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에 대한 대가(代價)
기쁨과 슬픔의 상관관계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관계를 맺으며 성장한다. 그 옛날, 인간은 생존을 위해 본능적으로 '서로 도움'을 선택했기에, 근본적으로 사회적 동물이라 할 수 있다. 누군가를 만나고 또 헤어짐을 반복하며 느끼는 다양한 감정. 그 수많은 감정 중에서도 우리가 가장 집중하는 두 가지를 꼽자면 아마, '기쁨과 슬픔'이 아닐까. 극명한 대비를 이루는 관계를 가진 이 두 감정의 공존은 아마도 불가능할 것이다.
슬픔, 기쁨에 대한 대가(代價)
소중한 가족 중 한 명을 영원히 떠나보내는 이들과 함께한 후 돌아오는 길에, 타락한 천사 '루시퍼'를 모티브로 한 넷플릭스 시리즈 <루시퍼>에서 나온 죽음에 관한 대사가 어렴풋이 생각났다. 극 중에서 소중한 동료를 잃은 한 캐릭터의 대사.
"누군가를 잃었을 때 느끼는 슬픔은 그를 통해 느껴왔던 기쁨에 대한 대가(代價)다"
소중한 사람을 잃었을 때 우리는 극심한 슬픔을 느낀다. 이제 더 이상 그와는 이 세상에서 함께할 수 없다는 데에서 오는 절망과 함께. 떠나보내는 이와의 관계가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당연하지만 더 큰 슬픔을 느낀다. 그리고 바로 그 슬픔이 우리가 그를 통해 느껴왔던 기쁨에 대한 '대가'라는 것이다. 결국 내가 느낀 기쁨이 크면 클수록 그에 따른 슬픔도 커진다는 뜻이다.
'헤어짐'의 사이클이 짧다는 이유로
반려동물을 너무나도 기르고 싶다는 아내의 요청에도 끝끝내 거절하고 마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다. 헤어짐의 사이클이 상대적으로 짧아 그 동물을 잃는 슬픔을 금방 감내해야 하는 그 과정이 싫었던 것이다. 그래서 관계 맺기를 시작조차 하지 않으려던 것이다. 하지만 <루시퍼>에서는 이에 대한 답을 준다.
"그와 함께하며 느낀 기쁨이 그를 잃었을 때보다 얻는 슬픔보다 더 값지고 크기 때문에.."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예를 들면, 부모와 자식은 혈연이라는 관계 속에서 수십 년 동안 다양한 감정을 공유한다. 그 과정 속에서 부정적인 감정이 주를 이룬다면 관계가 끝나는 시점에 얻는 슬픔은 그다지 크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보통 긍정적인 감정이 주를 이룬, 즉 '기쁨'으로 가득 찬 관계일수록 끝의 지점에서 느끼는 슬픔은 훨씬 크다. 즉 우리가 계속 관계를 맺어야 하는 이유도 바로 그 슬픔보다, 관계가 지속되는 긴 세월 속에서 느끼는 기쁨이 더 크고 값지기 때문이 아닐까. 그래서 우리가 관계 맺음을 멈출 수 없는 것이 아닐까. 관계의 끝에서 필연적으로 느낄 슬픔의 존재를 인지하고 있으면서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