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번 너무도 갑작스럽게, 덥석 쏟아져서 규칙성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난해한 순간. 인간적인 호감과 이성적인 호감을 구분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다. 사실 종이 한 장 차이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그 사람의 장점 하나하나가 모여서 인간적 호감이 형성되면 그로부터 파생되는 관심과 궁금증이 이성적 호감으로 발전된다. 사람들이 처음 그 감정을 스스로 부정하는 것은 대개 비슷한 이유를 가지고 있다. 그저 아쉬움으로 그칠 수 있는 것들이 사랑으로 치부되는 순간부턴 아픈 게 된다. 사랑은 쉽게 행복을 주지만 그만큼 상처를 주고받기도 쉬운 감정이다. 누구든 본능적으로 알 수 있다. 그 대상이 사람이든 사람이 아니든 무언갈 좋아한다는 건 그만한 대가가 따른다는 건. 그럼에도 함께하고 싶음을 인정했을 때, 나는 그걸 사랑이라 하겠다.
12. 1년 전의 나에게 전화를 걸 수 있다면?
안녕. 잘 지내냐고는 묻지 않을게. 어떤 대답이 나올지 너무 잘 알거든. 그쯤이면 한창 고생할 때라 정신이 많이 없겠구나. 어차피 그때는 웃기 힘들 테니 차라리 많이 울어둬. 나중 되면 그럴 시간도 없고, 그럴 기운은 더더욱 없더라. 우는 것도 나름 연습이 필요한 거였는데 난 그걸 너무 늦게 알았어. 네 안에 있는 모든 게 쏟아져 나올 때까지 다 토해냈으면 좋겠어. 이게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 어떻게 하는지도 모를 거고. 나도 그래. 그치만 네가 잘해야 지금의 내가 조금은 덜 힘들 것 같으니까 부탁 좀 할게. 우리 더 이상 아무것도 담아두지 말고, 지저분한 것들은 전부 흘려두자. 그리고 제발. 제발 너를 해치지 마. 제발. 이렇게 부탁한다. 세상에 너보다 너를 더 아끼고 사랑해 줄 사람이 어디 있겠어?그러니까 너한테 좀 잘해. 상처는 이미 질리도록 받아봤으면서 뭣하러 너까지 보태려 하는 거야. 그래서 네 주변 사람들은 또 얼마나 아파했는지 알아? 지금 생각해 보면 너 진짜 멍청해. 이렇게 말해봤자 그땐 죽어도 모르겠지만 그건 정말 어리석은 짓이다. 갑자기 너무 쏘아댔나? 미안해 나 원래 너한테는 제일 엄격한 거 알잖아. 그땐 정말 그럴 수밖에 없었으니까 이해해. 지금은 그래도 조금은 살만 한 것 같아. 그러니 조금만 버텨라. 거짓말 아니야. 정말 얼마 안 남았다. 그때까지 너를 아끼고 사랑해 주는 사람들을 생각해서라도 견뎌내. 그게 지금까지 묵묵히 네 옆을 지켜준 사람들에 대한 예의니까. 평생을 감사하며 살아. 그러려면 꼭 잘 살아내라. 받은 사랑에 대한 예의는 지켜야지. 씩씩하게 살아.
13. 사랑받고 싶나요 사랑해주고 싶나요
이런 건 굳이 뭐가 더 낫네 마네 하면서 선택하고 싶지 않다. 사랑을 받든 지 주든지 간에 그런 일방적인 행위는 결국엔 독이 된다. 처음엔 왜 누군가에겐 내가 주는 사랑이 점차 당연해지는지, 나의 부와 모는 내가 태어나서 가장 처음으로 배워야 했을 사랑을 가르쳐주지 않았는지를 원망했다. 받기만 하는 사랑도 해봤고 내가 거의 주기만 하는 사랑도 해보면서 끝내 선명하게 자리 잡은 결론은 내가 먼저 괜찮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사랑받을 자격이 있고 사랑을 줄 수 있는 자격이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막 엄청 대단한 사람은 아니어도 괜찮은 사람이 되고 싶다. 그래서 나는 사랑을 많이 받는 것도 주는 것도 어색하지 않은 사람이고 싶다. 사랑이 무조건 필수적인 것은 아니지만 올바른 형태의 사랑을 경험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크고 작은 그 감정들이 얼마나 위로가 되는지, 얼마나 따뜻하고 안심되게 하는지, 어떻게 하루를 더 살아가게 하는지를 말이다. 그래서 필수가 아님에도 부단히 간구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아닐까 생각한다.
14. 당신이 한숨 쉬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나는 원래도 항상 생각을 달고 사는 사람이지만 머리가 유독 미친 듯이 시끄러울 때면 건망증이 심해지곤 한다. 샤워를 하다가 문득 내가 방금 샴푸를 했는지 까먹을 때도 있고 분명 몇 번이고 되뇌었던 생각들이 뒤 돌자마자 백지처럼 사라지는 순간들이 잦아진다. 그럴 때면 숨 쉬는 방법도 까먹는 건지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턱 막혀서 잠시동안 뱉어내지 못한 숨들을 한 번에 몰아 내쉰다. 그 정도로 많은 생각들을 갖고 있다는 건 그만큼 골치 아픈 것들은 많은데 해결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그냥 지나가길 버티는 것밖엔 방법이 없다. 추후에 그게 어느 정도 나아질지 곪아서 썩을지는 알 수 없다. 그렇게 기약 없는 기다림을 버텨야 한다.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건가 싶지만 수많은 생각들 중 그게 유일한 참일 때 나는 이토록 무능한 인간이라 탓한다. 어리석다. 이 굴레의 끝은 결국 어떻게든 나를 다시 원점으로 데려간다.
15. 진심으로 웃어본 적이 언제인가요?
매 순간이 그럴 순 없겠지만 나의 주거지에서를 제외하면 진심으로 웃을 때가 아주 많다. 그렇다고 생각한다. 나는 원래 정말 잘 웃는 사람인데. 집에선 웃을 이유도 없고 웃고 싶은 마음도 들지 않는다. 웃는 것도 그만큼 안정감이 뒷받침되어야 자연스럽게 나오는 건데 집에선 절대 그럴 수 없다. 지금껏 살면서 단 한 번이라도 마음이 놓인 적이 있었나. 약간 경계가 풀린 적은 있어도 내 마음을 온전히 놓아본 적은 없는 것 같다. 그럼 나는 진심을 다해 웃어 본 적이 없는 건가. 분명 웃음을 연기한 적은 없는 것 같은데 나는 아직도 내 감정이 너무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