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말하고 싶어

by 문홍

지금으로부터 5년 전.

나는 매일 악몽 같은 일상을 버티고 있었다.


꿈을 꾸듯 어느 순간 단절되는 의식. 그것은 집에서도, 일터에서도, 길에서도 멈추지 않았다.

갑자기 머리에서 스프링 같은 뭔가가 튕겨져 나가는 느낌이 들면 어김없이 나는 새까만 블랙홀 속으로 깊이깊이 빠져들어갔다. 말 그대로 새까만 소용돌이를 하염없이 돌고 있었다. 그것이 시작이고 끝이었다. 일어나 보면 병원이나 안방 침대 위, 혹은 일터의 창고 안이었다.


몸은 이미 깊은 물속에 잠긴 듯 늘어져 있고 옷은 식은땀으로 흥건히 젖어있었다. 그리고 그 사이 있었던 일은 아무것도 기억에 없었다. 병원에서 눈을 뜨게 될 때에도 의사들은 아무런 병명을 내놓지 못했다. 그저 과로하지 말고 잘 챙겨 먹고 쉬라는 말이 최선이었다. 그런 말은 이미 중학교 때부터 들었던 말들이어서 할 말 없는 의사들의 말장난쯤으로 여기고 말았다.

이런 증상들이 짧게는 하루, 길게는 며칠씩 이어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그때부터였을까 내 삶은 조용히 무너지고 있었다.


흔한 감기 한번 걸리지 않을 만큼 건강했던 나로서는 이런 증상들을 받아들이는 게 쉽지 않았다. 아이들 셋을 직접 라이더 했고, 편의점 세 곳을 한꺼번에 운영 중이라 모든 것을 내가 직접 관리해야 했기 때문에 하루에 잠을 서너 시간으로 줄여도 시간이 모자랄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내가 아파서 눕는다는 것은 스스로가 용서가 안 되는 일이었다.

몸이 힘들어질수록 나는 더 많이 가정과 일에 집착하게 됐고 그럴 때마다 온갖 신경증세들이 나를 압박해 왔다.


중요한 건 상황이 이 지경이 됐는데도 남편에게도 부모님에게도 그 누구에게도 나는 도와달라고 말을 해야 하는 것조차 모르고 있었다. 아니 어쩌면 그렇게 말하는 것이 내가 스스로 실패를 인정하는 것이 될까 봐 말을 안 하고 있었는 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나는 이런 정황들을 하나하나 이야기하는 것에 나도 모르는 불편함을 느끼고 있었다.


코로나19가 시작된 그 무렵 나의 병증도 극에 달해 있었고, 가게를 하나씩 정리하면서 뭔지 모를 불안감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곧 커다란 파도가 나를 덮칠 것 같은 두려움에 매일매일 피를 말리고 있었다. 그리고 심장이 터져나갈 것 같은 그 알 수 없는 압박을 견디지 못해 나는 급기야 이혼을 결심하는 최악의 상황을 만들고 말았다. 그만큼 나는 매일 죽는 게 편할 것 같은 고통의 시간과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내 목숨과도 같은 아이들 까지도 외면하게 만든 그 두려움은 상상을 초월하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나를 어딘가로 끊임없이 끌고 들어가는 힘, 저항한 번 해 보지 못하고 죽을 것 같은 두려움은 나의 발가락 열 개를 온통 보랏빛으로 물들일 만큼 처참한 몰골로 만들어버렸다.

끝끝내 나는 저항하지 못하고 코로나19가 종식되어 가는 2023년 5월 혼자 조용히 그곳에서 걸어 나왔다. 오직 삶을 끝내고 싶은 욕망만이 유일한 내 의식이었다.


겨우 옷가방과 책 몇 권 챙겨 들고 들어간 곳은 조그마한 원룸이었다. 방의 크기도 가늠할 수 없는 좁은 원룸에서 며칠간 먹지도 못한 채 잠이 들었다. 제발 이 상황이 꿈이었으면....


하지만 냉정한 현실은 비좁은 방에서 눈을 뜨게 만들었고 배가 고프다는 신호를 들으며 아직도 내가 죽지 않고 살아있다는 비참한 현실만 덩그러니 목격하게 했다.

물 한 모금을 목구멍으로 넘기는 순간 왈칵 울음이 솟구쳤다. '그래도 살아보겠다고...'

가슴에서 사무치게 그리운 무엇이 내 마음을 뜨겁게 달궜다. 아이들이 옆에서 종알종알 떠드는 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이불을 한 움큼 거머쥐고 입을 틀어막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 아무것도 모르는 남편. 아무것도 모르는 부모님.

