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에 평론이란 직업이 과연 살아남을까
가방끈이 긴 덕택에(졸업은 못했다) 젊었을 때 저명한 평론가 교수님들을 꽤 뵈었는데 (물론 그분들은 필자를 거의 기억하지 못하실 테고 기억하신다고 해도 결코 똑똑한 학생으로는 생각지 않을 것이다) 가나다순으로 서울대 영문과 김성곤 교수님, 서울대 국문과 김윤식 교수님, 뉴욕대 영화이론과 로버트 스탐 교수님, 그리고 서울대 영문과 백낙청 교수님이 그분들이다.
막연히 문학과 영화에의 이끌림으로 인문계 대학원에 진학했지만 문학도 영화도 잘 알지 못했으며 그것들을 뭐에 써먹는 건지도 몰랐던 내게, 평론이라는 메타담론은 난해하지만 롤러코스터처럼 아찔하고 흥미진진한 세계였다.
쉬운 표현으로 리뷰라고도 불리는 평론은 단순히 작가의 생애를 설명하거나 작품의 줄거리나 특징을 분석하는 글이 아니다. 평론은 작품의 가치를 평가하는 글로서 평론가의 사고방식과 세계관을 드러내 보이며 그 자체로 하나의 완결된 소우주를 형성하기도 한다. 평론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수많은 이분법들, 즉 참여 대 순수문학, 순문학 대 쟝르문학의 대결 등을 중심으로 펼쳐지며, 사회과학과 철학, 심리학, 언어학 등 인접학문들과 영향력을 주고받는다.
내가 위 평론가 교수님들의 비평 경향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할 능력은 못되지만 그분들의 수업을 들으면서 뇌리에 박히게 된 몇몇 인상적인 용어들이 있다. (가나다순으로) 김성곤 교수님은 전혀 비평용어처럼 들리지 않는(용서하시라^^) '(타인종 간의) 우정'이라는 단어를 좋아하셨고 김윤식 교수님은 한국문학사를 설명하시면서 '근대'라는 시대구분에 집착하셨다. 로버트 스탐 교수님은 당신이 백인이면서도 다문화주의와 탈식민주의를 설파하셨고 백낙청 교수님은 모든 것에 '자본주의'의 안경을 쓰고 텍스트를 분석하셨다.
사실 평론이란 자신이 선호하는 '~주의'에 관한 담론이기도 한데 문학의 순수성을 주장하신 서울대 불문과 김현 교수님도 사실은 실존주의에 깊게 영향을 받았다고 알려져 있으며, 내가 한때 역할 모델로 삼았던(그분들 입장에서는 가당치도 않은 일이었겠지만 말이다) 한예종 영상원 김소영 교수님이나 뉴욕대 영화이론과 아네트 마이클슨 교수님의 경우도 여성이라서 그런지 페미니즘에 깊게 경도된 것을 발견하곤 했다.
필자는 문학과 영화를 좋아하는 평범한 소시민에 불과하지만 평론에 대한 갈증만은 항상 품고 있는데, 세간에 이름이 높은 문학평론가인 신아무개 교수님도, 유튜브뿐만 아니라 방송 출연도 활발한 이아무개 영화평론가도 이전 세대의 평론가 교수님들의 역량에는 미치지 못한다는 생각이 든다. 글솜씨 이런 걸 말하는 게 아니라 사상의 깊이와 사회와 인간을 바라보는 통찰력에서 말이다. 보잘것없는 소견이지만, 신아무개 교수님은 미문이지만 논점을 바로 짚는 게 아니라 간접적으로 빙빙 돌아가는 느낌이 있고, 이아무개 평론가는 저널리즘에 치우쳐 평론의 학구적 엄밀성과 정확성이 떨어져 보인다.
그렇다면 필자가 가장 인상적으로 기억하는 평론가 교수님은 누구일까? 아마도 뉴욕대 영화이론과의 로버트 스탐 교수님이라고 할 수 있다. 유럽영화와 남미영화, 탈식민주의와 다문화주의를 비롯한 다양한 영화이론들, 그리고 문학의 영화로의 각색이론에 관하여 수많은 책을 저술하신 교수님께서는 박학다식하실 뿐만 아니라 자상한 성품으로 교수의 본이 되어주셨는데, 이분 밑에서 더 많이 배우고 돌아오지 못했음이 천추의 한이 될 뿐이다.
그건 그렇고, 이렇듯 평론가 교수님들을 숭앙하는 나는 정작 아무것도 못되었고, 평범하게 직장 다니면서 시간 나면 책 읽거나 영화 보는 일반대중의 삶을 영위하고 있다. 전문적인 평론을 쓸 수 있는 지적 능력이 부럽지만 요즘 워낙 독서인구가 줄고 평론하는 사람도 없어서 평론가란 직함이 그리 부럽지는 않다. 교수 직업도 앞으로 AI가 대학교육을 대체하면 없어질 거라는 판국에 평론가 따위가 뭐 그리 대수랴. 신 포도 앞 여우와 같은 처지라 할지라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