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인 어른께서 강원도 횡성 작은 땅에 가족들을 위한 미니 캠핑장을 만드셨다. 오가며 많이 말씀해주셔 궁금증이 가득해질 무렵, 정신차려보니 횡성으로 떠나고 있었다. 인천에서 횡성은 생각보다 가까운 거리다. 아침 일찍 출발하면 2시간이면 도착한다. 차 막히는 상황을 극도로 싫어하는 우리 부부는 새벽 6시에 횡성으로 출발했다.
평일에도 8시 반은 되어야 일어나는 나에게 새벽 6시 출발은 쉽지 않았다. 여차저차 8시 30분쯤 장인 어른이 만드신 미니 캠핑장에 도착했다. 화장실까지 딸린 컨테이너 박스와 자갈 가득한 사이트를 구경하며 집에서 챙겨온 짐들을 정리했다.
야무지게 시골 길을 누비려고 가져온 접이식 자전거 2대도 펼치고, 냉장이 필요한 식재료들도 냉장고에 가득 넣었다. 정리를 한 참한 뒤 처음 와보는 완전 시골 동네를 산책했다. 산으로 둘러싸인 산 중에 펼쳐진 논과 밭, 집마다 짖어 대는 개들, 소주 박스만 팔고있는 시골 슈퍼 등을 구경하며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스마트폰을 잠시 치운 채 시간을 보냈다 보니 체감상 한 참이 지났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웬걸 오전 10시밖에 안 됐다. 운전을 2시간하고 와서 커피도 휴게소에서 한 잔 사서 마시고 짐도 정리하고 시골 길도 구경했지만 오전 10시더라. 시간이 느리게 가는 것은 이후에도 이어졌다. 점심을 먹기 위해 맛집도 찾아가고, 근처 유명한 카페에 가서 수다로 한가득 채우고, 못다 본 장을 보기 위해 마트까지 다녀왔다. 도착해서는 정리하고 자전거 타고 시골 뚝방길을 투어하고, 장인 어른이 살았던 동네 근처도 산책했다. 그러곤 시간을 봤다. 오후 4시였다.
시골은 어둠이 빨리 오는 걸까? 어둑어둑해졌다고 느껴 ‘이제 가져온 고기를 구워 먹어보자’라며 시간을 봤지만 오후 4시였다. 와이프와 참 하루가 길다고 느끼며 신기해했다. 저 날은 정말 신선한 경험이었다. 보통의 주말은 느즈막이 10시쯤 일어나 거실에서 커피 한 잔하며 와이프와 유튜브 한 편보고, 씻으면 12시다. 그러곤 밥 먹고 이래저래 데이트하고나면 눈 깜박할 사이에 저녁이 오곤했다. 단순히 일찍 일어나 하루를 시작하는 경험은 많이 한다. 특히나 일찍 일어나면 시간이 많은 것은 당연한 데도, 유독 그날은 왜 길었을까?
‘아침 일찍 일어나면 인생이 바뀐다’ ‘하루를 이틀처럼 쓰세요’ 살면서 가장 진부하게 듣던 조언들이다. 심지어 자기개발서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희화화할 때 쓰던 말들이기도 하다. 특히 그날은 왜 이리 날이 길었을까를 다시금 떠올려본다. 추측하건대 두 가지가 아닐까 정리 해본다. 첫 번째는 물리적으로 일찍 일어나서다. 정말로 일찍 기상해 평소보다 시간이 더 많았을 뿐이다. 두 번째는 캠핑장 근처에는 정말 산 빼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소위 요즘 말하는 ‘도파민 자극’할 만한 것들이 전무했다. 유튜브, 쇼츠 등을 보지 않아도 이미 도시의 삶이란 도파민을 자극할 만한 유혹이 가득해 하루하루가 빠르게 ‘소진’됐던 게 아닐까 싶다.
그러나 아무렴 어떤가. 하루가 길었지 않나? 덕분에 하루를 더욱 알차게 보냈고 다양한 경험으로 채울 수 있었다. 그렇다고 당장 내일부터 아침 일찍 일어나 ‘미라클 모닝’을 하진 않을 테다. 이유는 어차피 못한다. 내 스타일이 아니다. 오히려 한 달에 한 두번씩 주말에 일찍 기상하여 하루를 더욱 다채롭게 채우는 것이 나에게 더욱 영감을 줄 듯하다. 내가 아는 내 자신은 그렇다.
일찍 일어난 하루로 이러한 단상이 떠오르는 것을 보니 단순히 그런 생각이 든다. 당연하게 알 던 것들을 요 근래 해보지 않았다면, 당장 무엇이라도 해보고 떠오른 생각을 정리해 봐야겠다고 말이다. 이를테면 하루 종일 굶어보기, 주 7일 운동하기 등과 같은 쉬워 보이면서도 어려운 다짐을 만들어야겠다. 오늘은 그런 생각과 다짐으로 하루를 마무리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