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가 고향이신 아빠가 자주 사용하는 언어 중에 하나가 거시기입니다.
어제 대화 중에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니그 엄마한테 물어봐서 거시기 하다면 거시기 해서 거시기 할게”
(니그 엄마한테 물어봐서, 여기에 이게 필요하다고 말하면, 그걸 가져와서 설치할게)
갑자기 픽 웃음이 납니다.
아 그치... 아빠가 거시기라는 말을 많이 썼었지.
아빠와 대화가 뜸한 편이다 보니 놓치고 있었는데 다시 아빠의 최애어를 인식하게 됐습니다.
"오늘 거시기 하니까 거시기 해라" (오늘 비가 내릴 거 같으니 우산을 챙겨라)
"오늘 거시기 한데 거시기하고 거시기 해라, 거시기하지 말고"
(오늘 날씨가 추우니 따듯하게 잘 입고 조심해서 다녀라, 늦지 말고)
거시기 하나면 모든 대화가 오케이입니다.
거시기의 뜻과 이심전심
수, 인칭, 사람, 사물 구분 없이 쓸 수 있는 명사 겸 대명사 겸 형용사 겸 관형사 겸 부사 겸 감탄사.
나무위키에 보면 거시기의 뜻을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그야말로 문어발식 확장입니다.
명사 대명사를 넘어 관형사 부사 감탄사의 경계를 자유자재로 넘나들고 있으니까요.
갑자기 개떡같이 말해도 늘 찰떡같이 알아들어주던 오랫동안 함께 일한 후배가 생각났습니다.
저는 A를 떠올리지만, A라는 단어가 생각이 안 나서 B를 이야기합니다.
"그 거시기... 그...그... B 있잖아"
다른 사람은 아무도 못 알아듣는데 그 후배는 "아 A요?" 하고 말해서 저조차도 깜짝 놀라게 하곤 했죠.
서로를 잘 알기 때문에 가능했던 이심전심이었습니다.
거시기~라고 간단히 말해도 아 거시기! 하고 깊게 알아듣고 배려하고, 따듯하게 안아드릴 수 있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싶습니다.
오늘 거시기인데요.
오늘 거시기 잘하시고 또 거시기 하세요. 꼭 거시기 하시고요.^^
(오늘 설날인데요.
오늘 계획했던 거 잘하시고 또 맛있는 것도 많이 드세요. 꼭 새해 복도 많이 받으시고요^^)
함께 쓰는 #일기콘 11, 함께 일상의 기록을 콘텐츠로 11일째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