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적인 검은 머리 소녀의 성장, 사랑, 그리고 죽음
버지니아 울프나 제인 오스틴은 많이들 알지만 19세기에 활동한 여성 소설가 조지 엘리엇은 영문학을 전공한 사람이 아니면 낯선 이름일 것이다.
조지 엘리엇의 대표작 중 하나인 '플로스 강의 물방앗간'은 물방앗간을 운영하는 털리버 가문의 두 남매 톰과 매기의 유년기와 청년시절, 그리고 죽음을 그린 작품이다. 작가의 자전적 성장담을 상당 부분 반영하는 이 소설은 19세기 영국의 관습과 교육에 있어서의 여성에 대한 억압과 성차별을 묘사하며, 작품의 배경이 되는 마을 세인트오그스의 변모를 통해서 영국 소도시의 자본주의적 성장 역시 그리고 있다.
'플로스 강의 물방앗간'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 무엇보다도 여주인공 매기 털리버의 인물형상화이다. 매기는 검은 머리에 갈색 피부를 가진 소녀로 예민한 감성과 지적 갈망을 가지고 있다. 개성적이고 때로는 관습에 도전하기도 하는 매기는 얌전하고 순응적인 금발의 사촌 루시 딘과 대비가 되는데, '멍청한(?) 금발' 대 '이지적인 갈색머리'의 비교 및 대조는 다른 소설이나 대중매체에서도 반복된 바 있다 (예를 들어서 금발은 마릴린 먼로와 '클루리스'의 알리시아 실버스푼, 갈색머리는 '해리 포터'의 똑똑한 허마이오니(보통들 헤르미온느라고 부른다)와 '미녀와 야수'의 책 좋아하는 소녀 벨 등이 있다.)
지적인 매기 역시 책 읽기를 좋아하는데 부모들은 이런 모습을 자랑스러워하면서도 걱정한다. 털리버 부인은 여성 최고의 덕목은 린넨과 도자기 그릇 관리라고 여기며, 털리버 씨 역시 여자가 똑똑하면 문제가 생긴다고 믿기 때문이다.
“저 애처럼 사람 말을 잘 이해하는 아이는 없지요. 저 애가 책 읽는 걸 들어봐야 해요. 미리 다 아는 듯이 줄줄 읽지요. 게다가 늘 책을 읽어요! 하지만 그건 안 되지요, 안 되고 말고요.” 털리버 씨는 비난을 받을까 봐 이런 우쭐한 마음을 억제하고 서글픈 어조로 덧붙였다. “그렇지만 여자란 그렇게 똑똑할 필요가 없지요. 똑똑하면 문제가 생긴다니까요!”
따라서 털리버 씨는, 아들 톰은 집을 떠나 스텔링 목사에게 보내 비싼 상급교육을 시키지만 매기는 동네 기숙학교에 보내 여성 교양만 가르칠 뿐이다.
내면적 갈망을 채우지 못하고 성장한 매기는 검은 머리의 키 큰 아름다운 아가씨로 자라나는데, 지적이고 감수성이 풍부한 꼽추 필립 웨이컴과 매력적이고 부유한 한량 스티븐 게스트 사이에서 삼각관계에 놓이게 된다.