나의 들키고 싶지 않은 과거가 아무것도 모르는 이들에게 어떤 고통과 불행을 안겼는지 나는 그 좁은 원룸에서 눈을 떴을 때 알게 됐다. 그동안 내가 살아온 삶의 기억은 완전히 삭제된 것처럼 나는 전혀 다른 사람이 돼서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시작된 방황은 나를 길거리로 내몰았다. 딱히 갈 곳도, 갈만한 곳도, 오라는 곳도, 가고 싶은 곳도 없었지만 그냥 하염없이 걸었다.

흘깃 쳐다본 카페 안의 풍경은 넓은 통유리창 하나를 사이에 두고 내가 서있는 이곳과는 전혀 다른 이 세상과 저세상의 거리만큼 구분 짓고 있었다.

'저 사람들은 뭐가 좋아서 웃고 있을까'

'얼마나 행복하면 저렇게 웃을 수 있을까'

새삼 그들이 부러웠다. 배가 고파보이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들 앞에 서 있는 나의 현실은 현기증이 날 만큼 배도 고프고, 얼마나 걸었는지 알 수 없는 시간을 가늠케 할 만큼 캔버스 운동화에 피가 새어 나오고 있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



내 목소리를 들어본 게 언제인지도 모르게 나는 점점 침묵 속으로 빠져들어가고 있었다.

하루에도 수십 통씩 걸려오던 전화가 모두 끊기고, 아이들과 통화도 마지막이 언제였는지 기억에서 희미해갈 때쯤 나는 모진 마음을 먹었다.


그동안 우울증 약을 처방받을 때 불면증을 이유로 따로 처방받은 약을 한 번에 털어 먹었다. 어디서 주워들은 생각이 나서 소주 한 병을 같이 털어 넣었다. 그리고 그대로 침대에 누웠다.

아무런 두려움도 없이, 아무런 죄책감도 없이, 그저 지금의 고통을 끝내기로 마음먹은 그대로였다.

내가 남편과 아무런 상의 없이 이혼을 결심한 이유도, 목숨과도 같은 아이들을 떼어놓고 나오기로 마음먹은 이유도 알 수 없는 두려움의 고통을 끝내기 위해서였다.

눈물도 없이, 작별인사도 없이 이렇게 아무 생각 없이 마무리하는 것이 오직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다시 눈이 떠졌다. 희미하게 말소리들이 들리고 푸른빛이 도는 형광등을 바라보다 다시 눈을 감았다.

여전히 살아있다는 것이 나를 절망에 빠트렸다. 여기서 나가도 나는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생각과, 더 이상은 그 끔찍한 두려움의 소용돌이 속으로 휘말려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그런 안타까운 순간에 있던 사람들이 119에 실려 경찰과 함께 응급실로 들어가면 퇴원하는 절차도 까다롭지만 퇴원 후에도 얼마간은 기관의 전화도 받아야 하고 행정절차상 방문도 여러 차례 한다.

그때는 이런 관심조차도 받아들이기가 너무 버거웠다. 그냥 모든 것이 원망스러울 뿐이었다.


작은 원룸으로 돌아와 멍하니 며칠을 또 지내고 있을 때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왜 나는 상황이 이 지경이 됐는데도 도와달라는 말을 못 하고 있을까? 부모님에게도, 형제들에게도, 그 어떤 누구에게도,

'나 너무 마음이 힘들어서 죽을 것 같은데 나 좀 도와주면 안 돼요?'라는 말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심지어 도와주겠다고 여기저기서 연락이 오지만 그것조차도 거부하고 있는 나를 보았다.


왜? 왜? 무엇이 나를 독 안에 가둬놓고 세상과 단절하게 만드는지, 왜 나를 끔찍한 악몽 속으로 끌어들이는지 만약 내가 살아야 한다면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 여러 날을 그 생각만 했다.


어느 날 막냇동생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아주 조심스러운 듯 어려운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누나, 우리는 누나가 걱정돼서 많은 고민 끝에 누나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생각으로 하는 얘기니까 오해하지 말고 들어줘. 누나가 많이 아프다고 해서 엄마랑 솔직히 점치는 무당집 여러 군데 다녔어. 그런데 누나도 이름 들으면 알만한 유명하신 한 분이 누나를 직접 만나서 꼭 할 얘기가 있다는데 한 번만 만나보면 안 될까? 누나 편한 시간 말하면 그날 우리 가게 문 닫고 자리 마련할게, 꼭 한번 만났으면 좋겠어. 생각해 보고 얘기해 줘!"


동생의 간절한 부탁도 부탁이지만, 살아오면서 그동안 내가 어떤 신이 나 종교에 대해서 한 번도 깊이 생각해 본 일이 없었다. 물론 재미 삼아 결혼 후에 친구들과 용하다는 점집 몇 군데는 다녀봤지만 그다지 기억에 남는 특별한 조언을 들은 기억이 없어서 잊어버리고 있었다.


