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는 부산으로 향하는 KTX에 몸을 실었다. 부산의 한 책방이 주최하는 북토크에 참여하고 그 일정에 겸해 바다라도 실컷 보고 올 요량이었다. P는 부산을 방문할 때마다 해외로 떠날 때의 설렘과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익숙한 듯 다른 풍경이 펼쳐지고 분명 이해할 수 있지만 다른 억양의 대화들이 이어지며 마음 먹지 않으면 쉬이 갈 수 없는 곳이 부산이었기 때문이다. P에게 부산방문은 유사 휴가와도 같은 경험이라는 얘기다.
P는 장거리를 이동할 수 있는 탈 것 중 단연 KTX를 선호했다. 비행기에 비하면 한없이 느렸고, 고속버스에 비하면 다소 비싼 것이 KTX다. 의자를 두드리면 먼지가 뿜어져 나올 것처럼 낡았고 옆자리에 누가 앉느냐에 따라 쾌적함의 질이 낮아질 수 있다는 불확실성도 있었다.
그럼에도 P가 KTX를 선호하는 이유는 커다란 창문 때문이다. 커다란 창문을 통해 시간당 수만 개의 장면이 끊임없이 스쳐 지나간다. 그 장면 장면은 P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새로운 스토리를 탄생시킨다. 그래서 P는 KTX가 운수업이 아니라 문화산업으로 분류되어야 한다는 급진적 주장까지 한다.
창문을 스쳐 지나가는 작은 마을들을 보며 만약 서울이 아닌 시골에 살았다면 어땠을까 하는 평행 세계를 상상한다. 회색빛에 온갖 소음이 난무하는 서울을 벗어나 이따금 새가 푸드덕거리는 소리만이 존재하는 고립된 집에 산다면 어떨까? 배달 음식 대신 배추전을 부쳐 먹고 넷플릭스 대신 개구리를 관찰하는 삶에 얼마나 적응할 수 있을까?
한적한 길 위를 점 처럼 지나가는 사람의 모습을 보며 폐쇄된 마을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을 해결하러 온 과묵한 탐정 이야기 같은 픽션을 상상해 보기도 한다.
낡은 재활용 공장에 쌓인 폐기물들을 보며 그 안에 살아가는 작고 낡은 로봇의 동화를 그려보기도 한다.
작은 마을에 존재하는 가구의 수와 규모를 살피며 저곳에서 창업한다면 어떤 업종이 먹힐까 하는 부질없는 사업계획을 세우기도 한다.
부산으로 향하는 5시간 동안 상상의 세계는 끊임없이 생성되고 사그라지기를 반복한다.
비행기의 창문은 지나치게 작고 보는 장면이 한정적이다. 한없이 바라보고 싶다가도 잠을 청하는 옆자리 눈치가 보여 닫아두는 시간이 더 길다.
버스와 지하철은 온전히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한 지 오래다. 창문의 크기 자체가 작은 것은 둘째로 치고 온갖 광고와 정보들이 프레임을 침범해 있다. 멀리 반짝이는 한강을 보아도 결혼정보회사 광고와 겹 채 바라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만약 언젠가 KTX의 창도 광고 매체가 되어 버리는 날이 온다면 P는 분명 울 것 같은 기분에 빠질 것이다.
한 산업에는 그 산업 줄 수 있는 핵심 가치라는 것이 있다. 그러니까 운수업은 빠른 것, 요식업은 맛, 의류산업엔 최신 트렌드와 재질 같은 것이 핵심 가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거의 모든 브랜드들은 그 핵심 가치를 제련하기 위해 노력한다. 당연하다.
하지만 P는 핵심 가치라는 것보다 그 주변에 존재하는 가치에 더 눈이 갈 때가 있다. 대체로 주목하지 않지만 누군가에겐 중요한 어떤 가치가 핵심 가치면에서 우위보다 더 마음을 움직이곤 하는 것이다. 브랜드에는 Core value가 아닌 Quiet value라는 것이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P는 또다른 망상에 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