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간 : 우리 가족의 조미료

요리하며 알게 된 삶의 맛들_9

by 글쓰카이

간장, 소금, 설탕.

여러 조미료가 어우러져야 맛있는 음식이 탄생하듯,

인생도 여러 가지 요소가 어울려야 ‘딱 맞는 맛’을 낸다.

그러나 음식을 만들며 ‘완벽한 간’을 맞추는 일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매일 깨닫는다.

음식이든, 관계든, 서로 다른 재료와 입맛이 만나

조화를 이루는 건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맞춰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우리 집 식단은 두배로 복잡하다.

장남은 밥이라면 무조건 좋아하고,

차남은 빵이라면 엉덩이 한번 안 떼고 끝까지 먹는다.

주말 아침, 장남을 위해 따뜻한 밥과 나물 반찬.

국을 준비했더니

차남이 옆에서 고집을 부렸다.

“빵~빵~”

결국 식빵을 꺼내 급히 토스트를 만들어 주자,

장남이 부러운 듯 말했다.

“저도 먹고 싶어요.”

“너는 아까 밥 먹고 싶다며.”

“빵도 먹고 싶어요.”


시끄러운 와중에 형이 동생의 빵에 잼을 발라주며 말한다.

“이거 먹어봐. 이렇게 먹으면 더 맛있어.”

차남은 빵에 뭘 발라 먹는 걸 싫어하지만,

형의 정성에 한 입 크게 베어 물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깨달았다.

입맛을 맞추는 일은 단지 음식을 만드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가족 간의 이야기를 만들어 가고,

관계를 조금씩 이어주는 시간이었다.


아이의 유아식 시절을 떠올려 보면,

처음으로 간장을 넣은 반찬을 만든 날이 생각난다.

어묵, 두부, 멸치 같은 재료를 간장에 조린 반찬들인데,

평소 싱거운 음식을 먹던 아기에게는 전혀 새로운 도전이었다.

밥 위에 조림을 얹어 주자, 아기는 작은 숟가락으로 정신없이 먹었다.

반찬그릇에 남은 간장 국물까지 탐내며 손을 뻗는 모습을 보고

음식은 정말 사람을 웃게 만드는 힘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날,

오랜만에 집에 오신 엄마와 식사를 하던 중이었다.

내가 차린 상에 계란말이가 올라갔는데,

엄마가 한 입 드시더니 말했다.

“이 계란말이 간이 하나도 안 됐네.”

“애기도 같이 먹어야 하니까 간을 안 했어요, 엄마.”

“그래도 어른 먹는 건 어른 입맛에 맞춰야지.”


엄마의 말에 순간 뜨끔했다.

어른도 먹는 반찬인데, 나는 아이만 생각하며

간을 거의 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엄마가 내 방식을 지적한다는 생각에 기분이 상했지만,

이내 깨달았다.

우리 가족의 밥상에는 아이뿐 아니라

어른인 남편과 나도 있다.

각자의 입맛을 존중하고 조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작은 번거로움이라도 감수해야 한다는 사실을.


그 사실을 한번 더 상기하게 하는 일이 있었다.

남편은 내가 만든 싱거운 반찬을 별말 없이 먹어주었다.

비록 입에 딱 맞는 맛은 아닐지라도,

나를 배려하는 마음이 담긴 그 태도는 나를 안심시켰다.

그런데 한 번은 내가 아이의 식사를 준비해야 한다는 이유로

모든 음식의 간을 약하게 하고 있을 때,

남편은 저녁 식사를 하다 말고 조용히 말했다.

“매콤한 거 먹고 싶다.”


그 작은 한마디를 듣고는 괜스레 미안해졌다.

나는 아이에게만 집중하며, 평소 남편의 입맛은 등한시했던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그날 이후, 번거롭더라도 어른과 아이의 반찬을

따로 만드는 결심을 했다.


처음에는 힘들고 정신이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두 가지 반찬을 준비하는 일이 점점 익숙해졌다.

인덕션 3구를 동시에 돌리며 한쪽에서는 간장 베이스의

부드러운 반찬을 만들고,

다른 한쪽에서는 고춧가루를 넣은 매운 반찬을 준비한다.

심지어 이제 막 매운맛을 알아버린

초등학생이 된 아들들의 입맛까지 고려해

매운맛을 조절하는 능력도 생겼다.


번거롭다, 힘들다 느껴지던 일들이

이제는 나만의 리듬 안에서 익숙해졌다.

그러다 보니 간을 맞추는 일도,

불 조절도, 아이와 어른이 함께 먹을 음식을

동시에 준비하는 일도 점점 여유롭게 느껴졌다.


남편은 그 과정을 보며 해맑게 농담을 던지곤 한다.

“어떻게 이걸 동시에 다 할 수 있지? 이제 요리 선수 다 됐네.”

그러면서도

설거지를 하면서 한마디 덧붙인다.

“아, 이렇게 하려면 설거지가 많이 나오는 군.”

웃음이 터지고, 번거로움 속에서도 우리는 좀 더 가까워진다.


간을 맞추는 일과 관계는 정말 많이 닮았다.

처음에는 서로 다른 입맛이나 성격을 맞추는 게

고되고 힘들게 느껴진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하는 법을 배우다 보면

자연스럽게 균형이 맞아 간다.


완벽히 딱 떨어진 간이나 조화로운 관계는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는다.

약간 부족하거나 조금 넘치는 날도 있지만,

그렇게 노력과 애정이 더해진 날들은 우리 삶을 풍요롭게 만든다.


밥상이든 관계든, 모든 날들 속에서 조금씩

더 나아지고 서로를 향해 조율해 간다는 것.

그 과정이야말로 삶의 진짜 맛이 아닐까.


요즘은 날씨가 너무 더워 축축 처지고

불쾌지수가 올라가는데

우리 가족에게 필요한 간은 뭘까?

서로를 조금 더 챙기고 배려하는

작은 실천들에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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