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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백구십칠 Dec 06. 2020

스트라이샌드 효과가 어느 내향인에게 미치는 영향

 나라는 인간의 성격유형을 규정하자면 '돌이킬 수 없는 내향성'이라고 할 수 있겠다.

나에 대한 외부평가의 주요 테마는 아마도 '조용하다', ‘말수가 적다'일 것이고, 그러한 세간의 평가를 부정할 생각은 딱히 없다.

적어도 서른 살을 맞이한 이후부터는 나의 이런 성격에 큰 불만을 가진 적은 없었고, 어차피 인류의 절반은 내향적 성격을 가졌을 것이라고 맘 편히 생각하는 편이다.


다만, 아쉬운 점은 현대사회가 외향성을 적극적으로 권장하는 사회라는 점이다.

대부분의 위치에서 영업사원 같은 외향성을 중요한 덕목으로 보는 경우가 많으며, 특히나 내가 속해 있는 광고회사는 더더욱 그러한 경향이 짙다.

아마도 광고라는 것이 결국 사람의 욕망을 이해해야 하는 일이고 업무의 대부분도 사람과 사람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이루어지는 일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나 역시 돌이킬 수 없는 내향성 인간이지만 광고업계의 외향성 무리에 섞여 우당탕탕 몇 년을 보내고 나니 업무와 관련된 커뮤니케이션에 있어서 만큼은 크게 부담을 느끼지 않고 비교적 수월하게 해낼 수 있을 정도로 단련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익숙해지지 않는 것이 있는데 바로 업무 외적인 상황에서의 커뮤니케이션이다.

팀 동료와 단둘이 올라탄 엘리베이터, 클라이언트를 만나러 함께 이동하는 차 안, 자주 있지는 않지만 간간히 생기는 회식자리와 같이 인간적 친밀감을 내포한 사적 대화가 필요한 자리에서 만큼은 나의 내향적 성격을 감추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신입사원 시절, "이런 자리에서 분위기 띄우는 것도 신입으로서 갖춰야 할 덕목이야." 따위의 이야기를 들은 이후 이러한 종류의 자리는 언제나 고역이었다. 내향적인 나의 성격이 드러나는 것, "저 친구는 왜 저렇게 말이 없어?"라는 말을 듣는 것이 사회인으로서 낙제점을 받는 것만 같아 나의 성격을 감추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을 하기도 하였다.

잘 보지도 않는 인기 드라마의 연예기사 헤드라인을 기억해 두었다가 "어제 그 드라마 보셨어요?" 하며 화젯거리를 던지거나, 물어보지도 않은 자신의 실수담을 주저리주저리 늘어놓아 억지웃음을 유발하는 식이었다.


원치 않은 말들을 과하게 내뱉었던 날은 체질에 맞지 않는 음식으로 과식을 한 것처럼 거북했고, 나의 성격과 다른 사람처럼 연기했던 날은 감정연기를 막 끝낸 배우처럼 지쳐버리기 일쑤였다.

게다가 나의 이런 노력으로 인해 타인들이 나라는 인간을 '좀 더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외향성 인간'으로 봐주었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그저 실없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 쓸데없는 말이 많은 사람, 뭔가 어색한 사람으로 비추어졌을 뿐이다.


'스트라이샌드 효과'라는 것이 있다.

미국의 배우인 바브라 스트라이샌드는 한 웹사이트의 항공사진에 자신의 저택이 찍혀 사생활이 침해당했다며 사진작가를 상대로 거액의 소송을 제기했다.

그런데 이 소송이 뉴스에 보도되자 스트라이샌드의 저택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되레 집중되었다.

이처럼 인터넷 상에서 자신에게 불리한 사실을 숨기려다가 오히려 역효과를 일으키는 것을 스트라이샌드 효과라고 말한다.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내가 내린 결론은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내 성격대로 사는 것이다. 그리고 나의 이런 반사회적(?) 성격을 숨기거나 덮으려고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내보이는 것이다.

어울리지 않는 옷을 억지로 입으면 더 튈 뿐이고, 어설프게 숨기려는 시도는 스트라이샌드의 저택처럼 원치 않는 주목을 이끌어낼 뿐이다.


요즘의 나는 외향성 인간처럼 말하려고 하지는 않는다. 대신 잘 들으려고 노력한다. 집중해서 이야기를 듣고 공감하고 사려 깊은 말을 건네려고 노력한다.
 "제가 원래 말을 잘 못해서요."

대단할 것도 없는 사실을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요즘이다.

올바른 베이스 리듬을 찾은 음악처럼 한결 편안하게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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