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가 출발하기도 전에 엄마는 어디론가 바쁜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었다.
엄마가 등 돌려 가는 모습을 보며 이 길로 엄마는 돌아오지 않을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이 스쳐갔다.
그날따라 엄마가 나와 함께 장을 보러 가자고 했다.
버스 타고 나가는 곳이라 나는 신나 있었다. 버스차창밖으로 빠르게 지나가는 간판 읽는 것을 좋아했다.
이상하게 기억력이 좋았던 나는 몇 번 보고는 간판에 붙은 전화번호까지 다 외워버렸다.
그래도 볼 때마다 새로웠고 재미있었다.
그 당시 차장언니의 “오~~~ 라이” 소리도 나의 호기심을 자극하기 충분했다.
그리고 시장에 가면 또 하나 좋았던 것은 자꾸 뿌리치는 엄마의 손을 길을 잃을까 봐 무섭다는
핑계로 꼭 잡고 다닐 수 있다는 것이었다.
엄마는 알고 있었을 것이다. 내가 절대 길을 잃어버릴 일도 엄마를 놓칠 일도 없는 아이라는 것을.
일곱 살 무렵이었을 때도 시장에서 놓친 엄마를 울며불며 찾지 않고 경찰아저씨를 앞장 세워 집을 찾아왔던 이력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때 경찰아저씨가 대단한 꼬맹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고 한다.
하지만 그날은 엄마가 내 손을 심하게 뿌리치지도 않았고 맛있는 간식을 사주며 이것저것 장도 많이 봤다.
마치 오랫동안 장을 안볼사람처럼…..
그리고는 당신은 볼일이 있으니 먼저 들어가 있으라며 나를 혼자 버스에 태우고 차장언니에게 이런저런 당부를 하셨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사람들 틈으로 총총히 사라져 가는 엄마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엄마가 한 번만 돌아보고 나에게 손을 흔들어 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나를 안심시켜 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버스는 엄마를 그곳에 놔두고 출발했다.
그리고 나는 또 하나의 비밀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걸 예감했다.
엄마가 당분간 아니 어쩌면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처음으로 느껴보는 설움의 감정이었다. 큰 소리로 울고 싶은 마음을 처음으로 꾹꾹 눌러 담은 날이었다.
차장언니는 내가 안전하게 하차할 수 있도록 손을 잡아주었고 장바구니들을 버스정류장 구석으로 내려주며 할머니가 곧 오실 거라고 말하고는 이내 버스 뒷문을 닫았다.
저 멀리 할머니께서 허둥지둥 빠른 걸음으로 오시는 모습이 보였다. 순간 나는 어떤 모습으로 할머니를 맞아야 하는지 몰라 장바구니들만 만지작 거렸다.
“엄마는 어디 간다고 했어? 언제 온다고 안 하고 갔어?"
"어째 어린것만 버스 태워 보내고..”
마지막에 할머니가 하신 혼잣말 때문에 나는 어떤 물음에도 대답하지 못했다.
어린것을 혼자 버스 태워 보냈다는 심기불편한 소리가 끝내 내 입을 다물게 했다.
뭐라도 할머니께 말씀드려야 했지만, 정말 나는 엄마가 어디로 간다고 했는지, 언제 온다고 했는지, 아무 말도 듣지 못했다. 그때부터 나는 알 수 없는 불안에 시달렸다. 뭔가를 내가 속이고 있는 것 같은 느낌과 왠지 나는 알고 있을 것이라는 어른들의 불편한 시선을 느끼고 있었다.
이 시기에 나는 혼란의 연속이었다.
여덟 살의 아이가 딱히 어떤 마음을 굳게 먹었는지 생각은 나지 않았다.
하지만 너무나 또렷한 기억은 매일매일 하교 후 집으로 가는 길이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이렇게 걸어서 어떤 소용돌이를 빠져나가고 싶다는 생각뿐.... 그리고, 다른 친구들처럼 번듯하게 공책 펴놓고 숙제하고 동화책을 깔깔거리며 읽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불안한 마음 때문에 현실을 외면하려고 행복한 그림을 머릿속으로 떠올렸던 것 같다.
알지 못하는 어른들의 고함소리와 어린 동생들의 울음소리와 뭔가가 부딪히는 둔탁한 소리들이 내 몸을 늘 긴장하게 만들었다. 불행히도 이런 소란은 꽤 오래 지속됐다.
그런 와중에도 나는 동생들을 챙겨 동네 놀이터로 나갔고 저녁 무렵 할머니가 부르는 소리를 들어서야 집으로 들어갔다.
어느 때는 동네 이 집 저 집에서 저녁밥을 해결하는 날도 있었다. 예전에 동네 사람들이 우리 집에서 식사를 해결할 때처럼 이번엔 우리가 그랬다.
할머니나 아버지가 저녁 늦게 볼일을 마치고 들어오는 날이 잦았다.
어린 나로서는 어떤 엄청난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만 짐작할 뿐 그 누구도 나에게 알려주는 사람이 없었다.
미쳐 몸을 숨기지 못한 어느 날 여러 명의 어른들이 집으로 찾아와 온갖 살림살이들을 부수기 시작했고 신발을 신은채 방으로 들어온 한 어른이 나에게 엄마는 어디 갔냐고 물었다.
나는 본능적으로 모른다고 말했지만 만약 안다고 해도 그것이 비밀이라면 나는 지켰을 것이다.
나에게는 지켜야 하는 또 다른 것이 있었다.
그 당시 네 살, 세 살이었던 동생들이었다. 우리 집에 찾아왔던 어른 중에 우리가 보는 앞에서
“이 아이들 세명 팔아서 빚 갚으면 되지 않냐”라고 하는 소리를 들었다.
순간 할머니가 그 사람에게 물건을 집어던졌고 어디서 그런 돼먹지 않은 소리 하냐며 몸싸움을 벌였다.
그날부터 나는 자다가도 동생들이 잘 있는지 살피는 버릇이 생겼고 왠지 모르게 눈물이 많아졌다.
어른들이 고함을 치기 시작하면 나도 모르게 코끝이 시큰해지면서 눈물이 고이는 것을 억지로 참고 참았다.
그때부터 나는 마음속으로 기도라는 것을 했다.
제발 우리는 떨어지지 않게 해달라고, 만약에 고아원에 가게 되더라도 꼭 같은 고아원으로 보내달라고 울며 울며 기도했었다. 어린 나이였지만 목숨을 걸고라도 지켜야 되는 것에 대한 소중함이 뭔지 알고 있는 듯했다.
다행히 그런 나의 마음을 아시는지 할머니와 아버지는 우리 삼 남매를 온 마음을 다해 당신 품 안으로 끌어안으셨고 행여 우리들에게 상처가 될만한 말들은 듣지 못하게 막아내주셨다.
그 뒤로 외가 식구들은 한 번도 찾아오지 않았지만 친가에 삼촌들이나 언니들이 우리를 많이 돌봐주었다.
그렇게 우리는 대궐같이 큰 집을 팔고 끝도 없이 펼쳐져 있던 할머니의 밭들과 땅들이 팔려나 가는 것을 보았고 내가 아홉 살이 되던 겨울에 방 두 칸짜리 사글세 집에서 엄마 없는 한 가족으로 다시 뭉쳐졌다.
아홉 살,
나는 엄마에 대해 나쁜 마음(아마 지금생각해 보면 증오가 아니었을까. 미움보다 더 미운감정)이 생겼고 동생들과도 어쩌면 헤어질지 모른다는 막연한 두려움을 내면 깊숙한 곳에 숨기고 그날들을 살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