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잊을 수 없는 평론가 교수님들 (2)

김성곤 교수님과 백낙청 교수님

필자는 똑똑하지는 못했지만 엉덩이 오래 붙이고 공부하는 재주는 있어서 운이 좋게도 소위 국내 명문대에 입학할 수 있었다. 원래는 사범대에 입학했는데 교육학보다 문학 강의가 재미있어서 인문대 강의를 많이 들었다.


처음으로 들었던 문학 강의는 영미고전시 강의였다. 돈 많고 한가한 영국 귀족들의 사랑시와 자연의 아름다움을 읊는 시들이었는데 단어 하나하나 영어사전 찾아가며 (당시에는 전자사전이 없었으니까 말이다. 핸드폰은커녕 삐삐도 아직 나오지 않았다) 독해를 하는데 영어라는 언어의 묘미와 아름다운 시적 표현에 감동되어서 한참을 멍하니 앉아있었던 기억이 난다.


문학에 본격적으로 빠지게 된 것은 학부 3학년 때 영문과 김성곤 교수님의 아마도 미국소설의 이해인가 뭐 그런 수업 때문이었다. 김성곤 교수님은 현대미국문학 전공으로 중앙대 영문과 정정호 교수님과 함께 한국에 포스트모더니즘을 소개한 분인데, 그분의 미국문학 수업은 매우 쉽고 재미있을 뿐 아니라 (그런데 쉽게 설명하시다 보니 약간 도식적인 이분법 같은 게 있긴 했다. 예를 들어서 영국문학에서는 주인공이 유산을 상속받거나 집으로 되돌아오는데 미국문학에서는 주인공이 여성과 결혼하거나 정착하지 않고 다시 떠난다는 그런 내용) 학점도 매우 후하게 주셔서 여러 번 들었다.


쉽고 재미있음이 바로 김성곤 교수님의 평론의 특징이자 장점인데, 다른 교수님들이 전문가들만 아는, 어디 도서관 구석에 처박혀있는 고리타분한 학술지 등을 논하시는 반면, 김성곤 교수님은 대중이 모두 아는 영화와 쟝르소설 등을 예로 들어가면서 수업을 진행하셨다. 교수님이 주장하셨던 포스트모더니즘이 과연 이론의 종착점으로서 대안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있긴 하지만 (필자는 포스트모더니즘의 다양성 옹호에는 찬성하지만 진리가 상대적이라는 주장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문학 수업시간에 과감하게 헐리우드 영화를 보여주시고 지금이야 흔한 일이지만 1990년대 당시에는 획기적이었던, 문학과 영화에 관한 여러 저서들을 펴내셨던 것을 볼 때 시대를 앞서가는 평론가이셨던 것만은 틀림없다.


김성곤 교수님과 더불어 영문과 평론가의 쌍벽을 이루셨던 교수님으로 창비(창작과 비평) 사단의 대부 백낙청 교수님이 계셨다(사람에 따라서는 백낙청 교수님을 한 단계 더 높이 치기도 하지만 이 글은 어느 분이 더 뛰어나신지 가리는 글은 아니다. 그리고 르네상스 영희곡을 가르치셨던 이종숙 교수님도 계시긴 했지만 희곡은 필자의 전공이 아니므로 패스한다).


강의 위주로 수업을 진행하시는 김성곤 교수님과는 달리 백낙청 교수님은 세미나 위주셨는데 19세기 영국소설 강의가 기억에 깊이 남는다. 백낙청 교수님의 테제는 '자본주의'였다. 맑시즘에 깊게 경도되신 교수님께서는 민중민족문학론과 시민문학론을 주창하셨으며 서구문학을 대할 때 한국인으로서 어떻게 주체성을 가지고 읽을 것인가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계셨다. 그리하여 기억나는 것은 찰스 디킨즈의 소설을 분석하실 때 19세기 영국의 자본주의의 발달과 폐해에 대해서 논하실 뿐만 아니라 '영국 신사'(이것이 아마도 우리나라로 치면 조선시대 양반이나 선비와 비슷한 것일텐데)의 개념에 대해서도 깊이 파고드셨다.


백낙청 교수님의 강의는 여학생들이 많았는데 (영문과는 원래 여학생이 많다) 여학생들을 위해서 커리큘럼을 페미니즘에 맞춰 조율하신 것 역시 뛰어난 안목이었다. 이때 배웠던 소설들 중 토마스 하디의 '귀향'(당당한 여주인공 유스테이샤 바이)과 조지 엘리엇의 '플로스 강의 물방앗간'(순수하고 도덕적인 여주인공 매기 털리버)은 지금까지도 내용이 선명하다.


잊을 수 없는 평론가 교수님들 (3)은 나중에 이어집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16. '플로스 강의 물방앗간'의 매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