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질문 일기 01화

조금 더 관대할 필요가 있어

넌 너한테 조금 더 관대할 필요가 있어

by 이린

문득 어떤 일을 하든, 무엇을 결정하든 근본적으로 내가 어떤 사람인지부터 알아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 후로부터 '질문 일기'라는 어플을 사용하고 있다. 매일 하나씩 질문이 주어지고 이에 대한 답변을 자유롭게 서술하는, 조금은 특이한 일기다.

나는 진짜 어떤 사람인지, 뭘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장점은 무엇인지, 만약 단점이 있다면 그걸 극복할 수 있는 사람인지, 내가 진심으로 바라는 것은 무엇인지, 그런 것들을 알아가고자 했다. 남들에게 질문한 적은 무수히도 많은 것 같은데 정작 나에게는 질문을 던져본 적이 없어서 스스로에 무지했다. 가장 중요한 걸 잊고 있으면서 왜 매번 닥친 상황만을 비난했는지 모르겠다. 이젠 그러지 않기 위해,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매일 조금씩 끄적여 보기로 한다.








1. 당신은 지금 행복한가요?


매번 말문을 막히게 하고, 출처 모를 생각들 가운데 명확한 답은 없는 질문. 그래서 결국엔 노력 중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나에겐 모든 순간들이 노력이라고.

목적이나 성취를 위해 바쁘게 움직이는 순간들도, 지쳤다는 핑계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스스로의 한심함을 눈 감아 줄 때도, 누군가와 웃고 떠들며 보내는 시간들이 내가 하고자 하는 노력이고, 해야만 하는 의무다.

'응, 어쩌면.'
고작 이 네 음절을 질문에 대한 답으로 삼을 수 도록 노력 중이다. 나는 행복하기 위해 매일을 무의식적인 노력으로 사나 보다.



2. 무슨 꿈을 꾸고 싶나요?


수면장애를 앓은 지 어느덧 5년째. 그 후로는 단 한 번도 아침에 눈을 떴을 때 개운함을 느껴본 적이 없다. 이제는 개운하다는 것이 정확히 어떤 느낌인지도 모르겠다. 매번 잠에 들기 위해선 한참을 뒤척이고 긴 새벽과 싸워야 한다. 내가 먼저 잠에 드는지 아님 새벽이 지나고 아침이 먼저 올지를 두고 매일 내기를 했다. 가끔은 일주일 중 내가 지는 경우가 훨씬 많을 때도 있다. 잠에 들지 못하는 이유가 뭘까. 잡생각이 많은 탓도 있겠지만, 어차피 잠에 들어도 편하지 않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는 게 더 큰 원인인 것 같다. 나는 잠에 들 때마다 한 번도 빠짐없이 꿈을 꾸니까. 이왕이면 좋은 꿈만 꾸면 좋겠지만 그건 너무 어렵다. 그래서 종종 몸을 마구 흔들어대는 거의 경기에 가까운 몸짓으로 잠에서 깨곤 한다. 그럴 땐 여전히 어둡고 잠에 든 지도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일 뿐이다.


그래서 나는 꿈 없는 잠을 자고 싶다. 마치 죽은듯한 잠. 눈을 떴을 때 느껴지는 개운함이 뭔지 느껴보고 싶다. 그래도 꿈을 꾼다면 내가 숨 쉬는 곳에선 볼 수 없는 것들을 보고 느낄 수 없는 것들을 느끼고 싶다. 편안함과 안정감을 느끼고 싶다. 나는 안전하고, 더 이상 나를 괴롭히는 것들은 없을 거다. 밤마다 잠 못 이루게 하는 것도, 수많은 지껄임들이 괴롭히는 일도 없을 거다. 이런 희망 사항들이 확신이 될 때까지 나는 얼마나 더 새벽과 싸워야 하며 나를 괴롭혀야 할까.



3. 본인하고 똑같은 사람이 있다면 친구하고 싶나요?


응. 만나면 꼭 안아주고 싶다. 그간 용케도 잘 버텼느니 고생했다느니 그런 말은 굳이 하고 싶지 않다. 어차피 나와 똑같다면 그건 스스로가 이미 잘 알고 있을 거다. 그래서 시답잖은 말 대신 그냥 꽉 안아주고 토닥여주고 싶다. 참을성도 많을 거고 가끔은 화도 많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화를 아무한테나 표출하는 사람은 아닐 거다. 그건 감정의 표현이 아니라 배설이라고 생각하니까. 오히려 혼자 삭히느라 마음고생 꽤나 할 거다. 내 사람이다 싶으면 무한한 사랑과 배려를 퍼다 나르겠지만 아주 조금이라도 그게 아니라면 가차 없이 대할 거다. 그들에겐 냉정한 친절을 베푼다. 너는 나와 같으니 그런 사람일 거다. 그리고 언젠가 우리가 만날 수 있게 된다면 정말 꼭 해주고 싶은 얘기가 한 가지 있다.


"널 미워하지 마. 넌 너한테 조금 더 관대할 필요가 있어."


한 번이라도 나를 진심으로 사랑해 본 적이 있었나. 연민도 사랑이라면 아주 조금은 사랑한 것 같다. 가끔은 내가 불쌍하단 생각을 했다. 아, 어쩌면 그것도 안타까운 마음보단 분개에 가까웠을 수도 있겠다. 넌 왜 이것밖에 안돼? 지금 네가 뭘 할 수 있어. 아니지, 왜 하필 나야.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는데. 이렇게 이어지는 분노. 그러니까. 어쨌든. 넌 너한테 너무 못됐어. 사실 너도 알지? 그러지 마. 이걸 빨리 알았더라면 좀 더 일찍 사랑할걸. 미안하다. 많이 사랑해.



4. 당신은 자신의 이름이 마음에 드나요?


나는 누군가 내 이름을 불러주는 게 그렇게 좋다. 얼마나 좋아하냐면 내가 평소에 그다지 달갑지 않은 감정을 품고 있는 이가 내 이름을 부른다면 그 상황만큼은 그가 좋아진다. 이보다 나다운 대명사는 없다. 크고 작은 어떤 이유로든 나를 찾는 누군가가 있다는 걸 알려주는 것도, 가장 근본적으로 나를 지칭하는 말도 이름이다. 이름은 온전한 내 것이니까. 어렸을 때부터 완전한 내것은 없다고 생각해 와서 순수히 내가 가질 수 있는 것들을 좋아하고 지키고 싶다. 내겐 이름이 그렇다.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것 중에 유일하게 값지고 고맙게 생각하는 거다. 만약 내 이름조차 엉터리로 지어줬다면 당신들을 더 미워했을지도 모른다. 다행히 이름 하나는 잘 지어줘서 조금은 내가 좋다. 나를 하도 미워한 적이 많아서 미안하기도 하지만 내 이름이 불릴 때만큼은 내가 그렇게 싫다가도 좋아진다. 그러니 나를 많이 불러줬으면 좋겠다.



5. 요즘 힘이 되는 세 가지는 무엇인가요?


1. 나를 믿어주고 아껴주는 주변 사람들.

2. 몇 가지의 행복한 기억들.

3. 언젠간 다 괜찮아지고 잘 될 거라는 믿음.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