삼각관계는 로맨스의 전형적인 장치인데, 매기를 사랑하는 두 청년 필립과 스티븐은 여러 면에서 극적인 대조를 보인다. 필립은 털리버 씨의 숙적인 변호사 웨이컴의 아들로 감수성이 풍부하고 책과 예술에 조예가 깊으며 매기에게 헌신적인 애정을 바치지만, 매기가 그에게 느끼는 감정은 주로 우정과 동정심에 가깝다. 한편 스티븐은 게스트 회사 중역의 아들로 부유하고 잘생겼으며 활달한 성격을 가지고 있는데 매기는 그의 육체적인 매력과 그의 배경이 상징하는 안락함에 끌린다. 그러나 필립과 스티븐 둘 다 매기의 상대가 되기에는 걸림돌을 가지고 있는데 필립은 꼽추라 장애인이고 스티븐은 매기의 사촌인 루시와 이미 약혼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뻔한 로맨스처럼 보이는 이 삼각관계에서 조지 엘리엇이 강조하고 비판하는 것은, 그러나, 세인트오그스 사람들이 보여주는, 남녀의 행실에 대한 차별적이고 이중적인 판단기준이다. 매기에게 첫눈에 반한 스티븐은 매기를 저돌적으로 납치해서 사랑의 도피를 시도하는데, 매기가 스티븐을 거부하고 마을로 되돌아왔을 때 스티븐은 전혀 비난받지 않는 반면 매기는 남자를 유혹한 헤픈 여자라는 평을 받으며 따돌림을 당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조지 엘리엇은 등장인물의 심리묘사에 있어서 매우 뛰어난 역량을 보여주는데 필립, 스티븐과의 삼각관계에 놓인 매기를 욕망과 양심 사이에서 흔들리는 입체적인 인물로 그리고 있다. 아래 인용문에서 매기는 사랑의 열정과 충만한 행복을 맛보고 싶은 욕망과 루시와 필립에 대한 신의를 지켜야 한다는 양심 사이에서 갈등한다.
충만한 삶, 다시 말해 사랑, 부귀, 안락, 세련 같은 그녀가 갈망하던 모든 것이 그녀의 손아귀에 들어오려고 하는데 왜 그것을 포기해야 하는가? 왜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주어야 하는가? 그 사람에게는 덜 절실할지도 모르는데. 그러나 이런 모든 새로운 격정의 소용돌이 가운데서 오래된 목소리들이 들려왔다. 그것들은 점점 커져서 때로는 그 소용돌이가 완전히 가라앉은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녀가 꿈꾸던 충만한 삶, 그 삶이 그녀를 유혹한 것일까? 그렇다면 예전의 노력 및 사랑과 역경의 시기 동안 그녀의 마음속에 키워진 다른 사람의 고통에 대한 깊은 동정심, 그리고 개인적인 즐거움을 넘어선 보다 고귀한 무엇인가에 대한 신성한 기대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그런 가치들은 인생을 신성하게 해주는 것일 터인데. 그녀의 영혼 중 가장 고귀한 신의와 동정을 짓밟고 나서 새로운 행복한 삶을 꿈꾸는 것은 발을 불구로 만들고 나서 산책을 즐기겠다고 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게다가 그녀 자신에게 고통이 그토록 힘든 것이라면 다른 사람에게는 어떻겠는가? 아, 하느님! 남에게 고통을 주지 않게 하소서. 내게 그것을 감당할 힘을 주소서.
스티븐이 매기를 납치하다시피 해서 일방적으로 결혼을 추진할 때에도 매기는 루시를 배신한 스티븐의 행동이 마치 자신의 잘못이기라도 한 것처럼 괴로워하며, 필립에게도 그에게 했던 아무런 강제사항 없는 사랑의 맹세 때문에 죄책감을 느낀다.
물론 타인이 우리에게 품은 신뢰를 저버리지 않기 위해서 자신의 이익 또한 포기할 줄 알아야 한다는 매기의 주장이 답답하게 느껴지고 요즘 사회에는 어울리지 않는 태도라고 생각되기도 한다. 그렇지만 현실사회에서는 물론이거니와 문학작품에서도 이렇듯 순수하고 도덕적인 여성 등장인물을 과연 본 적이 있었던가? 이런 의미에서 매기는 영국소설뿐 아니라 문학사 전체에서 잊히지 않는 빛나는 여성 캐릭터라고 생각된다.
후기. 그건 그렇고 '플로스 강의 물방앗간' 결말에서 매기는 두 남자, 필립과 스티븐 중 누구와도 맺어지지 않는다. 세인트오그스에 엄청난 비가 내리는 가운데 매기는 오빠 톰과 함께 익사하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