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많아진다는 것.

요리하며 알게 된 삶의 맛들_8

by 글쓰카이

“저도 이거 먹어 볼래요“


오랜만에 치킨집을 방문한 어느 날,

비장함이 느껴지는 아이의 외침에

우리 부부는 눈이 동그래져 서로를 쳐다보았다.

아이가 가리키고 있는 메뉴판으로 시선을 옮기니

빨간 양념 옷을 입고 있는

치킨 그림을 아이가 손가락으로 꾹 누르고 있는 게 아닌가.


매운 음식을 경험해 보지 못한 아이가

먹을 수 있을까 잠시 걱정했지만

힘이 잔뜩 들어간 손가락과

기필코 먹고 말겠다는 반짝이는 눈을 하고

우리를 뚫어지게 쳐다보는 아이의 모습에

압도되어 도저히 모른 채 할 수가 없었다.

그 모습이 어찌나 귀여운지.

그렇게 우리 테이블로 초대된 양념치킨.


그런 말은 어디서 배웠는지

‘맛있게 맵다’며 정말 맛있게 잘 먹는다.

게다가 “하나도 안 매워요~!”라고 하며

자신이 그만큼 성장했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뿌듯한 표정을 하고 있다.


아이가 성장하면 당연하게 먹게 되는 음식이지만

우리 부부도 괜히 벅찬 마음에

서로 짧은 눈빛 교환을 했다.


그날, 아이의 뿌듯한 표정을 보고 있자니

오래전 남편과 나눴던 대화가 떠올랐다.

아이가 아무 간도 되지 않은 이유식, 유아식을 먹을 때

남편이랑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앞으로 점점 아이들이랑 우리가 함께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많아 지겠지?“

남편은 잠시 입맛을 쩝 다시더니 말했다.

“근데 매운 떡볶이를 같이 먹으려면 그래도 초등학생 이상은 돼야 가능할 듯?”

그때는 아주 까마득한 미래의 이야기 같았다.


특히 떡볶이는

우리 부부가 고된 하루를 보낸 날 위로의 의미로 찾는 음식이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재밌는 상상을 하게 됐다.

나중에 아이들이 ‘엄마, 저 오늘 학교에서 스트레스를 받아서

저녁엔 떡볶이를 먹어야겠어요.‘라고 말하는 모습을.


음식을 함께 나눈다는 건 단순히 끼니를 해결하는 걸 넘어선다.

맛을 통해 세상의 짠맛, 단맛, 쓴맛, 매운맛,

심지어 떫은맛까지 배우는 과정이다.


그렇게 세상의 다양한 ’맛‘으로 채워진 삶을

조금씩 경험하게 된다는 뜻이었다.

세상엔 음식만큼 다양한 감정과 경험이 있고,

우리는 그 모든 것들을 서로 나누며 함께

인생을 더 풍성하게 살찌워 갈 것이다.


지금 이 순간,

양념치킨을 통해 경험한 ‘새로운 맛’은

아이에게 단순히 매운맛 그 이상으로 남았으리라.

그리고 부모이자 이 집의 주방장으로서

나의 역할은

아이가 세상의 다채로운 맛들을

두려움 없이, 때로는 우리를 의지하며

경험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양념치킨에 도전하던 순간처럼.


매운맛으로 힘겨울 때 곁에

흰쌀밥도 준비해 두고,

“한번 먹어봐, 괜찮아. 할 수 있어!”라고

다정하게 응원을 해주는 존재가 되는 것.


그날 이후

우리 가족은 점점 다른 음식들의 ‘맛 탐험’을 이어갔다.

고기에 약간 매운 쌈장을 찍어 쌈 싸 먹기,

뜨끈한 국밥 한 그릇 비우기,

짜파게티에서 매운 라면으로 넘어가는 과정까지.

어느새 아이들은 먹는 음식의 맵기 정도를 순위로 줄 세우며

자신의 맵기력을 뽐내는 허세까지 장착했다.


앞으로 아이들이 살아가며 겪게 될 인생 역시

이 과정과 닮아 있을 것이다.


부모라면 우리 아이들이 쓴맛이나 매운맛보다는

인생의 달콤한 맛만을 경험하길 바라게 되지만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아이들이 인생이라는 식탁 위에서

조금씩, 천천히 모든 맛을 경험할 수 있기를 바란다.


어떤 맛이든 두려움 없이 맛보며 자신의 맛을 찾아가길.

세상의 모든 맛을 스스로 탐험하면서 말이다.


앞으로 다가올 따뜻한 순간들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언젠가 커피와 케이크를 나눠 먹으며 연애상담을 하거나,

매운 낙지볶음을 손 부채질과 함께 먹으며

인생이 매운지, 낙지볶음이 매운지 논할 날들.


삶의 다양한 맛들을 함께 나누며,

우리 가족의 기억들이

아이들 삶 속에서 하나의 따뜻한 위로로 자리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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