한 후엔 얼마 되지도 않는 용돈을 꼬박꼬박 저축했더랬다. 그리고 겨우 모은 돈으로 산 하얀색 나이키 운동화가 닳고 닳아 발가락 쪽에 구멍이 날 때까지 신었던 기억이 난다.
세월이 흐르고 흘러 이제는 어엿한 연봉 받는 직장인이 되었다. 원한다면 운동화 하나쯤은 쉽게 살 수도 있는 나이가 되고 나니 이제는 나이키에 대한 관심이 점점 멀어진... 것이 아니라 더욱 갖고 싶어진다! 돈 버는 직장인이지만 용돈이 부족한 건 여전하다. 용돈을 아끼고 아껴 비상금을 모으고 리셀 사이트의 가격 동향을 주시하다가 저점에 이르렀을 때 하나씩 사는 유부남의 현실. 신발장 한편을 차지한 에어조던1과 덩크 시리즈 컬렉션을 뿌듯하게 바라보다가도 20년이나 지났는데 난 왜 변함이 없을까 생각해 보게 된다.
세월이 흘러도 나이키가 많은 사람들의 로망이 되는 이유 중 하나는 브랜드 슬로건의 영향도 있다. 나이키의 광고 끝에 항상 붙는 'Just do it'이라는 한 마디. 어렸을 때는 나이키의 슬로건이 무엇을 말 하는 건지 사실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냥, 해라, 그것을. 이게 도통 무슨 소리인지. '왜 그냥 하라는 거지?', '그냥 하는 게 뭐지?', '뭘 하라는 거지?' 의문이 꼬리를 물었다. 불가능은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호기롭게 말하는 경쟁사의 슬로건이 더 멋져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어렴풋이 알 것도 같다. 우리는 때때로 무언가를 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까지 기다린다.
운동을 시작하고 싶은 순간, 공부를 하고 싶은 순간,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은 순간, 내 인생의 방향을 바꾸고 싶은 순간. 하지만 누적된 인생의 경험을 통해 느끼고 있다. 무언가 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까지 기다려도 그런 순간은 오지 않는다는걸. 그런 순간을 기다렸다가 시작했을 때 이미 너무 늦었을 때가 많다는 것을 말이다.
나이키의 Just do it은 '작동흥분이론'을 닮아 있다. 어떤 일을 시작하면 뇌의 특정 부위가 반응하면서 일에 몰두할 수 있는 힘이 생겨난다고 한다. 작동흥분이론은 일에 몰두할 수 있는 힘이 생겨서 일을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일단 일을 시작하고 나면 점점 의욕이 생겨서 지속적으로 그 일을 할 수 있는 힘이 생기는 현상을 말한다. 나이키의 Just do it 이라는 말도 단순한 운동이든, 중요한 도전이든 간에 뒤로 미루지 말고 일단 시작하면 위대한 변화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하는 것 아닐까.
어떤 일을 하더라도 평생 읽고 쓰는 삶을 살고 싶다고 어렴풋이 생각해왔다. 하지만 돈벌이에 지치다 보면, 육아에 시간을 쓰다 보면 글을 쓰겠다는 의욕은 잘 생겨나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주중엔 힘드니까 주말에 집중해서 써보자', '이번 주는 회사일이 좀 힘들었으니까 다음 주에는 쓸 기운이 생길 거야'
핑곗거리는 너무나 손쉽게 생겨난다. 그리고 그 좋은 핑계를 보호막 삼아 글을 쓸 수 있는 의욕과 체력이 생겨날 때까지 미루는 날들이 압도적으로 많다. 그래도 오늘만큼은 나이키의 신발 끈을 꽉 매고, 노트북을 들고 카페로 나간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이야기한다.
'야! 그냥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