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과 운명은 사랑을 시기하고 질투하여 명백한 악의를 품고 만남을 방해하기 위해 재빨리 흘러가는지도
모른다. 제이는 로즈의 전화번호라도 받기를 소망했지만 도저히 번호를 물어 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설령 전화번호를 달라고 했다가 혹시라도 로즈가 번호를 주는 것을 거부하기라도 하면 그 쑥스러운 마음의 상처를 감당하기 힘들 것 같은 이유가 더 컸다.
제이는 명함만한 크기의 포스트 잇을 뜯어 메모를 남겼다.
‘ 저의 이름은 제이입니다. 연락 바랍니다. 010-000-1000 '
로즈에게 메모를 건넨 제이는 주섬주섬 가방을 챙기고 빠른 속도로 카페를 빠져 나왔다. 집에 들어오니 학교에 있어야 할 ‘제라’가 어느 사이에 와 있었다. 배가 고프다고 징징대며 치킨을 간식으로 시켜 달라는 제라와 제이를 보며 엄마가 물으셨다.
“후라이드? 양념?”
제라가 “후라이드” 내가 “양념” 동시에 대답했다.
“너휜 같은 배에서 나온 형제라도 어쩜 그리 매번 다르니? 요즘 치킨 값도 비싸서 두 마리 못 시킨다. 통일해라”
결국 후라이드 반 양념 반 반반치킨으로 주문을 하고 제이는 제라에게 물었다.
“ 아니 근데 넌 학교에 있어야 할 애가 왜 벌써 집에 온거야?”
“ 졸라... 내가 왜 밤 10시까지 강제로 야간자율학습을 해야 하냐고... 졸라 열받아서 쨌어”
“ 졸라가 뭐냐 내 동생이지만 정말 맘에 안.. 아니 든다 맘에 들어 ”
“ 그럼 존나라고 할까? 아이 씨 존나 열받아... 교육청에서 학생들에게 야간자율학습 선택권을 주라고 하는데도 구름정원에 있는 열 다섯 개의 학교 중 ‘클라우드 힐’ 고등학교만 강제로 야자를 시킨단 말이지”
“ 너 그렇게 공부하기 싫어서 니가 원하는 하바드에 갈 수나 있겠니? 그냥 니가 좋아하는 치킨이나 튀기는 요리를 배우던가 ”
“아니, 명문대학의 식물학자가 될 하나밖에 없는 동생의 꿈을 마구마구 져버리는 분은 내 형 맞아 ?”
제라는 과학도였던 아빠께서 과학실에 제라늄 꽃이 넘나 아름답게 활짝 피워 있는 태몽을 꾸고 낳았다고 해서 붙여준 이름이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처럼 통통 튀고 개성이 강한 제라의 좌충우돌 학교 생활은 반반 치킨이 도착했으니 일단 치킨을 먹고 다음을 기약하기로 한다.
한편 남여공학인 클라우드 힐 고등학교에서는 탁상 토론이 진행되고 있었다. 다음 주 금요일 개교 80주년을 맞아 기념축제가 열리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