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시스 버넷 <비밀의 화원>
그날도 동생과 함께 집에 돌아오는 길이었다.
나는 열 살, 동생은 이제 막 초등학교에 입학한 신입생이었다. 어린 동생과 함께 집에 돌아오는 것은 누나였던 나에게 주어진 굉장히 중요한 역할 중 하나였다. 매일 수행해야 하는, 어떻게 보면 뻔한 일과였지만 동생과 나의 하교길은 늘 흥미진진했다. 집에 돌아가는 길은 큰 길을 따라 걷는 방법도 있었고, 주택단지의 좁은 골목 사이사이를 돌아가는 방법도 있었으며, 이제는 아무도 놀지 않는 낡은 놀이터에 들렀다 오는 방법도 있었다. 매번 다른 루트를 선택해 걸으며, 나는 학교 수업에서 무얼 배웠는지 동생에게 아는 척하곤 했다.
그날은 골목을 따라 걷고 있었는데 어디선가 ‘야옹’하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가 나는 쪽을 따라 시선을 두니, 희고 낮은 울타리 너머로 고양이 한 마리가 의연하게 이쪽을 보고 있었다. 경계하는 느낌도 없고, 그렇다고 과하게 애교를 부리는 것도 아닌, 노인이 이쪽으로 오라며 손짓을 하는 듯한 ‘야옹’이었다. 딱히 집에서 키우는 고양이도 아닌 것 같았는데 신기할 정도로 편안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지금까지 길고양이를 의식해 본 적이 없었던 나와 동생은 고양이의 목소리에 이끌려 남의 집 담장을 넘었다. 조심스레 다가가 고양이 앞에 웅크리고 조심스레 앞발을 만져보았다. 많이 부드러웠다.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그날 과학시간에 배웠던 금속의 단단함이 생각났다. 수업 시간에 만져보았던 금속 중에서 ‘납’의 부드러움과 고양이의 발목은 닮아 있었다. 부드러움 속의 단단하고 올곧은 뼈마디.
고양이는 앞발을 내어주다 말고, 이내 자리를 떴다. 떠날 때 역시 처음 만났을 때처럼 ‘야옹’하는 소리만 내더니 울타리 너머 풀숲으로 사라져버렸다.
집에 돌아와서 동생과 나는 엄마에게 자랑스럽게 말했다. 오는 길에 고양이를 봤다고, 만져볼 수도 있었다고, 굉장히 부드러웠다고, ‘납’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고. 엄마는 잘했네, 라고 웃어주며 대답했지만 아마도 아직 그때 지어주었던 이름이 ‘나비’라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내가 이름 지은 것들을 떠올려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