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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글 쓰는 여성: 4. 사랑을 잃고 글을 쓰다

영화 '비커밍 제인'(2007)의 독신 작가 제인 오스틴

1. 오만과 편견


대한민국 모든 출판사의 내로라하는 세계문학전집에는 반드시 ‘오만과 편견’이 포함되어 있다. ‘오만과 편견’은 영국 리젠트 시대를 배경으로, 잘난 척하는 듯 보이는 귀족 청년 다아시와, 한 가지 사실만 보고 쉽사리 편견을 가지는 중산층 처녀 엘리자베스의 사랑 이야기다. 이 소설은 영화로도 여러 차례 만들어졌는데 가장 최근작인 2005년 영화 ‘오만과 편견’은 키이라 나이틀리가 출연하여 흥행에서도 성공하였다.

      

2. 바이오픽 biopic(주: 극화된 전기영화) 비커밍 제인     


영화 ‘오만과 편견’도 재미있지만, 오스틴이 소설가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전기적 사실과 허구적 상상을 섞어서 만들어 낸 ‘비커밍 제인’ 역시 글 쓰는 여성의 성장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볼 만하다.


3. 사랑하지만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비커밍 제인’은 ‘사랑하지만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라는 아주 고전적인 모티프를 중심으로 오스틴이 어떻게 결혼에 실패하고 작가로서의 길을 걷게 되었는지를 허구를 섞어 그려낸다.     


영화에서 가난한 교구 목사의 딸인 오스틴은, 아들에게만 재산을 물려주던 한정상속 제도 때문에 결혼으로서만 경제적인 안정을 도모할 수 있다. 마침 부유한 그레셤 부인의 상속자 위즐리가 오스틴에게 관심을 보이지만 오스틴은 이미 런던에서 온 오만한 변호사 톰 르프로이에게 온 신경이 가 있는 상태이다. 르프로이는 첫만남부터 오스틴의 글이 어리숙한 자아도취에 불과하다고 비판하고 둘은 만날 때마다 툭탁거리며 자존심 싸움을 하지만 곧 사랑에 빠지고 만다.

     

그러나 르프로이 역시 가난한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나 종조부의 지원 덕에 법률 공부를 하고 있기에 종조부의 허락을 받아야만 결혼할 수 있다. 안타깝게도 종조부는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오스틴을 반대하며, 결국 르프로이와 오스틴은 스코틀랜드로 도주하기로 약속한다. 그러나 오스틴은 르프로이가 부양해야할 가족이 있으며 비밀결혼이 둘 다 불행하게 만들 것임을 예감하고 르프로이를 놓아주고 집으로 돌아온다. 연인과 도주하다가 결혼하지 않고 돌아온 여자가 사회적으로 어떤 냉대를 받을 것인지 뻔히 알면서도 말이다.


4. 결혼과 글쓰기는 양립할 수 없는가     


영화에서처럼 오스틴이 실제로 르프로이와 사랑을 했느냐 아니냐, 그리고 영화에 묘사된 사랑의 도주가 사실이냐 아니냐를 떠나, ‘비커밍 제인’은 사랑과 돈 사이에서 저울질해야 했던 당대의(현대도 많은 부분 그렇지만 말이다) 결혼 관습, 그리고 작가가 되기 위해서 여성이 감내해야 했던 삶의 무게를 보여주는 데 집중한다. 그리고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될 부분은 가난한 젊은 여성이 맞부딪힌, 사랑과 결혼 그리고 작가로서의 정체성... 이 모든 것을 한꺼번에 움켜쥘 수 없는, 진흙탕 같은 삶의 현실이다. 사랑에 빠진 제인이 사랑만으로는 결혼할 수 없었듯이, 작가로서 재능이 있는 제인이지만 가난한 그녀로서는 결혼과 작가의 삶을 양립할 수 없었던 것이다.


오스틴은 독신으로 소설 쓰기에 집중함으로써 작가로서 성공을 거두게 되는데, 영화에서는 그녀가 르프로이와의 열애와 그 쓰라린 실패를 통해 자아성찰적 작가로 성장한 것으로 나온다.

     

‘비커밍 제인’의 마지막 장면에서 작가가 된 중년의 오스틴은 자신의 소설 낭독회에 참가한 중년 신사 르프로이를 만난다. 르프로이는 오스틴의 이름을 딴, 딸 제인을 데리고 왔는데 오스틴은 제인에게 소설을 낭독해준다. 오스틴이 낭독을 끝내자 르프로이는 사랑과 존경의 눈빛으로 그녀에게 박수갈채를 보낸다. (사실 이 장면은 영화적 설정인데 오스틴은 생전에 익명으로만 출판을 했고 그녀의 이름이 박힌 소설이 나온 것은 오스틴 사후이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인생에서 모든 것을 갖는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닌 듯하다. ‘비커밍 제인’이 오스틴의 신뢰할 만한 전기는 아니겠지만... 오스틴이 독신의 전업 작가로 남았기에 위대한 로맨스 소설들을 써낼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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