며칠 후 동생 가게에서 만나게 된 유명하다는 그 무당은 역시나 지역 TV프로에서 몇 번 봤던 만큼 얼굴은 낯이 익었다. 무엇보다 나를 반기는 그분의 차분한 어조가 나를 편안하게 해 주었다.

따로 나를 보면서 점사를 치는 것도 없이 바로 내 손을 잡아 끌어당기더니,

"많이 힘들죠? ㅇㅇ씨를 만나자고 한 이유가 있어요. 지난번에 동생과 어머님이 오셔서 ㅇㅇ씨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데 사실 저는 그 전날 꿈을 꿨어요. 물속에 있는 것도 아니었는데 내 몸이 계속 젖는 것이었어요. 옷을 몇 벌을 갈아입어도 계속 젖는데 저는 꿈속에서도 알았어요. 이 사람 이미 살아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요. 무슨 말인지 모르겠죠? 아마 ㅇㅇ씨 다른 무당들이 봤으면 당장 신내림 받으라고 했을 거예요. 그 정도로 지금 신들의 다툼이 지독해요. 아마 이 전쟁은 ㅇㅇ씨가 죽어야 끝나는 전쟁일 거예요. 그런데요 ㅇㅇ씨, 당신은 신내림도 받을 수 없어요. 당신을 살려내려면 신내림을 받으라고 해야 하지만 그것보다 더 큰 힘이 막고 있어요. 당신 무의식이요. 당신 안에 있는 어떤 힘이 지금 혼자서 너무나 힘들게 당신을 지키고 있어요. 그래서 지금 ㅇㅇ씨는 죽지도 못하고 살지도 못하는 이 경계에서 혼란스러운 거예요."


그녀의 말은 나를 더 혼란에 빠트렸다. 그래서 내가 산다는 거야? 죽는다는 거야?

나도 막연하게 생각은 하고 있었다. 내가 이렇게 원인 모를 병마와 싸우고 있는 것이 혹시 신병이라고 하는 그런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문득문득 들었던 건 사실이다. 그동안 TV나 어떤 매체에서 듣고 봐왔던 다른 사람들의 사연이, 나처럼 아무것도 손 쓸 수 없는 마지막에 가는 길이라는 생각도...


"ㅇㅇ씨, 잘 들어요. 일반 사람들은 알 수 없는 어떤 세상이 존재해요. 물론 인정하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지만, ㅇㅇ씨가 이렇게 힘든 이유가 뭔지 알아요? 당신은 이 싸움에 말려들고 싶지 않은 강한 의지가 있는 사람이에요. ㅇㅇ씨는 모르겠지만 당신 무의식은 그걸 알고 있어요. 그런데 그렇게 강한 의지는 그 어떤 신이라도 꺾을 수 없는 의지예요. 그 의지가 한 번씩 약해질 때마다 그 틈을 노려 신들이 장난하는 거예요. 오늘 보니까 ㅇㅇ씨 대단한 사람인 걸 알 수 있겠어요. 다른 사람들은 못 버텨요. 이렇게 강한 힘으로 당신을 무너트리고 있는데도 ㅇㅇ씨는 살아있잖아요. 당신 의지가 당신을 살리는 거예요. 그러니까 내 말 잘 들어요. 이제부터 당신 스스로에게 의지해서 당신에게 도움을 구해요. 다른 사람에게 도와달라고 할 필요 없어요. 그만큼 당신은 강한 사람이에요. 분명히 외롭고 힘든 싸움인 거 알아요. 하지만 신은 고난도 주지만 그걸 마땅히 이겨낼 만큼의 힘도 준다는 걸 나는 알아요. 그걸 이겨내면 그땐 ㅇㅇ씨가 왜 살아야만 하는지 알게 될 거예요. 그리고 지금은 일어나려고 하지 말고 충분히 쉬어요. 삼사 년이 지나면 지금의 이 일이 아마 ㅇㅇ씨를 세상으로 돌려놔줄 거예요."


집으로 오는 내내 꿈속을 걷는 듯했다.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전해 들은 듯 실없는 미소가 번졌다.

이 들뜬 마음을 왠지 가라앉히고 싶지 않아 계속 머릿속으로 떠올리며 집에 들어가기 전 공원을 한 바퀴 돌았다. 얼마 만에 느껴보는 밤공기의 촉감인지 새삼 나에 대한 고마움이 피어났다. 살아있다는 게 고맙다는 생각을 태어나서 처음 해본 밤이었다.


그날 나는 노트를 펼쳐놓고 끝내 가슴 안에 묻어 두었던 진실과 마주하기로 했다. 깊은 어둠의 그 상황들과 나는 다시 마주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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